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에게 편지를 보내는 데 우표가 필요한지는 몰랐다. 그러나 답장을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했다. 사절단 도장, 붉은 절벽을 통과할 허가증, 그리고 그가 먹지 않을 만큼 작은 봉투.
브란트는 마지막 조건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드래곤이 종이를 먹습니까?”
“저번에 원장 하나를 불로 데우다 모서리를 태웠잖아요.”
“그건 감정 과정이었어.”
“그 감정 비용을 누가 부담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브란트는 말없이 서류를 내밀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세금 징수관의 말발이 군인보다 강하다는 것은 작은 위안이었다.
나는 카르디온에게 왕국의 수령표 열두 단위 가운데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 알렸다. 소유자나 보관자의 이름을 요청하지 않았다. 우리가 찾는 것은 고대 공동 증언 보관물에서 ‘수령’이 무슨 뜻이었는지에 대한 예전 사용례였다. 카르디온이 보관 중인 드워프 신탁 기록에 비슷한 서식이 있다면 법원 감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로흐가 도착했다. 드워프 사절은 탁자 위에 길이 반 뼘짜리 돌판을 놓았다. 로흐의 수염에 달린 은고리가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딸랑거렸다.
“우리 쪽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신탁의 거래내역이 아니라 공개된 보관 규약이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금고를 열어 달라고 부른 건 아니니까요.”
“당신이라면 금고 앞에서 잠깐 고민했을 거라고 들었소.”
“금고를 열려면 감사권이 있어야죠. 그리고 꺼낼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로흐가 껄껄 웃었다. 그는 돌판의 뒤집힌 면을 공개했다. 드워프 문자 옆에 왕국 공용어 번역이 붙어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위탁자가 물건을 맡기면 보관인은 물건을 받았다는 증표를 작성하고, 반환받을 사람이 수령 증표를 내준다. 이때 증표의 수가 물건의 수와 반드시 같지는 않았다.
“광석 한 상자를 열두 명이 나눠 맡을 수도 있고, 열두 상자를 한 사람이 받을 수도 있으니까.” 로흐가 말했다.
“그러면 ‘열두 단위 중 수령 열하나’는 물건이 하나 부족하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렇소. 다만 그 기록을 만든 자들이 무엇을 단위라고 정했는지 알아야 하오.”
로흐는 돌판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곳에는 지워진 것 같은 세 개의 홈이 있었다.
“이건 뭡니까?” 내가 묻자 로흐가 대답했다.
“빈 증표가 아닙니다. 봉인을 붙일 때 통과시키는 실구멍이지. 똑같은 도장이 찍혀도 실구멍의 위치가 다르면 원래 묶였던 순서가 달라요.”
우리는 가져온 사진을 보여 줬다. 열한 번째 수령표의 뒷면에는 실구멍이 두 개 있었다. 다른 표에는 하나만 있었다. 로흐는 사진에 잉크 한 점을 찍어 구멍 사이의 간격을 표시했다.
“둘을 겹쳐 묶으려다 실이 끊어진 흔적 같소.”
“누군가 제12장을 떼어 냈다는 뜻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 내가 말하지 않은 걸 기사로 쓰지 마시오.”
“기사 쓸 기자도 없습니다.”
“소문 쓰는 사람은 언제나 있소.”
카르디온의 답장은 저녁에 도착했다. 드래곤은 불에 그을리지 않은 아주 작은 금속판 하나를 보내왔다. 판에는 영번 협약의 공동 증언 보관인에게 부여된 의무가 적혀 있었다.
‘보관자는 불에 타지 않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불이 났을 때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구분할 책임이 있다.’
난해한 문장이었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세르나가 웃었다.
“인간은 불이 나면 문서가 살아남았는지부터 확인하지. 우리 마계는 불이 나면 누가 그 문서의 이름으로 말했는지 확인해.”
“드래곤은요?”
