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딘 모로는 백 금화가 들어 있던 주머니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금화 백 닢을 제시받으셨다고 했죠?” 나는 물었다.
“정확히 말하면 백 닢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을 꺼내 보인 건 아닙니다.”
“그때 장갑 낀 남자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는 한참 생각했다. “목소리가 낮았어요. 오른손 장갑 엄지에 꿰맨 자국이 있었고요. 하지만 얼굴은 흐릿합니다. 밤이었고 거리도 멀었거든요.”
우리는 삼 년 전 사건을 다시 기록했다. 모로는 벨란 감사관에게 군량미 중복 계상 의혹을 제보한 뒤 화재 조사에 협조하려 했다. 그때 장갑 낀 사람이 나타나 누락된 제12장을 팔면 백 금화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모로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 돈을 실제 지닌 사람이 존재했다거나, 제12장을 살 거래가 성립했다고 볼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법정에 나오면 알아볼 수 있습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장담 못 해요.”
나는 그 답을 기록했다. 확실하지 않은 목격자가 확실한 척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
모로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천 조각을 꺼냈다. 자신이 그날 주웠던 장갑 끝부분이었다. 검은 실로 꿰맨 자국이 있었다.
“이걸 그동안 왜 보관했습니까?”
“무슨 일이 생길까 봐요. 그때 돈을 안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이 천이 돈을 안 받았다는 걸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없으면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는 천 조각을 증거 봉투에 넣기 전에 보관 경위를 다시 물었다. 삼 년 동안 집 서랍에 있었고, 얼마 전 홍수 때 한 번 옮겼다고 했다. 법정 감정을 해도 그 사적 보관 기간 때문에 증거가 갖는 한계가 있었다.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에리카는 아버지의 기록을 펼쳐 놓고 있었다.
“아버지 일기에는 ‘누가 돈을 요구했는지보다 돈을 낼 수 있었던 쪽을 보라’고 써 있어요.”
“구체적인 계좌를 봤다고 적혀 있나요?”
“없어요. 추측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추측이라고 표시합시다.”
나는 오래된 국고 기록을 펼쳤다. 세상에는 똑같은 금화 백 닢이 여러 번 등장한다. 군무청 수리비, 왕실 식량 구매 예치금, 상단 임시 대출. 액수가 같다고 같은 돈이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모로에게 제안됐다는 백 금화는 실제 지급 확인이 없었다.
루카스가 한 장을 가져왔다. 화재 다음 달에 공동 관리단 장갑 업무를 넘긴 결산표였다. 당시 수입란은 비어 있었고 지출 예정액에는 ‘기록 회수 협력비 최대 백 금화’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면 백 금화를 실제로 준비했다는 증거가 되나요?”
“아니. 최대한 쓸 수 있다는 내부 계획에 가까워. 승인, 출금, 수령을 나눠야 해.”
“정말 돈은 세 칸에서 끝나는군요.”
“가끔 넷째 칸이 더 어려워. 돈을 받은 사람이 다시 누구에게 줬는지.”
이번에는 그 어려운 칸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아직 첫 칸에서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산표의 작성 부서를 확인했다. 문서 번호는 왕실 조폐소의 봉인 260금화 대장과 비슷했지만 다른 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회계상 두 사안을 연결하지 않도록 도장을 찍었다. 별도의 금액을 근거 없이 방벽 유지료 480금화에서 빼낼 수는 없었다.
모로의 증언이 끝난 뒤 나는 그에게 잠시 남아 달라고 했다. 돈을 거절한 이유를 묻기 위해서였다.
“백 금화면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요.”
모로는 고개를 저었다. “은퇴할 만한 돈이 아니라 가족이 살 수 있는 돈이었죠. 그래서 더 위험했어요.”
“왜요?”
