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열었다고 사건이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상자를 열기 위해 붙였던 봉인보다 더 많은 봉인을 새로 붙여야 한다.
법원 보존실에 들어가자마자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금화가 들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루카스가 말했다.
“금화가 들어 있었다면 더 복잡했을 거야. 출처, 소유권, 실제 수납 계정까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도 돈은 눈으로 셀 수 있잖아요.”
“이 장부도 눈으로 세면 되지. 문제는 네가 무엇을 세는지 모른다는 거고.”
지난 새벽 돌아온 납작한 상자에는 열두 줄짜리 보관원장이 있었다. 열두 개의 공동 증언 단위, 수령 확인 열한 개. 마지막 하나의 보관자는 왕국 안에 살아 있다는 문장까지. 누군가 친절하게 범인의 집 주소라도 적어 줄 듯했던 그 문장은 하룻밤이 지나자 오히려 가장 의심스러운 문장이 되었다.
오늘은 정식 감정 절차의 첫날이었다. 오렐은 입회자 이름을 세 번 확인한 다음 문을 열었다. 에리카는 장부의 상태를 기록했고, 티르센은 창문을 반쯤 가렸다. 바깥 빛과 작업등을 번갈아 비춰야 압흔을 비교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세르나 벤 카일도 마계 감사관 자격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보라색 먹물병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기 전 내게 물었다.
“왕국에서는 먹물을 반입할 때도 세금을 걷나?”
“여기서 쓰실 거면 반출입 목록부터 적으셔야죠.”
“자네와 대화하면 모든 농담이 신고서가 되는군.”
“탈세 농담은 신고해도 돈이 안 됩니다.”
에리카가 웃지 않은 것은 장부 때문이었다. 그녀는 작은 유리판 아래 열한 개의 수령표를 늘어놓았다. 얼핏 보면 같은 종이 같았다. 하지만 네 장은 두껍고, 세 장은 회색 섬유가 섞였으며, 나머지는 뒤쪽 모서리가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게 전부 한날 수령됐다는 보장은 없어요.”
“열두 사람이 서명했다는 보장도 없고요.” 내가 덧붙였다.
티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문에는 ‘단위’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열두 목소리인지, 열두 증언 봉인지, 열두 번의 확인 절차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뒤의 ‘수령’ 역시 누가 받았는지 주어가 빠져 있군요.”
루카스는 줄이 그어진 표를 다시 만들었다. 한쪽에는 ‘봉투’, 다른 쪽에는 ‘증언자’, 마지막에는 ‘인수 기관’. 셋을 합쳐 하나의 열두 개로 표시하면 사건이 쉬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묶는 순간 진실도 쉬워 보이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예 세 개의 숫자를 따로 기록하자.” 내가 말했다. “실물 봉인 열한 개. 이름이 확인된 증언자는 현재 여덟. 적법한 수령 기관은 아직 미확정. 표가 복잡하다고 숫자를 하나로 만들면 안 돼.”
“그러면 보고서 첫 장이 세 장이 됩니다.”
“잘됐네. 종이 장수가 늘면 제지업자가 웃겠어.”
그때 에리카가 여섯 번째 수령표를 들어 보였다. 다른 표에는 보관소의 인수 날짜가 있었는데 이것만 ‘반환 전 보관’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수령 완료’ 도장 바로 아래에는 옅은 칼자국이 있었다.
“도장을 찍고 난 뒤에 긁은 걸까요?”
티르센은 즉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확대경을 옮겼다. “도장 잉크가 상처의 안쪽까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긁힌 뒤에 찍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잉크가 원래 닿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시료 검사 전에는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에리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수령표를 발견했다는 이유로 아버님 사건과 연결시키지는 않겠습니다.”
“연결해야 할 때에는 연결해 주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대신 연결한 뒤에만 죄인을 정해요.”
