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날짜에도 가격표가 붙었다.
왕도 시장의 북쪽 출입문 옆에 작은 천막이 들어섰다. ‘삼십 일 권리 연장 접수’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사람들은 은화를 움켜쥔 채 줄을 섰다. 나는 첫눈에 그 천막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사적인 문서 대행 서비스를 이용할 자유가 있고, 모든 수수료가 세금은 아니었다. 다만 그 간판 아래에는 ‘제삼 결제소 승인’이라는 글씨와 왕관을 닮은 장식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걸 내면 제 딸 보상금이 살아난다더군요.” 노인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 가짜 증언권 증서를 은화 세 닢에 샀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돈을 내기 전에 찾아왔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창구의 여자요. 서른 날 안에 갱신하지 않으면 권리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창구로 가서 안내서를 받았다. 위쪽에는 계약 당사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맨 아래에는 ‘반환 기한에 관한 분쟁이 법원에 접수되어 있어 확정되지 않음’이라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경고문을 인쇄했으니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듯한 배치였다.
“이 돈은 누구에게 갑니까?” 내가 물었다.
창구 직원이 대답했다. “접수 대행료입니다. 저희는 민간 회사입니다.”
“그런데 왜 왕실 승인 표식을 걸었습니까?”
“고객들이 신뢰하니까요.”
“공식 허가가 있습니까?”
직원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지방 행정관과 시장 감독관을 불러 영업 표시의 진위, 실제 계약 설명, 피해 신고를 각각 확인하도록 했다. 증거를 수거할 때도 동의와 법적 근거를 구분했다. 돈을 냈다는 사람들의 말은 중요했지만,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곧바로 환급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막 옆에는 작은 소년이 앉아 종이를 접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 구리화 두 닢을 받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단속 대상처럼 몰아세우지 않았다. 소년이 접는 봉투의 안쪽에는 왕실 인쇄실에서 쓰던 계수판 표식이 찍혀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니?”
“저녁마다 수레가 와요. 가죽장갑 낀 사람이 종이를 두고 가죠.”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아니?”
“아니요. 하지만 그는 시간을 셀 때 달력을 안 봐요. 바퀴에 꽂힌 쇠막대만 봅니다.”
나는 소년이 안심할 수 있게 보호담당자를 불러 설명을 이어 가게 했다. 어린 일꾼의 말은 목격 진술이고, 그 말만으로 누군가에게 범죄 혐의를 붙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달력이 아니었다. 그 바퀴가 어느 문서에 날짜를 찍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오후에는 나디아가 장터 피해자들을 데리고 왔다. 일부는 가짜 증언권을 샀고 일부는 갱신 수수료를 냈다고 했다. 우리는 피해 내역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판매 대금을 실제 지급한 사람, 지급을 약속했지만 돈을 내지 않은 사람, 공식 세금인 줄 알고 왕실 창구에 잘못 낸 사람. 세 번째 유형의 신고에는 실제 영수증이 아직 없었다.
“왜 이렇게 나눠 적습니까?” 나디아가 물었다.
“나중에 돌려줄 돈의 출처가 달라서요. 민간 업자가 받은 돈은 국고에 들어온 게 아니고, 국고에서 받지 않은 돈을 국고 환급금으로 지급할 수도 없습니다.”
나디아는 한숨을 쉬었다. “사기당한 사람에게 이런 설명이 위로가 되겠어요?”
“위로는 아니죠. 대신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찾아갈 방법이 됩니다.”
오후에 나는 북문 시장 감독관에게서 지금까지의 접수 기록을 전달받았다. 민간 천막의 장부에는 보관료라고 적힌 항목과 단순 서류 대행료가 뒤섞여 있었다. 지급한 금액을 조사하는 법과 사기 혐의를 판단하는 법은 달랐다. 먼저 현금이 실제로 들어왔는지, 누구의 손을 거쳐 어느 상자에 보관됐는지 추적해야 한다. 피해 신고자는 열세 명이었지만 같은 사람이 여러 건을 신고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신고 건수와 피해자 수를 분리해 적었다. 나디아는 처음엔 왜 사소한 구분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예전에 정당한 지원금 신청자가 한 사람이 두 번 신청했다는 이유로 지급을 미뤄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번 신고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세면 결국 그 사람 몫을 잘못 계산할 수도 있어요.”
감독관은 창구 운영자의 임의 제출 영수증 묶음을 보여 주었다. 종이마다 ‘30일 연장’이라는 커다란 표제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하단의 계약 조항은 서로 달랐다. 첫 장에는 서류 보관, 둘째에는 대리 접수, 셋째에는 권리 보호 상담. 하나의 간판 아래 여러 서비스를 팔면서 고객에게 다른 종류의 일을 제공한다고 설명한 셈이다. 설명을 정확히 했는지는 당사자의 진술이 필요했다. 부서 직원이 모두 사기범이라고 외치는 건 편했지만, 그랬다가는 실제 피해자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놓칠 수 있었다.
