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서기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달력을 의심했다.
우리가 쓰는 왕국 달력은 일주일이 일곱 날이고 한 달은 대체로 서른 날이었다. 복잡한 천문학이 필요할 문제가 아니었다. 서류 맨 위에 적힌 ‘발견일로부터 삼십 일’과 옆 칸의 ‘화재 삼 주년 당일 종료’가 같으려면 결제소가 기준으로 삼은 날이 화재 기념일 서른 날 전이어야 한다. 제시된 날짜는 정확히 그렇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봉투 후보는 그보다 앞서 메라가 내놓았고, 법원에서 적법한 수령을 완료한 적도 없었다. 누군가 오래된 기록과 최근의 발견을 한 날짜로 엮은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우리가 그 무렵 봉투를 찾아낼 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아니. 그건 아직 추측이야. 발견을 고의로 오늘 공표했을 수도 있고, 발견일과 무관한 날짜를 발견일처럼 적었을 수도 있지.”
에리카는 법원 책상 위에 세 장의 문서를 나란히 펼쳤다. 오 년 전 공동 보관 규약 사본, 삼 년 전 화재 직후의 수령 중단 통지, 그리고 어제 제삼 결제소가 낸 신청서였다. 나는 세 문서의 ‘기산일’이라는 단어를 각각 다른 색으로 동그라미 쳤다. 첫 문서에는 공동 증언의 적법한 수령이 완료된 뒤 삼십 일이라고 되어 있었다. 둘째에는 화재 조사 종료 전까지 수령을 중단한다는 임시 조치가 있었다. 셋째에는 봉투가 ‘인지된 때’를 수령 완료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언제 생겼죠?” 내가 묻자 에리카가 손을 올렸다.
“최근 인쇄판에 덧씌운 조항과 문구가 유사해요. 그러나 같은 사람이 썼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맞아요. 문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명자의 손까지 같아지진 않죠.”
서기는 제삼 결제소의 법률대리인 테오른이 신청서에 첨부한 봉인 감정 요약을 내밀었다. 그 보고서에는 ‘제12단위 봉투 발견’이라는 행 옆에 작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원본 후보를 보전한 법원의 도장과 생김새가 달랐다. 나는 도장을 곧바로 위조라고 부르지 않았다. 공식 기관마다 도장 종류가 다를 수 있으니까. 대신 그 도장이 누구에게 언제 발급됐는지 확인하는 공문부터 작성했다.
오렐은 조용히 물었다. “이 사건은 세금 징수관의 일이 맞습니까?”
“보관 계약 자체는 제 관할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 계약의 종료일에 맞춰 결제소가 국고 징수권을 가져가겠다는 신청을 냈어요. 그 부분은 우리 일입니다.”
왕궁으로 돌아오자 재무대신 로웬이 수십 장의 지출요구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 방벽 수리비, 북문 수문 인건비, 야간 급식소 연료비. 모두 날짜가 박혀 있었다. 하루를 미룰 수 있는 비용과 미루면 사람이 다치는 비용이 한데 섞여 있었다.
“결제소가 이기면 이런 지출도 그쪽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겠죠?” 로웬이 물었다.
“주장할 겁니다. 하지만 법원이 그 권한을 인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린 어떻게 합니까?”
나는 법원 집행정지 결정문을 펼쳐 정상 세입 관리권이 여전히 왕실에 남아 있다는 문장을 짚었다. “이미 확보한 법적 권한으로 오늘의 지출부터 처리해야죠. 분쟁을 이유로 백성에게 물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오후에 수문 근로자 두 사람이 임금 지급 창구를 찾았다. 전날 급히 수리한 작업에 대한 일당이었다. 지급 대상과 실제 작업 기록은 구비돼 있었지만 회계 담당자가 ‘삼십 일 기한이 지나면 반환될 수도 있다’며 지급을 미루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바로잡았다. 이미 적법하게 승인된 재난 수리 일당과 제12단위 보관 수수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담당자는 최종 집행권자의 확인을 받아 지급 절차를 재개했다. 나는 돈이 손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보고서에 ‘지급 지시 재개, 실수령 확인 대기’라고 적었다.
왕궁으로 돌아가는 계단에서 나는 낡은 장화를 신은 여자를 만났다. 서류를 끌어안은 채 경비병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북문 수문에서 일하는 임시 목수의 아내였다. 남편은 새벽부터 물에 들어가 부러진 받침을 고쳤고, 오후까지 임금이 입금되지 않아 약값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자 경비병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징수관님, 이분이 재무청 접수증 없이 들어오려고 해서요.” 여자는 겁먹은 얼굴로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접수증이 없다고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접수증이 있어야 이후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루카스에게 정식 접수 번호를 만들게 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집 빚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남편이 일한 건 번호를 못 받았네요.” 그 말이 하루의 피로보다 무겁게 들렸다.
담당 부서에서 가져온 작업 확인서에는 남편의 이름이 없었다. 하루 전 급히 사람을 더 썼기 때문에 수정 대장이 아직 결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실무자에게 누가 현장 감독이었는지 물었다. 답은 수문 책임자 나사였다. 나사는 부상자 구호를 마치고 바로 왔다. 그는 작업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허리를 다친 인부 한 명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들어간 시간까지 설명했다. 작업 장소와 일을 끝낸 시각, 현장 책임자의 서명. 기본적인 증거가 갖춰지자 미완성 대장이 사람을 굶게 만드는 핑계가 될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재무대신의 예산 승인까지 대신하지 않았다. 담당자는 기존 재난 수리비의 남은 범위 안에서 명부 보완과 지급 결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수문 노동자 아내는 그것으로 충분하냐고 물었다. “오늘 당장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어느 책상에서 서류가 멈췄는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적게 만드는 일은 약속을 크게 만드는 일보다 중요했다.