법원은 상자와 옛 반출표의 동일성 감정을 위해 봉인된 수레 장부를 추가로 제출하도록 했다. 무게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상자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브란트가 가지고 온 당시 경비 기록에는 상자에 세 개의 못이 박혔다고 되어 있었다. 돌아온 상자에는 네 개가 박혀 있었다.
“하나를 더 박았거나, 다른 상자이거나.” 브란트가 말했다.
“판자를 바꿨을 수도 있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서류 한 장을 지키려다 못 하나 때문에 군대를 더 불러야겠군.”
“군대를 부르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요. 못은 대장님이 지키세요. 사람은 제가 부르겠습니다.”
감정실에서 나와 나는 보관 비용 계산서부터 받았다. 에리카는 그걸 보고 표정을 찌푸렸다.
“보관고 야간 경비 두 명, 종이 보존막 유지, 별도 출입 기록 관리. 사흘치인데 은화 일곱 닢이에요.”
“예산에는 있습니까?”
“예비비에서 임시로 쓸 수 있지만, 상자 소유자가 나오면 그 사람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붙어 있어요.”
나는 계산서 맨 아래의 문장을 지웠다. 지운 뒤에는 취소선과 사유를 남겼다. “소유자도 모르는 물건을 법원이 먼저 보관하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 민간인에게 청구하는 건 안 됩니다. 지금은 국가가 증거 보존을 요청한 것이지 개인이 창고를 임차한 게 아니니까요.”
“재무청은 왜 늘 돈을 내는 쪽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국가가 필요해서 사람에게 요구했으니까. 그리고 증거 보존에 돈을 안 쓰면 나중에는 잘못된 판결에 열 배를 써.”
에리카는 봉투를 챙기다가 잠깐 멈췄다. “아버지께서 쓰던 보관고 영수증에도 비슷한 말이 있어요. 조사 대상에게 비용을 먼저 전가하지 말라는 문구요.”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과거의 아버지와 지금의 수사를 억지로 겹치려는 버릇을 경계하는 듯했다. 나는 그 말을 따로 메모하되, 아버지의 서명이 있었다는 사실로 현재 상자의 소유권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날 왕실의 회계 감독관이 찾아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번 조사로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느냐는 숫자였다.
“금화로 적어 주십시오. 의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현재 확정된 회수금은 없습니다.”
“그럼 상자에서 나온 기록은 쓸모가 없습니까?”
“쓸모와 수입은 다릅니다. 증언을 보관하면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돈을 내는 걸 막을 수 있죠. 장부의 가장 위 칸에 그런 이익을 적는 방법은 없지만요.”
감독관은 못마땅한 듯 손가락을 튕겼다. “백성은 숫자를 좋아합니다.”
“백성은 자기 이름이 잘못 적힌 명부를 더 싫어할 겁니다.”
그는 내 보고서 첫 장에 ‘회수 추정 없음’이라고 적고 떠났다. 어느 시대든 숫자를 만드는 사람과 숫자에 책임지는 사람은 구분되어야 했다.
오후 늦게 티르센은 잘린 인계증 조각과 상자 안에서 발견된 조각의 절단면을 겹쳐 보여 줬다. 빛 아래에서 종이 섬유 끝이 서로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끊어진 가로 실의 결은 일부 달랐다.
“서로 같은 원본의 양쪽일 확률이 높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런 질문은 수치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이 중 일부는 같은 재단칼로 자른 별개 종이일 수도 있어요. 두 종이를 더 억지로 끼워 맞추면 감정물을 망가뜨립니다.”
우리는 멈췄다. 수수께끼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감정물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티르센은 네 방향에서 사진을 찍고, 겹쳐 본 부분과 겹쳐 보지 않은 부분을 따로 기록했다.
그때 루카스가 질문했다. “수령표 열한 장 중 세 장은 불에 그을렸잖아요. 가장 그을린 한 장을 보고 불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는 없나요?”
“종이가 탔다고 장소까지 알려 주지는 않아. 어디에 있었는지 진술과 이동 기록이 필요하지.”
