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빚이 사라진 다음 날,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축하객이 아니었다.
“제 동생 월급은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문 앞에 선 여자는 신발 밑창에 밀가루가 말라붙어 있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큰아이의 손에는 빵 껍질이, 작은아이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는 자신을 밀가루 선별공 라니아라고 소개했다. 남편과 남동생이 군무청 창고에서 일했는데, 지난 넉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신문에는 왕국이 팔천 금화를 벌었다고 나왔습니다.”
그 문장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벌지 않았습니다. 빚을 서로 맞바꿔 없앴습니다.”
“그럼 돈이 생긴 게 아니에요?”
“네. 국고 금고에 팔천 금화가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큰아이가 내 옷자락을 조심스레 잡았다. 어른들이 금화 수천 개를 놓고 큰일을 해냈다고 떠드는 동안, 아이들은 오늘 먹을 빵 값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에리카에게 미지급 임금 목록을 가져오라고 했다. 서류에는 군무청 직영 창고 노동자 마흔여덟 명과 외주 운송 인부 스물세 명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라니아 동생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계약서를 가진 사람만 명단에 있어요.” 에리카가 말했다.
“구두로 고용된 사람도 있었단 뜻이군요.”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 감독관이 서류는 나중에 써주겠다고 했어요. 불이 나고 나서는 계약이 없다고 모른 척했습니다.”
나는 서류를 덮었다. 없는 계약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종이 한 장 없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일한 사람을 지울 수도 없다. 출근표, 지급 약속을 들은 사람, 창고 열쇠 인수 기록부터 확인해야 했다.
“오늘 오후에 증언을 받겠습니다. 대신 지금 바로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못 드립니다.”
“그런 말은 이미 많이 들었어요.”
라니아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나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믿음은 대답이 아니라 결과로 얻어야 했다.
재무청 현관에는 전날 용이 낸 세금 이야기를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 금화 일곱 닢과 은화 네 닢이 담긴 투명한 봉인함을 구경거리처럼 전시해 놓았다. 루카스가 그 앞에서 자랑스러운 얼굴로 수납증을 들고 있었다.
“징수관님! 드래곤이 진짜로 세금을 냈다는 걸 보러 온 사람들입니다.”
“수납함은 다시 금고로 옮겨요.”
“왜요? 사람들한테 희망이 되잖아요.”
“나라가 지금 필요한 건 희망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수입을 정확히 처리하는 일이야. 저 돈은 장식품이 아니야.”
나는 공개 게시판에 큰 글씨로 세 줄을 적었다.
왕실 만기 채무 8,000금화: 계약상 상계로 소멸.
광산 사용료 잔액 360금화: 청구 가능, 미수납.
드래곤 거래세 7금화 4은화: 실제 수납.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 군량미 미지급 임금과 북문 세관 공금은 별도 조사 중. 누가 읽어도 알 수 있게 써야 했다. 상계라는 단어가 어렵다고 해서 빚을 없앤 일을 돈을 번 일로 바꿔 말할 수는 없었다.
공개 게시판에 숫자를 붙이자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대장장이 하나가 왕실 빚이 사라졌다는 문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럼 우리가 낸 세금이 어디 갔다는 거요? 나라가 갚을 돈이 없으면 우리 것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냐?”
“국가가 가진 빚이 줄었다는 뜻이지, 이미 징수한 세금이 남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문에서 불법으로 걷은 안전기금은 다릅니다. 확인되는 대로 환급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언제?”
“지난번에 신청받은 영수증부터 날짜 순으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내일 오전에 진행 상황을 붙이겠습니다.”
“또 글씨로만 약속하는군!”
그가 분통을 터뜨리자 옆에서 기다리던 빵집 주인이 끼어들었다.
“그 글씨라도 없었을 땐 그냥 뺏기기만 했소. 이번에는 누구 돈이 어디 있는지라도 물어볼 수 있잖소.”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내가 그 사이에 서자 대장장이가 코웃음을 쳤다.
“징수관이라는 사람이 우리 편이오, 왕 편이오?”