나는 천막에서 일한 소년을 보호기관 상담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봉투를 접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불법 고지의 의도를 알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보수 지급 기록과 실제 노동 시간은 확인해 보자고 했다. 소년은 구리화 두 닢을 받았고, 받지 못한 날도 있다고 했다. 그가 일하던 시간을 적자 또 다른 체불임금 사건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시장 노동 감독관에게 자료를 보내되 소년의 이름이 판매자 명단에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피해를 막으려다 일한 사람까지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소년은 노트에 수레를 그렸다. 바퀴의 쇠막대뿐 아니라 마차의 천장에 달린 작은 종도 그렸다. “물건을 내려놓으면 이 종이 울려요. 그 사람이 장부를 안 보고도 몇 개를 내렸는지 알고 있더라고요.” 나는 그 말이 기억에 남았다. 계수판은 달력처럼 쓰였지만 실은 장치가 몇 번 회전했는지를 세는 도구일 수도 있었다. 숫자 서른이 찍힌 영수증이 날짜가 아니라 작업 횟수라면, 누군가 그 표식을 계약 기산일의 증거로 바꿔 팔 수 있었다.
오후 늦게 우리는 같은 규격의 폐기 톱니를 네일에게 맡겨 재현 실험을 했다. 재현 장치는 별도 장소에 설치하고 장부와 시계를 모두 맞춰 기록했다. 쇠막대를 한 번 누를 때마다 종이 울리고 숫자판이 한 칸씩 움직였다. 서른 번을 누르자 옆판에 ‘30’이라는 표시가 나왔다. 다만 날짜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네일은 이것이 출고량을 세는 기본 장치이고, 날짜를 인쇄하려면 추가 인쇄판을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 설명을 기록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수량 표시를 날짜로 바꾸는 기계적 가능성 있음. 사건 장치와 동일한 개조 여부 미확인.’
루카스는 한심하다는 듯 웃었다. “그냥 저 쇠막대를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맞아. 그래서 지켜야 해.” 나는 수사 대상인 톱니 자체를 압수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법원 보존 절차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본의 봉인과 출입 대장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브란트가 병사 둘을 배치하면서 물었다. “기계가 도망갈 일은 없을 텐데요.” “기계는 안 도망가도 기계가 찍은 종이는 도망가죠.” 내가 대답했다.
해 질 무렵 로웬은 민간 창구 조사 소식을 듣고 조금 안도했다. 하지만 나는 피해금이 회수됐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신고자가 낸 은화를 붙잡으려면 운영자의 실제 수납 기록과 현금 소재를 입증해야 했다. 나디아는 임시 피해자 모임을 열자고 했다. 우리는 모임을 허가하되 참가자가 서로를 공개적으로 인증할 필요는 없도록 했다. 어떤 사람은 가난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가족의 보상금 때문에 돈을 냈다. 사유를 공개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피해자는 피해자였다.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루카스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날짜 하나를 사려고 했을까?” 그는 생각하다가 말했다. “돈을 지키려고요.” “아니, 더 정확히는 잃지 않았다는 확인을 사려고 한 거지.” 열두 번째 증언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희망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 희망이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을 값으로 정했다. 사람의 불안이 수익이 되는 곳에서는 기한이 끝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장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한을 멈추는 법적 판단보다, 그 기한을 두려워해야 할 근거가 실제로 있는지 밝히는 일이 필요했다.
시장 감독관은 임시 천막의 가격표가 전날 밤 바뀐 정황도 확보했다. 어떤 사람은 은화 반 닢에 연장을 받았다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은화 두 닢을 냈다고 했다. 우리는 금액만 놓고 사기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서로 다른 대행 서비스가 포함됐는지, 할인이나 추가 비용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왕실이 정한 고정 수수료’라고 안내하면서 제멋대로 가격을 올렸다면 공적 권위를 사적으로 판 셈이었다. 감독관은 옛 왕실 표식을 쓰도록 허락한 관리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왕실 기록에 허가서는 없었다. 허가서가 없다는 사실을 공식 발급기관의 조회 결과로 남기고, 표시의 철거와 자료 보전을 분리해서 진행했다.
나디아는 상담소에서 울던 노인의 말을 들려주었다. 딸의 다리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산 증서가 가짜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듣자 그는 자신의 판단을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인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제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을 속여 돈을 받는 일이 문제이지, 잘못된 안내를 믿었다고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디아는 노인이 환불을 받을 때까지 다시 돈을 내지 않도록 안내문을 주었다. 나는 그 안내문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실은 빈칸으로 남겼는지 확인했다. 도움을 준다는 말은 때로 누구보다 정확해야 한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들이 쇠막대를 장난감처럼 들고 놀고 있었다. 하나가 다른 아이에게 말했다. “서른 번 울리면 마왕이 돈을 준대.” 나는 걸음을 멈췄다. 소문은 이미 장터의 계약을 넘어 놀이가 됐다. 누군가 실제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숫자가 아이들의 입에서 주문처럼 외워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물었다. 가장 큰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일을 구하려고 연장 창구에 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이 사건이 끝나도 달력에서 서른 날이라는 숫자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돈을 내야 하는 이유는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천막은 문을 닫았다. 직원이 도망간 게 아니라 시장 감독관의 표시 시정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리는 현금 상자와 수금 명세를 임의 보전할 수 있는지 법원에 신청했다. 어느 쪽이든 현금이 확인되기 전에는 한 닢도 되찾았다고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루카스가 수레 바퀴에서 발견된 쇠막대의 치수를 들고 왔다. 계수판의 서른 번째 톱니와 맞는 규격이었다. 하지만 그 톱니는 왕궁 시계탑 것이 아니었다.
“제삼 결제소의 옛 외부 납품장에 같은 규격이 있었습니다.”
나는 발주 부서를 확인했다.
‘공동 관리단 보관 종료일 산출 장치.’
이제 누군가 날짜를 계산한 게 아니라, 날짜를 자동으로 만들어 내는 도구를 만들어 팔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제1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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