“그 돈을 받으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내 것이 아니게 될 것 같았거든요. 누구 말을 하든 '돈을 받고 말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는 당시 어린 딸의 약값이 밀려 있었다고 했다. 아내에게는 그날 받은 제안을 숨겼다. 지금도 그 선택을 잘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선악을 가르는 판결을 내릴 자리가 아니었다. 그가 금화를 받았는지, 그 대가로 자료를 넘겼는지에 관한 실물 증거를 살피는 사람이었다.
“가족을 지키려고 거절하셨군요.” 내가 말했다.
“아니요. 가족에게 물을 엄두가 안 났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아름답게 적지 마세요.”
나는 기록지를 다시 고쳤다. ‘제안 거절’은 그의 진술. ‘가족 보호를 위해’라는 동기는 내 해석일 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제멋대로 분류하는 일도 하나의 회계 부정이다.
우리는 모로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당시 자료를 찾았다. 은퇴한 보관고 근무자가 남긴 야간 출입 명부가 있었다. 거기에 모로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 건물에 오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장갑 낀 인물이 모로를 만났다는 장소는 애초에 보관고 밖의 좁은 골목이었다.
브란트 경비대장이 당시 골목의 도면을 가져왔다. 모로가 기억한 횃불과 건물 그림자를 기준으로 그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었는지 확인했다.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과 거리 설명은 대체로 맞았다. 하지만 손가락에 검은 실을 꿰맨 자국을 봤다는 기억은 실제 거리에서 확인하기 어려워 보였다.
“제가 틀렸을지도 모르죠.” 모로가 말했다.
“그런 가능성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이상한 얼굴을 했다. 아마 조사관이 자기 말을 의심하면서 고맙다고 하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국왕은 오래된 결산표를 보면서 물었다. “백 금화를 지급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궁정이 또 가난해진 기분이네.”
“폐하의 현재 국고에서 백 금화를 빼면 안 됩니다. 그건 계획이었는지조차 불명확한 과거 숫자입니다.”
“그럼 마음만 가난해지면 되겠군.”
“그것도 권하지 않습니다.”
왕은 수척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에게 돈을 찾는 것과 불필요한 손실을 막는 게 모두 재정 운영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되찾은 돈이 없더라도 보관증 사기로 새로 빠져나갈 돈을 막고, 피해자의 신고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재정질서는 조금 회복되고 있었다.
오후 마지막 회의에는 카르디온 측 드워프 대리인이 참석했다. 드래곤에게 맡긴 유산과 광산 채굴 수익의 실제 귀속관계를 정리하던 그였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절벽의 주인께서는 묻고 계십니다. 인간이란 자기 물건도 돌려받지 못하면서 남의 보관물에 돈을 매기는 종족인가.”
“그 질문은 절반쯤 맞네요.” 나는 말했다. “정확하게는 자기 물건인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돈을 매기는 이들이 문제입니다.”
대리인은 드래곤이 오래전 드워프 후손에게 유산을 돌려주기 위해 남긴 인계 규칙을 소개했다. 돌려받을 사람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을 때는 물건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관자가 자기 권한을 연장하려고 후손의 신분을 조작하거나 사망했다고 기록하면 위탁은 즉시 이의제기 대상이 되었다.
“그 규칙이 왕실에 바로 적용됩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아닙니다. 사적 위탁 계약의 한 사례일 뿐입니다.” 대리인은 분명히 했다. “다만 그 시대에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는 뜻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률이 달라도 탐욕은 놀랄 만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보관물의 권한 문제도 누군가를 사망 처리하거나 증인에서 지우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장갑 가게 주인이 감정관에게 연락했다. 삼 년 전 납품한 열두 켤레 중 두 켤레는 흑색 실로 재봉했으며, 한 켤레는 손목 표식이 뜯겨 교환했다고 했다. 모로가 보관한 검은 천과 비슷한 실을 썼지만, 그런 실은 시장에도 있었다.
“또 결정적인 증거가 아닌가요?” 루카스가 물었다.
“그래. 하지만 어떤 물건을 찾아야 하는지는 점점 알게 되네.”
