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증언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하루 만에 왕도로 퍼졌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열두 번째 증언이 맞는지 확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후보’라는 글자를 잘 읽지 않았다. 누구든 자기가 듣고 싶은 결론을 그 자리에 집어넣었다.
마왕이 왕국을 돌려준다. 드래곤이 금고를 연다. 왕국의 빚이 전부 사라진다. 심지어 나에게 귀환의 문이 열렸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마지막 건 어디서 나온 겁니까?” 내가 물었다.
루카스가 쪽지를 내밀었다. 시장의 소문 수집원이 적은 문장이라고 했다. ‘징수관이 열두 번째 증언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
나는 수첩을 덮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조차 요즘은 선명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떠나온 세계의 문소리와 커피 향을 적어 놓은 수첩만이 기억의 일부를 붙잡고 있었다. 정밀 열람을 쓰면 답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이라는 대가를 치른 뒤 얻은 이름은 다시 독립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그 능력을 쓰지 않았다.
오전 심리에 앞서 우리는 왕실 의회에 보낼 임시 재정보고서를 준비했다. 재무대신 로웬은 처음 보고서에 숫자 하나가 없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회수 가능한 금액 예상치가 없다는 말입니까?”
“아직은 그렇습니다.”
“어젯밤부터 왕도에선 보관료 수백 금화를 되찾는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더 위험합니다. 몇 년치 청구액 전체가 실제 지급된 건 아닙니다. 이미 승인만 된 항목도 있고, 민간 계좌에 실제 들어간 것인지 확인해야 할 항목도 있어요.”
“그래도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로웬이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고 17금화에서 출발한 왕국을 하루하루 버티게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내일 환급될 돈이라고 말해 놓고 다음 날 못 돌려주면 희망이 빚이 됩니다. 대신 오늘 정상 수납되는 세금은 정상적으로 지킨다고 말씀하시죠.”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로웬은 보고서에 ‘추정 회수액 미산정’이라는 문장을 넣고, 시장 피해자의 미환급액과 왕실 세입을 별도 항목으로 표시했다. 금화 720, 480, 260이라는 숫자도 함부로 더하지 않았다. 방벽 유지료의 승인액과 출금 증빙, 조폐소에 보전된 금액은 서로 다른 위치의 돈이었다.
그다음으로 국왕 아델리온을 만났다. 그는 거대한 지도를 펼쳐 놓고 북부 수문과 왕도 급식소를 번갈아 가리켰다.
“제삼 결제소가 지금 세입을 가져가면 북부 방벽 수리가 멈춥니다.”
“그래서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폐하의 명령만으로 상대방의 계약을 없던 것으로 만들면 왕국의 다른 계약까지 흔들립니다.”
“나는 왕이오. 왕국이 망하지 않게 해야 하오.”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못 하는 일도 있어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브란트가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제야 지금 내 목숨이 달린 자리에서 왕에게 못 하는 일을 설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델리온은 오래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서명한 도장 하나가 수십 명의 명의를 빌려 쓴 자에게 왕국을 넘길 수 있다면, 그 왕국은 처음부터 내 것만은 아니겠군.”
“세금은 백성의 생활을 지키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국고를 지키는 사람과 내 왕관을 지키는 사람을 구분하시오.”
나는 국왕에게 특별조사권을 추가로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조사는 법원과 감사원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 권한의 경계를 지키는 편이 더 중요했다. 왕실의 편의를 위해 절차를 무너뜨리면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그 방법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오후 법정에서 세르나와 로흐의 감정이 교차했다. 마계는 공동 보관의 최종 수령 여부를 단독 서명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고, 로흐는 드워프 규약에서 실물 보관과 권리의 이전을 다르게 다룬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우리 편인 것은 아니었다. 로흐는 왕국이 수령표 원본을 함부로 펼친 것도 보존상 위험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그 부분을 인정하고 향후 감정 절차를 수정했다.
리엔 모브가 물었다. “그럼 왕국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군요?”
“원본 취급에 개선할 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이 귀하의 단독 승인 권한을 입증하지는 않죠.” 내가 말했다.
법관은 두 주장을 구분해 기록했다. 마왕이나 드래곤의 말을 권위로 이용해 상대를 눌러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근거를 제공하는지만 봐야 했다.
나중에 법정 복도에서 루카스가 물었다.
“징수관님, 오늘 우리가 진 겁니까, 이긴 겁니까?”
“돈을 지켰고, 사람의 이름도 아직 지켰지. 그럼 오늘 해야 할 일은 했어.”
“마왕과 드래곤이 오면 이길 수 있을까요?”
“그분들이 법정에 와도 증거가 부족하면 질 수 있어.”
“참 매번 꿈이 작네요.”
“왕국이 안 망하는 꿈도 꽤 크거든.”
법원은 메라가 제출한 봉투의 예비 감정 결과를 공지했다. 종이 섬유와 봉인 실의 연대는 삼 년 전 화재 전후 사용됐던 물품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장 열한 번째 수령표와 원래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결론은 아직 아니었다. 에리카 부친의 필체와도 일부 유사한 특징이 있었지만 단독으로 작성자를 확정할 수 없었다.
제삼 결제소의 리엔 모브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신규 세입 관리권을 임시로 맡겨 달라는 이의신청을 다시 주장했다.
“열두 번째 증언이 아직 접수되지 않았으므로 기존 보관자의 권한이 유지됩니다.”
법관이 물었다. “그 기존 보관자가 누구입니까?”
“제삼 결제소의 지정 관리자입니다.”
