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시장에서 가장 빨리 팔리는 것은 빵도 술도 아니었다. 남의 불안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종이였다.
제삼 결제소의 긴급 이의가 접수된 다음 날 아침, 시장에는 ‘열두 번째 증언권’이라는 물건이 나왔다. 얇은 금박을 입힌 종이 한 장. 그 종이를 사면 곧 열릴 왕실 회수금의 배당을 우선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진짜면 저희 급식소도…” 루카스가 말을 흐렸다.
“이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돼. 지금 왕국에는 배당할 회수금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어.”
나는 아침부터 시장에 갔다. 상인들은 세무조사관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장부를 숨겼다. 어떤 이는 빵집의 밀가루까지 감추려 했다. 나는 영업 중단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우선 그 종이를 누가 발행했고 누구에게 팔았는지 살펴봐야 했다. 가짜 증서를 사들인 사람을 사기범 취급하면 신고할 사람도 없어진다.
한 노인은 은화 세 닢을 내고 증서를 샀다고 했다. 그의 딸은 지난해 수문 공사에서 다리를 다쳤다. 보상금을 청구하려면 이 증서를 가져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 줬다는 것이다.
“증서 없이도 보상 절차는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이걸 사야 한다던데.”
“그 사람이 공무원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지금은 영수증과 판매자의 인상착의를 적어 주세요. 돈을 돌려받을 방법도 함께 찾겠습니다.”
노인은 증서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한쪽 모서리에 검은 깃털 네 개가 찍혀 있었다. 리엔 모브가 내밀었던 위임 인장과 닮은 도안이었다. 하지만 도안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리엔이 발행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잉크는 최근 제작됐고, 종이의 섬유는 시장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였다.
“저희가 이걸 압수해도 됩니까?” 브란트가 물었다.
“발행 경로 보전 명령 범위를 확인해야죠. 자발적으로 제출할 사람의 사본부터 받겠습니다.”
브란트는 투덜댔지만 동의했다. 왕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긴급 압수로 해결한다면 그건 왕실이 아니라 거대한 도둑이 될 것이다.
증서를 판 좌판은 이미 문을 닫았다. 대신 뒤쪽 창고에서 잉크에 젖은 나무판을 찾았다. 인쇄판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아래쪽에는 ‘단독 승인’이라는 문구의 역상이 새겨져 있었다. 감정관 티르센이 현장 보존 절차로 사진을 찍고, 손잡이 부분의 파손 상태를 기록했다.
“이 판이 제삼 결제소 규정집을 찍었을까요?” 루카스가 물었다.
“서체가 비슷합니다.” 티르센이 말했다. “같은 기계인지는 잉크 압력과 판의 틀어짐을 봐야 합니다. 방금 본 것만으로는 말할 수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편이 기대하는 결론이라고 해서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증서를 사들인 사람의 거래 경로를 추적하는 동안 우리는 뜻밖의 도우미를 만났다. 나디아가 북부 상단 조합에서 가져온 운송 전표였다.
“이 증서를 팔던 장사꾼들이 지난주 우리 교역소에서 자리를 빌렸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가명으로 등록한 것 같아. 하지만 자리 임대료를 은화로 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지. 교역소는 정식 세금 신고도 마쳤거든.”
나는 전표를 훑었다. 은화 여섯 닢이 자리 임대료로 들어왔고, 영수증 번호는 정상적으로 이어졌다.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장사꾼들이 피해자에게 받은 돈의 총액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임대료를 받았으니 공범이군요.” 루카스가 말했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나디아가 헛웃음을 쳤다. “우리 가게에서 빵을 산 도둑이 있으면 빵집 주인도 도둑이야?”
“아닙니다. 제가 잘못 말했어요.”
나는 루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런 실수는 지금 하는 게 낫지. 판결문에 쓴 다음 사과하면 늦어.”
나디아는 판매자들이 쓰던 천막의 위치와 철수 날짜를 그려 줬다. 경비대는 현장을 지나간 사람들을 묻기 전에 가게 주인들에게 선택적으로 자료 보관 요청을 보냈다. 장사꾼이 먹었던 음식이나 입었던 옷보다 어떤 장부를 쓰고 어떤 영수증을 배포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어 왕실의 민원 담당자가 피해자에게 접수 비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늘어났으니 서기관의 인건비도 늘었다는 것이다.
“접수 비용을 받으면 돈을 잃은 사람이 또 돈을 내야 하잖아요.” 에리카가 말했다.
“예산 없으면 직원은 무슨 돈으로 일합니까?” 담당자가 반박했다.
나는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원 처리에 배정된 기존 예산 항목부터 확인했다. 지난달 남은 서식 인쇄비와 중복 청구가 보류된 행사비가 있었다. 용도 변경에는 별도 결재가 필요했지만,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당분간 상담 인건비로 쓸 수 있었다.
“피해자에게 먼저 청구하지 말죠. 오늘 접수받고, 다음 주에 인력 재배치 결과를 보고합시다.”
담당자는 표정을 풀었다. 무슨 돈이든 공짜로 생기는 게 아니었다. 다만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올바른 자리에 놓는 것이 정책이었다.
그날 오후 한 젊은 여자가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는 가짜 증서를 팔던 사람에게서 ‘삼 년 전 화재의 열두 번째 증인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내 손에 든 펜이 멈췄다.
“그 증인의 이름도 들었습니까?”
“못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을 알면 돈을 더 내라고 했어요.”