“양쪽 다 불편할 겁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나는 게시판 아래에 작은 상자를 걸었다. '대조 요청함'이라고 쓴 상자였다. 본인이 받은 영수증 사본과 신고한 액수가 다르면 정정 신청을 넣게 했다. 이름을 감추고 불편 사항을 제출할 수 있도록 별도의 종이도 놓았다.
“나라 돈이 잘못됐다고 말할 창구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빵집 주인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관리가 실수한 것도 적어도 되오?”
“당연합니다. 제가 계산을 틀리면 그 내용도 넣으십시오.”
루카스가 내 팔을 잡았다. “그런 말씀 하시면 오늘 안에 상자가 터져요.”
“그래서 너한테 큰 상자를 가져오라고 한 거야.”
실제로 한 시간도 안 되어 상자 절반이 찼다. 세관에서 두 번 납부했다는 신고, 곡물창고에서 화물을 잃었다는 신고, 시장 바닥 청소비 명목으로 동전을 걷었다는 신고가 섞였다. 한 장에는 '징수관 머리가 너무 헝클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루카스가 그 종이를 읽고 배를 잡고 웃었다.
“이것도 정정하실 건가요?”
“그건 재무청 예산으로 처리할 수 없겠군.”
아이들이 웃었다. 대장장이도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원하던 건 바로 그 정도였다. 사람들에게 관리가 절대 틀리지 않는 존재라는 착각을 심어주지 않는 것.
나는 접수함에 봉인선을 붙이고, 루카스에게 두 사람 앞에서 접수 순서표를 읽게 했다. 작은 조치였지만 방금까지 욕을 하던 대장장이가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기록은 종이로 만들어지지만, 신뢰는 사람들이 서로 보는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 시간 뒤 왕실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국왕이 직접 부른다는 것이다.
알현실에는 로웬과 브란트뿐 아니라 어제 법정에서 판결을 내린 재판관도 있었다. 아델리온 왕은 넓은 탁자에 놓인 신문을 손끝으로 밀었다. 제목이 요란했다. ‘용의 금을 거둬 왕국을 구한 신임 징수관.’
“이걸 누가 퍼뜨렸지?” 왕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기뻐하고 있어.”
“기쁜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지만, 거짓 기대는 막아야 합니다. 임금 지급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찾아왔습니다.”
왕은 신문을 접었다. “그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선 정확한 채무 목록과 지급 우선순위입니다. 앞으로 들어올 돈을 이미 들어온 것처럼 쓰지 않도록 하는 것도요.”
재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판결은 사용료 일부에 대한 것이지 상단 대표의 다른 책임을 면제한 결정이 아닙니다. 왕실이 고발할 권리도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적어두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마르켈의 채권은 상계로 없어졌지만, 숨겨진 군량미와 위조 문서의 책임까지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왕은 내게 국고 전용 증서를 만들라는 제안을 했다. 미래의 사용료와 광산 수입을 담보로 지금 당장 봉급을 지급할 돈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전임 대신들이 쓴 방법과 너무 닮아 있었다.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받을 돈도, 받아도 되는 돈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세대의 세금을 담보로 오늘 박수받는 일을 반복하면 제자리입니다.”
“그럼 백성에게 무엇을 줄 수 있지?”
“어떤 순서로 갚을지 공개된 약속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작은 현금 수입부터 찾겠습니다.”
왕은 한참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임금 원장 공개는 허락한다. 다만 군사 시설의 위치와 노동자의 주소는 가려라.”
좋은 명령이었다. 공공의 감시와 개인의 안전은 동시에 지켜야 했다.
알현실을 나오자 에리카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군무청 창고 화재 당시 노동자들을 동원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감독관 칸에는 레온하르트 군무차관의 보좌관인 셀딘이라고 적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아래였다.
라니아의 남동생 이름이 연필로 써 있다가 지워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원본을 어디서 찾았어요?”
“아버지의 서류함에서요. 공식 자료는 아니에요. 검증이 필요합니다.”