카르디온 측 대리인은 떠나기 전에 흑요석으로 만든 작은 상자를 보여 줬다. 그 상자에는 예전 드워프들의 봉인 규칙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용을 탐욕스럽다고 하지만,” 그가 말했다. “카르디온 님은 자기 것이 아닌 보물을 목록으로 구분해 둡니다. 몇 세기가 지나도 소유권은 안 바뀐다고요.”
“그럼 보관료는 받습니까?”
“맡긴 계약에서 정한 관리비만 받습니다.”
“관리가 끝나면요?”
“끝나죠. 그걸 질문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웃지 못했다. 왕국에서는 가장 당연한 질문이 가장 어렵게 변해 있었다.
대리인은 오래된 목록의 일부를 우리에게 공개했다. 원래 반환 기한이 지났지만 수령인을 못 찾아 보관 중인 유산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델리온 왕실 귀족이 자신의 빚을 갚으려고 담보로 제공하려 했던 물건이었다. 드래곤은 수령인도 아닌 귀족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럼 채권자가 손해를 본 겁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본인 소유도 아닌 물건을 담보로 인정한 사람이 잘못한 거죠.” 내가 말했다.
그건 삼 년 전 보관 권한과 왕위 담보 계약을 추적하는 지금의 상황과 닮았다. 관리의 권한을 담보의 권한으로 바꾸려는 사람들. 맡긴 물건을 영원히 돌려주지 않고 관리비를 청구하려는 사람들. 법적 지위가 다를 뿐 같은 욕망을 다른 장부에 옮겨 쓴 듯했다.
그때 세르나가 서명 확인 절차를 설명했다. 마계에서는 공동 보관물의 반환 증언을 한 사람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출처가 다른 두 개의 기록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옛 협약이 정확히 그런 제도를 택했는지는 추가 감정이 필요했다.
“적어도 한 사람의 손도장으로 열두 명의 권리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너무 편리하군요.” 내가 말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권리를 부여하면,” 세르나가 대답했다. “편리한 사람이 왕이 됩니다.”
국왕이 그 말을 들었다면 기분이 묘했을 것이다. 나는 왕을 걱정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왕관을 지키는 것보다 왕관 아래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 먼저였다.
그날 밤 세르나가 왕궁에 왔다. 마왕 아자르켄의 정식 사절로서 고대 공동 보관 협약 원문 대조에 입회하겠다는 공문을 가져왔다. 그는 내 앞에 마계의 오래된 장갑 한 짝을 내려놓았다.
“선물입니까?” 내가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왕실 감사의 원본 표식입니다. 만지면 봉인이 훼손되니 눈으로만 보십시오.”
마왕 측 장갑에는 손목 표지가 없었다. 대신 손등 안쪽에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보관하는 손은 소유하는 손이 아니다.’
나는 웃었다. “참 좋은 문구네요. 세금 안 내는 손도 같은 뜻인가요?”
“마왕 폐하께서는 적법하게 부과된 약초방 거래세 열두 금화를 이미 납부하셨습니다.”
“그걸 잊을 정도로 제가 부주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모든 손을 세금에 비유하는 버릇도 고치시길 권합니다.”
내 농담이 마계 감사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옛 협약에서 보관자의 임무가 끝나는 조건은 단순히 화재 조사가 끝날 때가 아니었다. 원래 표현은 ‘마지막 확인 가능한 공동 증언이 적법한 관리자에게 돌아갈 때’에 가까웠다. 인간 쪽 번역에는 그 문장의 일부가 빠져 있었다.
“일부러 뺀 겁니까?” 에리카가 물었다.
“모릅니다. 오래된 번역은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원문과 당시 번역자 명단을 같이 봐야 합니다.”
나는 두 문장을 다시 비교했다. 화재 조사 종결일. 마지막 공동 증언의 적법한 반환일. 전자는 행정기관이 영원히 지연할 수 있지만 후자는 반환 대상과 물건이 확인되면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공동 증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장갑의 주인을 찾는 일이, 이제 장갑이 지켜야 했던 증언을 찾는 일이 되어 갔다.
제10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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