누군가는 사람의 생사를 떡값처럼 팔고 있었다. 나는 여성의 진술을 보호기관을 통해 접수하고 이름을 공개 명단에서 뺐다. 그 가짜 판매자가 실제 증인의 정체를 알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건의 목적이 단순한 허위 수익 배당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군가의 신원을 사고파는 시장을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막아야 할 피해가 생긴 것이다.
정오에는 시장 앞마당에서 작은 소동이 났다. 누군가 인쇄판이 발견된 창고를 불태워 증거를 없애려 한다고 소리쳤다. 경비병들이 뛰어왔지만 실제 불길은 없었다. 대신 수상한 연기가 근처 빵가마에서 피어올랐다. 빵집 주인은 경비대를 향해 삿대질했다.
“나까지 방화범으로 만들 셈이야? 오늘 아침부터 빵 구웠어!”
“빵은 죄가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징수관님, 가마에도 세금 붙입니까?”
“지금은 빵 세 개만 주세요. 영수증 포함해서.”
빵집 주인은 씩 웃었다. 우리는 허위 신고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주변 사람들을 위험할 수 있는 창고 밖으로 이동시켰다. 소란을 틈타 누가 문서 상자를 옮겼다는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대는 시장의 정상 통행을 막지 않는 선에서 출입 경로를 확인했다.
오후가 되자 피해 신고가 늘었다. 은화 한 닢을 낸 사람도 있었고 다섯 닢을 낸 사람도 있었다. 각자 산 증서의 표제가 조금씩 달랐다. ‘우선 반환’, ‘열두 번째 증언 배당’, ‘왕실 보증 수익권’. 같은 사기에 세 가지 이름을 붙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돈을 돌려줄 수 있나요?” 루카스가 물었다.
“확보한 돈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피해 접수 건수는 환급 가능한 금액과 달라.”
우리는 임시 피해 등록 창구를 열었다. 돈을 내야 신고할 수 있는 유료 접수는 금지하고, 이름을 숨겨야 하는 사람은 보호기관을 통하게 했다. 그 가운데 서너 명은 마이렌과 같은 옛 화재 피해 가족이었다. 나는 그들의 증언을 억지로 합치지 않았다. 같은 증서를 샀다고 같은 경위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해가 질 무렵 왕실 감사원에서도 연락이 왔다. 인쇄판이 발견된 창고의 임대인이 이미 달아났다는 신고였다. 그러나 임대료 계좌에는 최근 납부 기록이 남아 있었고, 실제 건물 소유자는 따로 있었다. 나는 주소 하나만 보고 소유자를 구속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창고의 사용자는 계약서를 쓴 사람과 다를 수 있었다.
루카스가 근처에서 은화 두 닢을 주웠다. 그는 증서 판매대 밑에 떨어져 있었다며 내게 건넸다. 나는 즉시 손으로 만지지 말고 위치를 기록하라고 했다. 누가 떨어뜨렸는지 알 수 없는 동전은 사기 수익금이라고 곧장 이름 붙일 수 없다.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으면 수사는 언제 끝나요?” 루카스가 물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한 다음 하나씩 확인할 때 끝나지. 모르는 걸 다 안다고 써 버리면 수사는 빨리 끝나겠지만 사람이 잘못 처벌받겠지.”
나는 은화의 위치와 상태가 담긴 사진을 보관했지만 그것을 피해 환급 재원으로 적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그 돈이 누구의 것인지 더 엄격히 확인해야 했다.
민원 창구에서는 한 노점상이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럼 진짜 열두 번째 증언이라는 게 나오면 우리한테 돈이 돌아옵니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약속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기 피해에 대해서는 따로 피해금 회수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말이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라면서도 내일 필요한 서류를 챙겨 오겠다고 했다.
저녁에 세르나가 마계에서 가져온 소식을 전했다. 가짜 증서의 검은 깃털 도안은 오래전 퇴출된 보증 관리인의 로고를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하지만 원본 도안에서 오른쪽 마지막 깃털은 깃대와 떨어져 있었다. 시장 증서에서는 네 개 모두 이어져 있었다.
“위조자가 대충 그렸나 보군요.”
“그럴 수도, 다른 판을 썼을 수도. 중요한 건 새 증서가 고대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지.”
나는 시장 입구에 간단한 공고를 붙였다.
‘공동 증언의 수령 여부는 공개 배당권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나 상단도 미확정 반환금을 선판매할 수 없습니다. 구매자는 증빙을 보관하고 피해 사실을 신고하십시오.’
공고 아래에서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산 이 종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증서에 약속한 수익권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낸 사실과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닙니다.”
노인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피해 접수표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오늘 돈을 얼마나 되찾았는지 물었다. 직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답을 그대로 보고서에 적었다. 신고된 피해액은 여러 닢이었고, 수사로 보전된 증서는 수십 장이었다. 하지만 수사로 보전된 종이가 현금은 아니었다. 그날은 누구도 허위 배당 증서 한 장을 더 사지 않도록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늦은 밤 나디아가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 “진짜 돈은 내일도 벌 수 있어. 하지만 오늘 잃어버린 사람들의 믿음을 되찾는 건 오래 걸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인쇄판 보존실에 보내는 운송장에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열두 번째 증언은 시장에서 팔지 않는다. 그것을 사려는 자에게는 반납할 권리도 없다.’
필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협박일 수도, 내부자의 경고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선량하다고 생각하지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신 한 줄을 적었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소문이 돈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더 단단히 숨겨야 한다.’
제11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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