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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돈이 아니라 귀속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18자

오프라인 책장
3억 8천만 원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돈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화진모빌리티의 정산 파일에서 그 숫자는 여러 검토 항목의 합계로 등장했고, 일부는 회사 계정에 남아 있었고, 일부는 직원 개인에게 ‘귀속 검토’ 대상으로 옮겨져 있었다. 실제 송금이 있었는지, 부정 청구가 얼마였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했다. 1월 27일 수요일 오후, 오선영이 확인한 자료의 요지를 들으며 나는 숫자를 세 갈래로 나눴다. 서류상 검토액. 회계상 이동액. 실제 지급액. 셋을 한 문장에 넣으면 누구든 횡령범이 될 수 있다. “그럼 임소율 씨에게 3억 8천을 갚으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관련 안내가 있었어. 다만 회사가 그 금액 전부를 개인 채무로 확정했다는 증거는 별도로 봐야 해.” “그 안내가 채용이나 평판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요?”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사용처와 전달 경로를 확인해야 해.” 선영은 내가 듣고 싶은 대답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계속 듣게 됐다. 임소율은 내게 자기가 받은 옛 안내문을 보여줬다. 가장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계정 귀속 정정이 완료될 경우 관련 책임 통지의 효력은 변경될 수 있음.’ 그 문장은 희망을 주는 동시에 함정이 될 수 있었다. 정정이 안 되면 책임 통지가 그대로 남는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저한테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회사 계정에서 개인 쪽으로 바뀐 항목이 있으니까 확인하라더라고요.” “그 확인 요청에 답하셨습니까?” “답하려고 했죠. 근데 답하기 전에 이미 완료됐다고 떠 있었어요.” 나는 2025년 8월 22일 오전 9시 16분을 떠올렸다. 윤세한 계정의 완료 처리. 그 화면이 임소율의 모든 항목을 처리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스템에 ‘완료’가 떠 있는 걸 보고 자기 답변을 내도 소용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화면인지 남아 있습니까?” “캡처는 있어요. 경찰에도 제출했어요.” “그걸 정확히 확인해야겠습니다. 완료 표시와 비용 귀속 확정은 다른 단계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르네요.” 그녀는 웃지 않았다. “저한텐 전부 같은 일이었는데요.” 나는 그 말을 적었다. 행정 절차를 나눠보는 건 책임을 찾기 위해서지만, 그 절차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고통이다. 두 사실을 동시에 기억해야 했다. 오후 두 시,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회사가 정산 관련 문의를 접수하는 외부 업체가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서진혁 확인 건’이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첨부파일을 바로 열지 않았다. 발신 도메인과 이전 공문 경로를 비교하고, 업체 대표번호로 실제 발송 여부부터 물었다. 공식 담당자는 내게 그런 메일을 보낸 적 없다고 했다. “메일 제목은 뭡니까?” “서진혁 확인 건입니다.” “저희가 보내는 제목과 다릅니다. 내용은 열지 마시고 보안 담당자에게 전달해 주세요.” 나는 원본 메일을 보존하고 오선영에게도 연락했다. 악성 파일인지 여부는 보안 전문가가 판단할 일이었다. 내가 호기심 때문에 열어보는 순간, 공격자가 기대한 행동을 대신 해주는 셈이 될 수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 온새문서지원 측에서 공식 확인 회신이 왔다. 2027년 1월 12일 내 이름으로 발송된 ‘인수 확인 완료’ 문자는 구형 알림 문구의 오류였다는 설명이 반복됐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처음 보는 문장이 있었다. ‘해당 접수는 사전 등록된 업무 이벤트의 예정 시각에 따라 자동 발송되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미래의 시각을 맞힌 것이 아니라, 시간을 미리 정해놓았다면 어떨까. 물론 11월 2일 받은 첫 살인 예고나 11월 3일 배정우 사망 직후 도착한 수정본을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1월 12일 오전 9시 16분이라는 정교한 예고는 예약 이벤트만으로도 가능했다. 나는 선영에게 회신을 전달했다. “이미 업체에서 확인하고 있어.” “그럼 누가 예약을 넣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접수 계정을 확인 중이야. 공용 계정이면 다시 실제 사용자를 찾아야 하고.” “그 사람이 익명 메일 발신자일 수도 있겠네요.” “수신 확인 문자를 예약한 사람과 이메일 보낸 사람이 같다고 아직 말할 수 없어.”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익명 발신자가 내게 미래를 보여줬다는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상대는 특별한 힘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신 어떤 시스템이 어떤 문장을 언제 뱉는지 너무 잘 아는 사람. 그날 오후, 나는 1억 8천만 원이라는 별도 금액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전 보고서에서는 ‘미설명 잔액’이라 적혔고, 다른 요약표에서는 ‘추가 회수 예정’이라고 표기됐다. 둘이 같은 계정의 같은 기간을 가리키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이미 ‘사라진 돈 1억 8천만 원’이라는 제목이 퍼지고 있었다. 수사의 빈칸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채운다. 돈이 사라졌다고 믿으면 도둑을 찾고, 도둑을 찾으면 아직 증명되지 않은 증거도 죄의 흔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옛 장부의 표제와 산출 기간을 나란히 적었다. 오선영에게도 그 차이만 전달했다. 그녀는 단서를 찾는 대신 금액을 부풀리는 일이 없도록 관련 회계자료를 다시 대조하겠다고 했다. 더 중요한 건 임소율이 받은 통지의 범위였다. 개인 책임의 가능성을 묻는 안내에는 ‘확정된 채무’라는 표시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회사 내부 통지에는 회신 기한과 불이익 가능성이 굵게 쓰여 있었다. 일반 직원이 두 문서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의 법무 담당자는 양식상 통상 문구였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받는 사람에게 생긴 압박은 양식이라는 말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임소율에게 누군가 그 통지를 근거로 돈을 요구했다면 요구한 주체와 날짜를 따로 기록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제는 제 통장에 돈이 빠져나갔는지까지 증명해야 하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고단함을 부정하지 못했다. 저녁에 박혜림이 새 회사에서 받은 메시지를 보여줬다. ‘제출 서류 확인 완료. 결과는 추후 통보.’ 그녀는 그 문장을 읽고도 기뻐하지 않았다. “확인 완료라는 말이 무서워졌어요.” “이번에는 어떤 서류가 확인됐는지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물어봤어요. 제 손으로 낸 서류 세 장이라고 답했어요. 그래서 조금 나아요.” 그녀는 처음으로 웃었다. 확인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 행동과 연결되면 여전히 쓸 수 있었다. 밤 아홉 시, 익명 메일이 왔다. ‘시각을 맞히는 비밀을 찾으셨군요.’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 배정우의 죽음도 예약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은 위험했다. 이미 확인한 예약 알림의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죽음까지 하나의 음모로 묶으라는 유혹이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단지 두 사건을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1월 12일의 알림에는 예약 이벤트라는 가능한 설명이 생겼다. 11월 3일의 죽음에는 아직 원인과 가해자가 없었다. 화면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나는 계산표를 열었다. 3억 8천이라는 숫자 아래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1억 8천이 있었다. 그 금액이 실제 피해인지, 장부 사이의 차액인지조차 불확실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 불확실성을 이용해 ‘개인의 책임’이라고 표시했다면, 숫자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표시가 누구에게 전달됐느냐였다. 미래의 사건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의 의미를 바꿔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금도 우리 옆에서 일하고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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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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