“그 지정의 원본을 제출했습니까?”
리엔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최근 계약 사본을 제출했습니다.”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고 스스로 말하셨군요.”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실 쪽이 유리해진 듯 보였지만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서류 제출 실패가 곧 상대의 범죄 입증은 아니다. 우리 쪽도 공동 보관물의 정확한 소유자와 완료 조건을 아직 모른다.
나는 법정에 표 세 장을 제출했다. 첫째는 보관원장의 열두 단위와 열한 수령표에 관한 물품 목록. 둘째는 카르디온 측 공개 보관 규약과 마계 특별 확인서의 번역 차이. 셋째는 메라가 제출한 봉투의 증거 경로와 미확정 항목이었다. 종이가 많아지자 루카스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러다 왕국 빚보다 종이값이 커지겠어요.”
“그 전에 너의 글씨가 궁중 보존고 유물로 지정되겠지.”
세르나는 마계의 원문 감정 의견을 보냈다. ‘마지막 하나 반환 유보’라는 말은 공동 증언 전체가 완료됐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 단위의 적법한 수령 확인을 미뤘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공동 보관 협약의 최종 해석권은 별도의 공동 심리에 있었다. 세르나 자신도 판사인 척하지 않았다.
브란트는 북문 초소의 구조종 오작동 기록을 제출했다. 사람이 오지 않았는데 임시 출석 표식이 한 번 생성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법원은 그것을 진짜 증언자의 동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제소가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겁니까?” 루카스가 속삭였다.
“적어도 저 임시 출석 표식만으로는 안 되지.” 나는 말했다.
그날 법원은 세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째, 최근 인쇄된 단독 승인 문구는 진정성이 확인될 때까지 공동 보관 증언의 완료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 둘째, 제삼 결제소가 왕국의 정상 세입을 일괄 관리하겠다는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 메라가 제출한 제12단위 후보 원본은 적법한 소유권·보관권 판단 전까지 독립 보관한다.
우리는 승소한 것처럼 환호하지 않았다. 금화가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 사건을 핑계로 왕국의 세금을 통째로 가져갈 길 하나를 막았다. 시장의 밀가루값이 내일 당장 내려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 돈을 누구의 장부에 넣어야 할지는 지켜 낸 셈이었다.
판결 뒤 급식소에 들렀다. 메라는 오늘도 남은 빵을 정확히 세고 있었다. 어제 열두 개를 구웠고 오늘은 한 개가 남았다고 했다. 그녀가 그 빵을 작은 천으로 감싸자 나는 물었다.
“그걸 누구에게 주실 겁니까?”
“내일 배고픈 사람에게요.”
그 대답이 좋았다. 무슨 이름이 적혀 있어도 빵은 먹을 사람이 있어야 했다.
에리카도 메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에 관해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메라가 답했다. “하지만 내가 좋은 말을 했다고 그분이 그날 뭘 했는지 다 알게 되는 건 아니에요. 조사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리카는 짧게 대답했다.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 세르나가 다른 소식을 전했다. 마왕 측에서 제12단위 후보 원본의 존재를 확인했고, 고대 공동 협약에 따라 정식 대조 심리를 신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카르디온의 사절 로흐도 공개 보관 규약의 감정인으로 참여할 의향을 전했다.
“이제 마왕과 드래곤이 같은 법정에 오겠군요.” 루카스가 말했다.
“왕국 역사상 가장 비싼 출석 교통비가 나올지도 몰라.”
“드래곤은 날아오면 되잖아요.”
“그럼 성벽 수리비를 누가 내?”
우리는 잠시 웃었다. 그러나 세르나는 웃지 않았다. 그는 다음 문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공동 보관 제12단위의 적법한 수령 확인이 개시되면, 보관 종료 조건을 심리한다. 보관권 종료 후 미반환 물품의 인계 의무를 정한다.’
그 뒤에는 조그맣게 쓰인 보충 조항이 있었다.
‘부당하게 수령을 지연시킨 자는 그 기간의 보관료를 청구할 수 없다.’
내가 그 문장을 읽자마자 오래된 계산이 떠올랐다. 제삼 결제소가 몇 년 동안 공동 증언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달 청구해 온 보관료. 그 가운데 실제 지급된 돈, 승인만 된 돈, 사적으로 받은 돈은 아직 구분해야 한다. 모두 합쳐 한 번에 환급을 요구하면 도리어 피해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
나는 새 조사의 첫 장을 폈다.
‘보관 기간: 삼 년 이상. 미반환 사유: 분쟁 중. 보관료의 정당성: 미확정.’
바로 그때 법원 서기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징수관님, 제삼 결제소에서 반대 서류를 냈습니다. 제12단위 봉투를 발견한 날부터 삼십 일을 세자는 주장이에요.”
“그건 아직 안 됩니다. 적법한 수령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요.”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서기는 숨을 골랐다.
“그쪽에서 말하는 삼십 일의 마지막 날이, 화재 삼 주년이 되는 날과 정확히 같습니다.”
나는 서류를 받아 날짜를 다시 계산했다. 첫 번째 칸의 봉인 일자와 두 번째 칸의 작성일이 달랐다. 누군가 시간을 계산할 기준을 바꾼 듯했다.
이 왕국에서 날짜는 언제나 돈보다 비쌌다. 한 날짜를 믿게 만들기 위해 누군가 삼 년을 기다렸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가져가려 했을까.
수첩 맨 아래에 나는 제목을 적었다.
‘서른 날의 시계.’
제12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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