“드래곤은 일단 불을 끄게 하지. 자신이 낸 불이 아니라면.”
카르디온은 또 다른 이야기도 전했다. 삼 년 전 화재 직후 누군가 드워프 신탁 자산을 ‘공동 재건 기금’으로 전환하라는 청구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거부했다. 신탁의 소유자는 드래곤이 아니었고, 공동 재건 기금이라는 계정에는 수익자 명단도 없었다. 기록에 남은 청구 서식의 봉인 실구멍 간격은 우리가 찾은 마지막 수령표와 비슷했다.
“금액이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로흐는 원본 사본을 한 장 더 꺼냈다. ‘평가액 340금화 상당’. 그 아래 ‘임시 보전 요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 인출이나 지급을 기록한 칸은 비어 있었다.
“이걸 국고 수입으로 기록하면 안 되겠죠.” 루카스가 물었다.
“당연하지. 드래곤이 거절한 청구를 왜 우리 돈이라고 적어.”
“돈 이야기를 하니까 반가워서요.”
로흐가 눈을 가늘게 떴다. “340금화가 적은 돈인가?”
“왕국에서는 큰돈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없는 돈으로 배급표를 짜면 안 됩니다.”
나는 그날 왕국 북쪽 제방 공사의 결재표도 함께 검토했다. 제방 수문 하나가 고장 나 곡물 수송이 하루씩 늦어지고 있었다. 군무청은 긴급 수리 명목으로 삼십 금화를 청구했으나 예산 원장의 해당 칸은 이미 지난달 수리에 쓴 것으로 되어 있었다. 루카스는 당장 돈을 지급하자고 했지만, 나는 실제 수리 물품과 재고를 먼저 확인하도록 했다.
로흐가 근엄하게 물었다. “수문을 고치는 데도 증언이 필요한가?”
“수문은 고쳐야 합니다. 다만 같은 수문을 두 번 고쳤다고 돈을 주면 다음 달에는 세 번 고쳤다고 할 겁니다.”
“내가 가진 대장간이라면 못을 빼앗아 올 거요.”
“이 왕국에서는 감사 보고서부터 빼앗아 옵니다.”
우리는 수리 기사를 불러 부품을 직접 확인했다. 새 경첩은 창고에 있었다. 반면 임금은 미지급이었다. 나는 중복 청구된 물품비 지급을 보류하고, 실제 수리 인력의 일당을 별도 인정하도록 결재를 올렸다. 수문이 열리면 내일 급식소로 들어갈 귀리 열 자루가 늦지 않게 도착한다. 드래곤과 고대 계약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에게 먹일 빵보다 먼저일 수는 없었다.
로흐와 대화가 끝나자 드워프 장인 한 사람이 뒤따라 들어왔다. 이름은 호른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눈인사를 하는 대신 손바닥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양손에 작은 화상 흉터가 있었다.
“이건 신탁 금고를 만들다가 난 상처요. 카르디온의 불 때문이 아니오. 내가 직접 달구다 데었지.”
“왜 그 얘기를 하십니까?”
“다들 용의 돈을 이야기할 때면 용이 금고를 열어 백성에게 금화를 뿌리면 된다고 하지. 그 금고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드워프 후손의 재산도 들어 있소. 우리가 열쇠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나는 그 말을 적었다. 왕국에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신탁을 마음대로 풀어 쓰면 세금징수관이 아니라 약탈자가 된다.
호른델은 증표의 재질을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법원에 원본을 옮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는 재현용 천에 같은 실을 묶고 불꽃을 가까이 가져갔다. 싼 삼실은 빠르게 타들어 갔고 드워프산 방염사는 붉은빛만 잠깐 머금었다. 봉인에 쓰인 실이 어떤 종류인지 알면 불 속에서 어떻게 보존됐을지 추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럼 봉인이 남아 있었다고 해서 그곳이 불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군요.”
