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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122화
PAYLUA ORIGINAL · 제122화

122화. 시계탑은 하루를 훔치지 않는다

마왕도 세금은 내야 합니다 · 5,109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 시계탑은 여섯 시에 여섯 번 종을 쳤다. 그런데 시계탑 관리인은 오늘이 그보다 한 시간 늦다고 말했다. “늦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관리인 보딘은 내 손목에 있는 시계가 아니라 커다란 톱니를 가리켰다. 이 세계에 손목시계는 흔치 않았고, 내 것은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도 아니었다. 루카스가 시장에서 산 모래시계였다. “겨울철 일광 조정 때문에 종을 치는 시간이 조금 바뀝니다. 이건 성문 개폐에 맞춘 시계고, 문서 인쇄소의 계수판은 별도입니다. 둘을 같다고 보면 안 되죠.” 나는 시계가 어긋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누군가 시간을 조작했다고 생각하려던 자신을 경계했다. 기계마다 역할이 다르면 표시가 다른 것도 정상이다. 문제는 누가 그 차이를 모르도록 악용했는지였다. 보딘의 작업대에는 쇳가루가 쌓여 있었다. 그는 3년 전 화재와 같은 해에 시계탑의 톱니 두 개를 교체했는데, 최근 제삼 결제소의 납품업자가 같은 규격의 톱니를 한 세트 더 주문했다고 했다. 주문 자체가 범죄는 아니었다. 우리는 주문서와 인도 영수증만 복사해 받았다.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는 납품대장에 적힌 수령인의 직책과 실제 서명이 일치해야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을 날짜로 바꾸는 장치는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보딘이 한숨을 쉬었다. “왕실 문서청의 계수판 말입니까? 하루에 한 번 새 판으로 넘어가는 물건이죠. 그걸 두고 사람들은 시계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달력을 찍는 인쇄기입니다.” 왕궁 제이 인쇄실. 이미 여러 사건에서 이름이 나왔던 장소였다. 나는 머릿속에서 너무 깔끔한 연결을 경계했다. 구형 인쇄판, 수첩 표지의 납품 경로, 장갑 보관증, 그리고 30일 기산점. 모두 같은 작업장과 닿아 있다고 해서 한 사람이 전부 조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계수판은 날짜를 소급해서 찍을 수 있습니까?” “판이 남아 있으면 가능하죠. 하지만 소급 인쇄가 됐다는 사실과 누가 거짓 날짜를 적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는 관리인의 말에 웃었다. “오늘은 제가 배울 게 많군요.” “징수관님은 늘 저희에게 배우십니다. 다만 그걸 장부에 적으시더군요.” 인쇄실로 가는 길에는 급식용 밀가루 마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결제소의 새 공지가 붙은 탓에 상인들이 북문 운송료를 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아 수레가 멈췄다는 것이다. 브란트는 경비병을 보내 정상 운송에는 추가 징수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알렸다. 나는 통행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품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공식 문서를 보내고, 상인에게 지불한 금액이 있다면 영수증을 보관하라고 했다. 확인되지 않은 현금 피해를 국고 손실로 계상할 수는 없었지만, 방치하면 내일 시장 가격이 오르는 것은 분명했다. 인쇄실의 책임자 네일은 계수판을 열어 보여 주었다. 숫자판과 날짜판은 따로 움직였다. 하나는 날이 바뀔 때 톱니가 넘어갔고, 다른 하나는 관리자가 수동으로 초기화할 수 있었다. 수동 초기화는 연말이나 장비 수리 때 필요한 정상 기능이었다. “이 손잡이를 돌리면 누가 돌렸는지 남습니까?” “원래는 남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검인 마법 도구를 붙이면서 작업자 표식이 찍히게 했습니다.” “그 검인 장치가 지난번에 과다견적 문제가 제기된 물건입니까?” “같은 계열입니다. 견적이 부풀려졌는지는 제가 증명할 수 없지만, 수리한 날짜는 증명할 수 있어요.” 네일은 지난달 수리 기록을 내밀었다. 서명란에는 ‘임시 관리단 0호’라는 직책이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수리 내역 옆에 ‘되돌림 눈금 수동 복구’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 지시입니까?” “발주서는 제삼 결제소에서 왔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손잡이를 만진 건 저희 직원이 아닙니다.” “그럼 장치를 보존해 주세요. 지금은 누가 만졌다는 추측보다 수리 후 계수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가 중요합니다.” 티르센은 임의 실험을 중단시켰다. 실제 수사 대상 계수판에서 손잡이를 여러 번 돌리면 남아 있는 흔적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동일 규격의 폐기 장치를 별도 확보해 재현 실험을 허가했다. 네일은 그런 장치가 창고에 한 대 있다고 했다. 다만 창고 열쇠를 관리하던 직원이 며칠 전 해고됐다. 그 직원의 이름은 사벨이었다. 삼 년 전 급식실 화재를 증언한 사람 중 하나였다. 사벨을 찾으러 가기 전, 나는 시계탑 위로 올라가 봤다. 보딘은 내가 숨을 헐떡이자 웃었다. “왕국을 구하러 온 징수관이 계단 스물일곱 개에 지는군요.” “세무서 계단이 이 정도였으면 엘리베이터 예산을 올렸을 겁니다.” 보딘은 엘리베이터가 뭔지 묻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알리는 추가 조금 전부터 추에 걸리는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 주었다. 아래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정오 종을 기다렸다. 종소리가 울리자 시장의 상인들은 천막을 걷고 병사들은 근무를 바꿨다. 시간이 법적 계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 번 울린 종이 밥 먹을 때를 알려 주고, 또 한 번 울린 종이 사람을 구조하라고 부른다. 보딘은 시계탑의 오래된 정비 장부를 꺼냈다. 대체로 건조한 기록이었다. 추 무게를 바꾼 날, 균열 난 축을 교체한 날, 겨울철 창문을 닫은 날. 그런데 최근 페이지 한 장에는 ‘공동 관리단 요청: 하루 경과 검증’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작업료는 은화 세 닢으로 기재됐지만 지급 완료 표시는 없었다. 나는 보딘에게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한 번도 일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하죠.” 