그 일로 한 시간이 늦어져 의회의 임시 재정 회의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상단 대표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제삼 결제소의 대리인이 재무청의 세입 전망표에 이의를 냈다는 것이다. 그쪽은 ‘남은 삼십 일’을 근거로 북문 상업세를 향후 예치 계정으로 돌리자고 주장했다. 나는 기존 집행정지 판결을 펼쳤다. 국왕은 의자에 앉아 내 설명을 들었다. 오래전 같았으면 왕명 한 장으로 상대의 장부를 압수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델리온은 이번에는 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좁고 확실한 조치는 무엇이오?” 나는 세입 계정의 은행장부를 잠그자는 대신, 징수권 소유에 다툼이 있는 계정을 별도 표기하고 입금 경로를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확인된 정상 세입은 왕실이 수납하되 어떤 민간 계약도 그 돈을 자동으로 빼내지 못하도록 집행 명령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로웬은 계산기를 잡고 말했다. “그러면 행정 비용이 늘어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늘죠. 하지만 청구권이 확정되지 않은 상대에게 돈을 넘겼다가 다시 찾는 비용보다는 적을 겁니다.” 국왕은 대안을 두 가지 요청했다. 하나는 지금처럼 별도 표기하는 방안, 다른 하나는 법원 예치금을 사용하는 방안이었다. 우리는 법원 예치금이 곧 국고가 아니라는 점, 그곳에 묶이면 방벽 수리 일당을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비교했다. 명령은 첫 번째 방안으로 내려졌다. 조세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선언만 하고 끝내지 않고 실제 내일의 급여와 수리비가 살아 있도록 한 것이었다.
회의 뒤 브란트는 내게 작은 보고서를 내밀었다. 북문 시장에서 ‘서른 날 뒤부터 왕실 세금을 두 번 내야 한다’는 전단이 돌고 있었다. 전단의 맨 아래에는 결제소 이름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증거로 보전하면서도 군인에게 전단을 모두 찢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불법 고지가 의심되면 유통 경로를 확인하고 공식 정정 안내를 해야 한다. 과장된 풍문을 탄압하려다 상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었다. 브란트는 자신이 사람보다 종이를 더 많이 호위하는 것 같다고 농담했다. “호위하는 건 종이가 아니라 종이 때문에 잃을 수 있는 밥값입니다.” 내가 대꾸했다.
우리는 작은 안내문을 작성했다. ‘현재 왕국의 정상 세금은 지정된 왕실 창구에 납부한다. 제삼 결제소의 기산일 분쟁은 계속 심리 중이며, 이 사유로 두 번 납부할 의무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범인인지 쓰지 않았고, 마왕이 금고를 열 것이라는 소문도 넣지 않았다. 벽보를 붙이자 어느 상인이 물었다. “그럼 저희가 안전하다는 뜻입니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 어떤 창구가 적법한지는 분명히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내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까지 제가 팔 수는 없습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안심이었지만 적어도 비싼 거짓말은 아니었다.
밤이 되기 전 에리카는 세 문서에 서로 다른 색의 표식을 붙여 주었다. 파란색은 실제 도착한 날짜, 붉은색은 작성자가 적은 날짜, 회색은 아직 법적 효력이 확인되지 않은 날짜였다. “이런 표시는 예전부터 쓰셨습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죠. 두 날이 같은 날일 필요가 없다고.” 그녀는 그때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에리카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회계의 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빈자리였다. 세 색을 다 섞어 검정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그날 내 수첩에는 색깔별로 구분한 날짜가 세 줄 적혔다. 작성된 날, 전달된 날, 효력이 생긴 날. 세 줄이 한 줄로 합쳐지는 순간 누군가는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내게 된다. 나는 그 위험을 동그라미 쳤다. 처음 왕국에 왔을 때는 세금을 더 걷는 일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걷지 않아야 할 돈을 걷지 않는 것 역시 국고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해 질 무렵 테오른이 찾아왔다. 그는 서명 대신 자기 명함을 내밀었다. 이 왕국에는 명함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결제소가 왜 하필 오늘을 발견일로 잡았는지 묻고 싶습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알면 답할 의무가 있는 곳에서 답해 주세요.”
“그들이 기대하는 건 발견이 아닙니다. 모두가 날짜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이죠.”
“그 말을 증언할 수 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그는 낡은 동판 문서 한 장을 놓고 갔다. ‘화재 조사 중단 통지’의 뒷면을 인쇄할 때 쓰던 모본이었다. 모서리에 작은 선이 둘 있었다. 하나는 수령 중단일, 하나는 계산 재개일을 표시하기 위한 구멍이었다. 구멍 하나에만 새 잉크가 묻어 있었다.
나는 테오른에게 불리할 수 있는 물건을 스스로 가져온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임의 제출인지, 보관 경로가 무엇인지 기록하고 법원 감정관에게 넘겼다. 밤늦게 감정관 티르센의 예비 회신이 도착했다.
‘동판의 두 번째 구멍은 원래 날짜를 찍기 위한 구조가 아니라, 후대에 추가된 이동식 계수판의 고정점일 가능성.’
나는 창밖의 시계탑을 바라봤다. 누군가 서른 날을 기다린 게 아니라, 서른 날이 시작됐다고 알리는 기계를 만들었다면?
달력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생겼다. 시간을 찍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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