티르센은 웃었다. “마법 없이도 한 장의 종이는 많은 걸 말합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것까지 우리가 대신 말해 주면 그 종이는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내 진실의 장부가 알려 주는 단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해 보이는 숫자일수록, 숫자가 말하지 않은 내용을 내가 채워 넣으려는 유혹은 커졌다.
오후에는 왕실 급식소에 들렀다. 점심에는 귀리죽과 납작한 빵이 나왔다. 메라는 솥에 남은 양을 먼저 확인하고 내게 물었다.
“오늘도 장부를 보러 왔어요?”
“오늘은 밥값을 보러 왔습니다. 급식 계약의 밀가루가 또 줄었다면서요.”
“밀가루는 그대로야. 작은 빵으로 나눠 만들었지. 상인들이 왕국의 금고가 비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음 주 대금을 먼저 달라고 하더라고.”
왕국을 살렸다는 말은 아직 과장에 가까웠다. 채무 8천 금화를 상계로 없앴다고 해서 급식소 창고에 밀가루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돈은 여전히 부족했다. 나는 재무청의 단기 수입과 급식소의 지출표를 대조해 계약상 조기 지급이 가능한 부분만 정리했다. 이 일이 마법의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내일 먹을 빵을 지킬 수는 있었다.
메라는 내 표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가로로 접힌 헝겊을 깔았다. 왼쪽 모서리에 가는 푸른 실이 세 줄 꿰매져 있었다. 무심코 상자 속 수령표에서 본 모서리와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바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급식실 헝겊과 보관원장의 표식이 같다는 것은 아직 어떤 증거도 아니었다.
“삼 년 전에도 이런 천을 쓰셨습니까?”
메라의 손이 잠깐 멈췄다. “왜요?”
“납품처가 궁금해서요. 오래된 물품의 출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답변하고 싶지 않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천은 늘 부족했지. 급식실에 들어온 포대를 잘라 쓰곤 했어요.”
그녀는 다시 솥을 저었다. 말을 끝낸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더 말해야 하는지 가늠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메라가 입을 열지는 않았다.
저녁 법원으로 돌아오는 길, 루카스가 물었다.
“메라 아주머니가 뭘 아시는 걸까요?”
“아시는 것과 말씀하실 수 있는 건 다를 수 있어. 급식소의 헝겊으로 사람을 추궁하면 그 사람은 내일부터 우리에게 밥도 못 주겠지.”
“하지만 열두 번째 단위를 찾으려면 묻긴 해야 하잖아요.”
“그래. 물건을 먼저 확인하고, 진짜 필요한 질문만 하자.”
그날 메라가 건네준 빵은 두 개였다. 하나는 내 몫, 하나는 기록실에서 야간 근무하는 오렐에게 전해 달라는 몫이었다. 그는 밤새 봉인실을 지키느라 식사를 놓치곤 했다. 나는 그 빵을 전달하고 공무 중 제공받은 소액 식사의 기록 여부를 확인했다. 오렐은 말없이 웃으며 빵을 반으로 잘랐다. 왕국을 움직이는 것은 종종 이런 작은 손이었다. 누군가는 금고를 지키고, 누군가는 밥을 굽고, 나는 그 둘의 일을 숫자로 지워 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밤에 티르센의 예비 감정서가 도착했다. 못 하나는 교체됐을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세 개의 녹 발생 순서는 옛 수레 장부가 설명한 기간과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자가 동일하다는 결론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상자라고 쉽게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감정서 마지막 줄에 내가 기대하지 않은 항목이 있었다.
‘열한 번째 수령표 뒷면, 실로 매달았던 흔적. 원래는 한 장이 더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
나는 그 도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누군가 마지막 증언을 훔쳐 간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아예 열두 번째 증언을 보호하려고 처음부터 분리했을 수도 있다.
내 앞에 숫자 열둘이 놓여 있었다. 나는 하나를 빼야 답을 얻는 회계 문제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은 하나를 어느 사람에게 억지로 더해 넣지 않는 것이 첫 번째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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