발주가 존재했다고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산에 기재됐다고 현금이 나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보딘의 설명과 정비 대장 원본의 사진 대조도를 남겼다. 보딘에게 아들이 한 명 있었다. 팔을 다쳐 시계탑을 오르지 못한 청년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숫자판을 손질하는 일을 배웠지만 사고 뒤 글자를 오래 쓰면 손이 떨렸다고 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찾아와 ‘원래 날짜를 소급 인쇄할 수 있다’는 진술서에 도장만 찍으면 치료비를 내 주겠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그 청년이 실제 도장을 찍었는지 묻는 대신, 진술을 할 수 있는 보호 창구를 안내했다. 그는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찍지 않았습니다. 근데 거절한 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약값이 밀렸거든요.” “거절했으니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 말을 믿고 다른 사람 돈이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다는 뜻이죠. 그거면 오늘은 충분합니다.” 청년은 한참 후 처음으로 손의 떨림을 가리지 않았다. 왕궁 제이 인쇄실에서는 다른 노동 문제가 있었다. 네일은 오래된 계수판을 보관하던 직원이 해고된 것은 무단 결근 때문이라고 했다. 사벨의 근태기록에는 같은 날 두 번 출근했다는 표식이 있었다. 한 기록은 시계탑의 하단 출입문, 다른 기록은 왕궁 인쇄실의 창고 문이었다. 거리상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같은 시각 두 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두 기록을 놓고 간단한 이동 시간을 재 보자고 제안했다. 군마로 달리면 가능하고 걸어서는 불가능한 거리였다. 사벨은 군마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록 조작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다. 지각 보고나 잘못 찍힌 출입표가 있을 수 있었다. 브란트는 당시 성문 입출입 대장을 가져왔다. 사벨이 타던 수레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수레 주인은 사벨이 아니라 식재료 운송인이었다. 그 수레는 화재 생존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르던 날에도 사용됐다. 사벨을 찾기 위해 무고한 운송인을 소환하는 대신, 우리는 그가 자발적으로 보관한 배달증의 시간만 대조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흔쾌히 동의했지만 조건을 하나 달았다. 고객 이름은 가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수사에 필요한 것은 그 수레가 언제 어디를 지나갔는지이지, 그날 누구 집에 빵을 배달했는지가 아니었다. 루카스는 이 사건에서 처음으로 내게 반대했다. “사벨이 도망갔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조심하다가 놓치면요?”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도망의 위험이 있으면 보호와 출석 요청을 할 수 있어. 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체포하면 사벨이 무고했을 때 그 피해는 누가 물어 주지?” 루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우린 계속 뒤처지겠네요.” “아니. 제대로 따라가는 중이야.” 내 말이 그를 설득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날 저녁 그는 먼저 원본 기록을 봉인한 뒤 사본만 돌리는 법을 익혔다. 서류를 급하게 다루던 견습이 증거의 속도를 선택하게 된 셈이었다. 시계탑을 내려오며 나는 정오 종이 울릴 때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구는 장사를 시작하고 누구는 밥을 먹고 누구는 병원에 간다. 기계는 같은 시각을 알리지만 그 시각에 기대는 사람의 삶은 제각각이다. 그걸 한 장의 기한표에 묶어 모두에게 돈을 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건 시계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시계를 빌려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의 욕심이었다. 보딘은 폐기 장치를 꺼낼 때 꼭 법원 참관인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한 번 장치 소유권을 두고 군무청과 다툰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부품의 위치를 바꾸는 바람에 소유권과 별개로 원래 상태를 증명할 길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작업장에는 ‘고장 난 것도 기록하고, 버릴 것도 기록하라’는 문장을 붙여 두었다. 나는 그 문장 옆에서 기계 기름 냄새를 맡았다. 아득하게 한국의 사무실 복사기에서 나던 냄새가 떠올랐다.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 동료가 고장 난 복사기 앞에서 웃던 모습이 있었다. 기억이 흐리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러나 오늘 새 마법을 쓰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방금 발생한 대가라고 적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수첩에 가능한 범위만 적어 두었다. 그리고 보딘에게 폐기 장치에 임의로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작업자들이 그를 다시 찾기 전 보딘은 폐기 부품을 하나씩 천으로 감쌌다. 그는 원본을 잃은 뒤 아무리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도 다시 같은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밤에 사벨의 현재 거처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다. 아내가 문틈으로 쪽지를 내밀었다. ‘누군가 어제 시계를 고치라고 했다. 나는 시계를 고친 적이 없다.’ 나는 종이의 글씨를 오래 보지 않았다. 사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수리 지시를 받았다는 뜻인지, 허위 작업자로 몰렸다는 뜻인지부터 구분해야 했다. 쪽지 밑에는 숫자가 하나 적혀 있었다. ‘30’. 그 숫자가 기한인지, 수리 횟수인지, 그에게 약속된 돈인지는 아무도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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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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