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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98화
PAYLUA ORIGINAL · 제98화

98화. 미끼를 만들지 않는 법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41자

오프라인 책장
오선영은 내가 낸 제안을 세 문장 만에 거절했다. “그렇게 하지 마.” “공개된 정정 사실을 서로 다른 순서로 보내면, 누가 익명 발신자에게 전달하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사 자료를 미끼로 쓰자는 거잖아.” “제가 직접 가진 자료만 이용하겠습니다.” “그래도 당사자가 피해를 볼 수 있어. 네가 만든 판본이 또 진짜처럼 퍼지면 어떻게 할 건데?” 1월 28일 목요일 오전. 나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간단했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약간 다른 표현의 정정 안내문을 보여주고, 익명 메일에 어떤 문장이 돌아오는지 확인하는 것.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사람들이 입은 피해가 바로 그런 식으로 시작됐다. 누군가 시험을 해본답시고 문서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고, 그 문서가 외부에서 진짜 확인자료로 취급됐다. “맞습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선영은 한숨을 쉬었다. “범인보다 빨라지려다가 범인한테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주지 마.” 나는 노트북의 임시 초안을 삭제하지 않고 ‘작성했으나 사용하지 않음’ 폴더로 옮겼다. 내가 그런 행동을 생각했다는 사실부터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중에 내 판단을 돌아볼 때는 멋지게 취소한 결론만이 아니라 왜 그 생각을 했는지도 필요했다. 그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존재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정정한 문서를 정해진 수신처에 정확히 전달하고, 그 문서가 실제로 도착했는지 수신 확인을 따로 하는 것. 유출자를 잡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피해를 바로잡기 위한 일이었다. 그 정상적인 절차에서 자연스럽게 남는 기록을 분석하는 것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안전했다. 점심 무렵 박혜림이 새 회사에서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전 회사가 외부로 보낸 정정 문서의 수신 확인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 고용 계약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제 잘못으로 생각하게 될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결과가 무엇 때문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맞는데, 듣기 싫네요.” “그렇겠죠.”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 누군가 벌받는 것보다 제 인생이 앞으로 가는 게 더 중요해요. 그게 이상한가요?”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피해자는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우리의 서사보다 자기 일상을 먼저 원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후 두 시, 한유리 기자가 보내준 기사 초안을 확인했다. 제목은 ‘확인 완료를 누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실명을 쓰지 않았고, 구형 알림 오류가 실제 인수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점만 다뤘다. 사건을 잘못된 살인 예언으로 끌고 가는 대신 문서 업무의 작은 단어가 어떤 피해를 낳았는지 설명했다. “이걸 쓰면 누가 화낼까요?” 유리가 물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도 화낼 수 있습니다.” “그게 이유 없이 기사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겠죠?” “아닙니다. 근거를 확인하고 쓰라는 말입니다.” 그녀는 웃었다. “이제 알겠어요. 서 조사관님은 저랑 통화하면서 항상 마지막 문장을 두 번 고치죠.”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늦게 오선영이 긴급히 연락했다. “회사 외부 자문 담당자가 경찰에 자료를 더 제출했어.” “무슨 자료입니까?” “2025년 8월 25일 경고 수준을 바꿀 때 사용한 일괄 처리 요청 양식 일부야. 승인 경로가 보이는 문서와는 별개야.” “요청자 이름이 있습니까?” “기입란은 있어. 하지만 사람이 직접 쓴 이름인지 프로그램이 채운 것인지 확인 중이야.”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려다 참았다. 선영은 이미 그 경계를 지키고 있었다. “중요한 건 요청 사유 칸이야.”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월말 정산 마감 지연 방지.’” 나는 멈칫했다. 업무에서 흔히 쓰는 말이었다. 문제가 되는 검토가 끝나기 전에 결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도, 실제로 단순 오류 때문에 마감이 밀릴 때도 쓴다. “그 요청으로 경고가 참고로 바뀐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커졌어. 다만 문서 연결 번호와 실행 로그를 맞춰야 해.” “그렇다면 누군가는 마감을 위해 경고를 낮추자고 요구한 셈이군요.” “요청 문서가 실제로 그렇게 접수됐다는 것까지는. 누가 그 문장을 썼는지는 아직.” 나는 처음으로 명확한 동기를 하나 본 기분이었다. 사람을 죽일 거대한 악의가 아니라 업무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장치와 만나면 범인은 그 틈에 서 있으면 된다. 그때 또 다른 전화가 왔다. 화진모빌리티의 과거 정산 업무 담당자라는 남자였다. 이름은 고태원. 배정우와 최명환의 취소된 만남 일정을 기록했던 사람이다. “서 조사관님. 제가 경찰에는 말했는데, 사실 그날 회사에서 사람이 하나 빠졌어요.” “어느 날 말입니까?” “2025년 8월 25일이요. 문서 검토 담당자가 병가를 냈어요. 그래서 제가 대신 마감 현황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지금 무슨 의미입니까?” “그때는 별 의미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날 자료가 보류된 이유를 확인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전 그냥 보고서에 ‘검토 진행 중’이라고 적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 사실은 언제 기억하셨습니까?” “회사에서 옛 근무표를 찾았을 때요. 제 기억만은 아닙니다.” “그 자료는 경찰에 제출하셨습니까?” “네.” 그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산관리실에서 절 찾았어요. 제가 그날 아무것도 안 했다고 썼더군요.”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 기록을 누가 작성했는지 확인되셨습니까?” “모릅니다. 그래서 겁이 납니다. 제가 그때 그냥 게으르게 넘어간 게 이제 와서는 제가 허위 보고를 한 증거가 됐어요.” 통화를 끝낸 뒤 나는 선영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그녀는 고태원의 제출 자료를 이미 확인 중이었다. “진혁아, 고태원이 잘못을 인정했다고 그 사람이 범인도 피해자도 확정되는 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의 게으름을 나중에 이용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걸 실제로 증명해야지.” 저녁 일곱 시에는 작은 반전이 있었다. 익명 게시판의 ‘정정 회신을 서명으로 인정한다’는 주장에 회사의 공식 담당자가 반박 공지를 올린 것이다. 이번에는 결론만 적지 않았다. 정정 회신은 과거 분쟁의 종결 합의가 아니며, 자료를 받았다는 확인 역시 내용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그 문구가 게시된 뒤 몇몇 계정은 문제의 동의서를 근거로 한 주장을 스스로 지웠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이미 복사된 화면은 남았고, 누가 최초로 왜곡했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정정 내용을 새 합의로 바꾸려던 시도는 적어도 한 갈래에서 막혔다. 범인이 모든 판을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절차를 끝까지 지킨 사람들도 반격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익명 메일이 왔다. ‘서진혁 조사관님. 오늘은 어떤 거짓말을 만들어보려다 멈추셨습니까?’ 나는 등이 차가워졌다. 오전에 썼다가 사용하지 않은 판본 초안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초안은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내가 쓴 내용이 새어나갔을까. 아니면 상대는 내가 유출자를 가려내려는 시도를 할 거라고 예상해 흔한 문장을 던졌을까. 나는 컴퓨터 앞에서 손을 떼었다. 이번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내가 초안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상대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쪽에 남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 내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너무 쉽게 짐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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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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