“바로 그거요. 사람들은 그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서가 화재 이후 만들어졌다고 우기지만, 불에서 살아남는 천도 있고 종이도 있소. 반대로 젖어서 망가진 봉인이 불을 맞지 않았다는 증거도 아니지.”
나는 삼 년 전 두 번의 발화가 있었다는 증언을 생각했다. 첫 번째 불이 번질 때 누군가 증언 묶음을 분리했다면 봉인이 보존된 이유도 달라질 것이다.
그는 드워프 협약의 재미있는 조항도 들려주었다. 어떤 보관자는 맡긴 물건이 사라지면 금화로 배상하려 했지만, 드워프 법에서는 물건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고대의 약속 하나를 금화로 치환할 수 없다’는 문장이 당시 판례에 남아 있었다. 보관물의 권리와 경제적 배상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왕국이 배워야 할 법이 많네요.” 루카스가 말했다.
“우리 쪽도 배워야 할 게 있소. 당신들 왕국에는 빵을 남에게 나눠 주는 규정이 있더군.”
“규정이라기보다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내가 답했다.
호른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려 했지만 공식 감사 비용에서 접대비를 지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셋이 각자 빵값을 냈다. 로흐는 그걸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세금징수관과 밥 먹으면 누가 얼마를 먹었는지도 장부에 남는구먼.”
“그래야 제 빵을 남에게 청구하지 않으니까요.”
오후에 카르디온이 보낸 추가 회신에는 ‘금화 340닢 평가액’이라는 문구를 쓴 자가 신탁 자산의 변환을 신청한 것이 아니라, 기금 보증이 가능한지 사전 문의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즉 청구서로 보이는 문서조차 원문 유형을 확인하기 전에는 실제 지출 신청인지 확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서둘러 소문 정정 공고를 준비했다. 드래곤이 왕국에 340금화를 빚졌다는 이야기가 벌써 퍼졌기 때문이다.
‘카르디온은 이 사안과 관련해 340금화를 납부하거나 지급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수치는 과거 보전 요청 서식의 평가액으로, 정당한 납세액과 무관합니다.’
우리 왕국에서는 소문이 금화보다 빨리 돌았다. 그래서 사실을 바로잡는 서류도 때로는 금고 문보다 중요했다.
퇴근을 준비할 무렵 로흐가 문을 두드렸다.
“한 가지 더.”
그는 금속판 뒷면의 작은 흠집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글자인 줄도 몰랐던 자국이었다.
“우리 장인은 봉인을 둘로 나눌 때 이렇게 표식을 남긴다. 한쪽을 잃어도 다른 쪽이 원래 같은 물건에 속했는지 확인하려고.”
“어디서 다른 절반을 찾죠?”
“우리 쪽에는 없소. 삼 년 전 그 청구서를 가져온 자가 왕도 급식실에서 봉투를 건네받았다고 적어 놓았더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급식실.
메라가 깔아 준 푸른 실 헝겊이 떠올랐다. 그와 같은 곳에서 나온 천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급식실과 보관표, 드워프 청구서 사이에는 이제 서류로 확인 가능한 연결점이 하나 생겼다.
“청구서를 가져온 사람 이름도 있습니까?”
“이름이 아니라 수령 부서만 적혀 있소. 군무청 급식실 보관 선반, 두 번째 칸.”
로흐는 떠나기 전 작은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안에는 드워프산 봉인 실 한 가닥이 있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감정 대상으로 쓸 물건이라면 출처와 반입 절차가 먼저여야 했다. 그가 피식 웃더니 공식 시료 기증서를 작성했다. 시료는 개인 선물이 아니라 법원의 재현 실험용으로만 쓰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과 증거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나중에는 누구나 상대가 자신에게 유리한 물건만 건넸다고 의심할 수 있다. 나는 좋은 의도만큼 좋은 기록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지 오래였다.
나는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사람에게 묻기 전에 선반부터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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