에리카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증거 봉투를 펼치고 받은 시각과 출처를 적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녀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 감정을 증명의 대신으로 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후 증언에는 열일곱 명이 왔다. 같은 시간에 출근했으면서 사람마다 받은 일당이 달랐다. 납품 장부에 없는 밀 자루를 옮겼다는 진술도 있었다. 나는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으면서 겹치는 날짜에 표시를 했다. 그중 사흘은 같은 마차가 북문과 옛 창고를 오갔다.
마지막 증인은 말을 아꼈다. 이름은 도마르. 창고에서 화재가 나던 날 수레를 몰았던 사람이다.
“어디로 운반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마차가 지나간 관문은 기억합니까?”
“남쪽 운하요.”
“그때 적재한 물건은요?”
그는 가슴팍의 낡은 단추를 문질렀다. “군량미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자루 아래에서 쇳소리가 났습니다.”
“쇳소리?”
“동전이 아니었습니다. 길고 얇은 막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요.”
은괴였다. 6화에서 보전한 운하 화물과 같은 방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삼 년 전 마차와 이번에 잡힌 은괴가 같은 것이라고 서둘러 정하지는 않았다.
증언을 마친 도마르가 돌아가려는데 문밖에서 소란이 났다.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 사람이 우리 가족을 굶겼다고! 마차를 몰았으면서 몰랐다고?”
도마르는 움츠러들었다. 나도 화가 났지만 경비병을 부르지 않았다. 우선 남자의 말을 들었다. 그의 아들은 옛 창고 화재 때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고 했다.
“돈이 필요한 사람끼리 서로 범인이라 부르도록 만들면, 진짜 계산서를 숨긴 사람만 좋아합니다.”
그제야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도마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무엇을 했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밤이 되어 모두 돌아간 뒤, 루카스가 조용히 내 앞에 빵 한 조각을 놓았다. 점심을 굶은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빵을 반으로 잘라 소년에게 건넸다.
“네 어머니 약은 샀어?”
“오늘 받았어요. 체불 임금 중 일부가 임시 지급됐거든요.”
“누가 승인했지?”
“로웬 대신님이요. 다른 사람들 것도 순서대로 준대요.”
나는 공책에 그 사실을 적었다. 아직 모두가 받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줄은 현실이 됐다. 나는 루카스와 함께 그날의 수입·지출표를 확인했다. 용의 세금이 실제 수납으로 잡혔는지, 긴급 배급과 급여 지급이 각기 어느 예산에서 나갔는지 다른 장부에 적었다. 세금은 들어왔지만 사용처가 확정되지 않은 돈이었다. 빚이 없어진 일과 임금이 지급된 일은 표에서 서로 다른 칸을 차지했다.
“이렇게 쓰니까 하나도 안 멋있어요.” 루카스가 말했다.
“멋있어 보이게 쓰면 사람들이 그 돈이 어디 있는지 헷갈릴 수 있거든.”
“그래도 어제는 왕국이 망하지 않았잖아요.”
“맞아. 오늘은 망하지 않은 왕국이 사람답게 굴 차례야.”
루카스는 한동안 그 말을 생각하더니 종이 맨 아래에 작은 글씨를 썼다. '내일 확인할 것: 라니아의 동생에게 남은 임금.' 나는 그 글씨를 지우지 않았다. 수천 금화 뒤에서도 사람 한 명이 보이게 하는 장부야말로 우리가 만들려던 것이었다.
그때 내 손목의 저울 무늬가 서늘하게 떨렸다.
[공적 거래 검토 대상: 왕국-마계 간 장기 공급 계약]
[조회 가능한 납부 기록: 없음]
[원본 계약 위치: 왕실 보존고 제팔 봉인실]
[봉인 권한자: 국왕, 왕실 감사원장]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감사원장은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어제 다시 문을 연 기관에 결재권자가 없었다. 더구나 ‘왕국-마계’라는 문구는 첫날 봤던 장부와 성격부터 달랐다.
“마왕이 세금을 안 낸 이유를 알고 싶어?” 에리카가 물었다.
“네. 그런데 먼저 누가 계약을 맺었는지 알아야겠어요.”
“왕실이 직접 거래했다는 뜻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처음 던진 질문부터 잘못된 겁니다.”
누가 세금을 내지 않았느냐보다, 누가 낼 의무를 만들었느냐가 먼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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