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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95화
PAYLUA ORIGINAL · 제95화

95화. 이름 네 개의 명단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664자

오프라인 책장
김주하가 경찰서에 찾아온 건 월요일 아침이었다. 1월 25일. 한유리 기자는 내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해 그 사실부터 알려줬다. 그녀는 김주하와 친분이 없었고,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취재할 권한도 없었다. 다만 회사에서 거래를 보류당한 뒤 그가 스스로 해명 자료를 가져갔다는 사실은 당사자에게 확인했다고 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갈 생각은 없어요.” 유리가 말했다. “누가 뭘 잘못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는데 기자들이 몰려가면 더 힘들어지겠죠.” 나는 대답 대신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대신 제가 틀린 기사를 하나 고쳤어요.” “어떤 기사입니까?” “배정우 씨가 경비원에게 돈을 줬다는 식으로 쓴 문장요. 돈을 준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확인했어요.” 나는 전화를 귀에 더 밀착했다. 처음 사건 현장의 김동식 경비원은 출입 기록을 생략하는 대가로 15만 원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돈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배정우의 이름이 엉뚱하게 기사 제목에 붙으면서 사람들은 범인으로 지목됐던 그를 돈을 준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배정우는 이미 죽었다. 해명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붙이기가 쉽다. “정정 기사도 원래 기사만큼 읽힐까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유리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고쳐야죠. 지금도 누군가는 검색하면 그 기사부터 읽을 테니까.” 오선영에게 연락하자 그녀는 수사팀이 새로 확보한 자료를 이야기했다. 경비원에게 돈을 준 사람을 특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돈 봉투 사진의 원본 파일이 처음 만들어진 시간과 온라인에 유포된 시간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정황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과 메일을 보낸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네요.” “그럴 수 있다는 뜻이지. 실제로 다른지는 확인해야 해.” “김동식이 직접 찍었을 가능성은요?” “배제할 이유 없어. 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했어.” 오선영은 내게 그 사진을 더 이상 재배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원본을 확보할 수 있다면 경찰이 정식으로 다뤄야 한다고. 나는 기존 파일의 수신 정보만 정리해 전달했다. 점심때 박혜림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이전 회사가 보낸 정정 서류가 새 회사에도 도착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정말 받았는지 확인했어요. 담당자가 회신했어요.” “그럼 이제 채용 절차가 다시 진행되겠군요.” “면접 결과 기다리래요. 근데 아직도 제 이름이 다른 목록에는 남아 있대요.” 그녀는 기뻐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누군가의 감정까지 허락할 자격은 내게 없었다. “하나씩 고치고 계신 겁니다. 남아 있는 명단은 별도로 정정 요청해 보시죠.” “서 조사관님. 저 그 말도 기록했어요. ‘하나씩.’ 그 말을 들으면 숨이 막히긴 하는데…… 오늘은 실제로 하나가 고쳐졌거든요.” 그녀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오후 두 시, 일이 터졌다. 익명 게시판에 ‘화진모빌리티 문서 조작 담당자 명단’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올라왔다. 이름 넷이 있었다. 김주하, 윤세한, 박혜림, 그리고 나. 서진혁. 각 이름 옆에 ‘작성’, ‘검토’, ‘이의 철회’, ‘외부 확인’이라는 역할이 붙었다. 익명 메일에서 보던 낯익은 문구가 있었다. ‘특별 인계 확인.’ 목록에는 맨 아래 주석까지 달려 있었다. ‘관련자들은 서로 업무상 지시 관계가 있었음.’ 그것은 사실처럼 단정된 문장이었다. 그러나 내게 회사 직원들을 지휘할 권한은 없었고, 박혜림은 서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 문장이 네 사람을 같은 조직으로 묶어버렸다. 한유리는 기사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게시물이 확산되는 경로를 기록하고, 당사자들이 삭제 요청을 제출할 수 있는 채널을 안내했다. 그녀는 나에게도 링크를 보내면서 말했다. “이건 보도할 가치가 없어 보여요. 사람들이 클릭할수록 저쪽이 원하는 대로 되니까.” 나는 선영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선영은 이미 신고가 접수됐다고 답했다. “근데 왜 하필 저 네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너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 명단의 출처를 모르죠.” “그러니까 단정하지 마. 각자 다른 이유로 자료에 등장한 이름들일 수 있어.” 맞는 말이었다. 익명 발신자가 직접 작성했을 수도, 누군가 그가 퍼뜨린 정보를 조합했을 수도 있었다.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같은 범죄에 연루됐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오후 네 시, 회사의 외부 상담 창구가 갑자기 내게 면담을 제안했다. 게시물 내용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역할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변호인의 조언을 받은 후 서면 질의부터 달라고 했다.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일은 정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한을 정하지 않은 대면 면담은 녹음·요약·확인 절차가 불명확했다. 오선영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조심해. 네가 그 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제가 다 봤습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무엇을 다 봤다는 건지 자기 식으로 적을 수도 있어.” “그런 적 많았습니다.” “이제라도 배우면 됐지.” 나는 과거에 서류를 빨리 끝내려다 서명을 한 적이 떠올랐다. ‘별다른 이의 없음.’ 당시엔 받은 문서의 페이지 수만 확인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는 내용을 전부 검증한 것으로 읽었다. 아주 작은 표현의 차이가 사람을 오래 붙잡는다. 해가 질 무렵 내 사무실로도 계약 취소 문의가 두 통 들어왔다. 의뢰인들은 게시물의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객의 걱정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명단 때문에 일을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았다. 한 명은 잠시 보류하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다른 한 명에게는 소명에 필요한 공개 자료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다시 맡길지는 알 수 없었다. 범인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내 월세를 낼 돈은 벌써 줄어들고 있었다. 문서 한 장이 사람의 신뢰를 해치는 방식은 이렇게 조용했다. 저녁에 선영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 게시물에 이상한 점이 있어.” “뭡니까?” “‘특별 인계 확인’이라는 문구 뒤에 붙은 접수번호 일부가 틀렸어. 우리가 확보한 자료랑 달라.”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작성자가 원본을 못 봤다는 뜻입니까?” “아니. 옛 양식에서 번호가 다르게 생성될 수도 있어. 그래도 이제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이 가진 정보의 범위를 시험해볼 수는 있겠지.” “어떻게요?” “함부로 유인하는 건 안 할 거야.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우리가 먼저 흘려서 사건을 더 망치고 싶지는 않거든.” 선영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상대가 던진 미끼를 다시 미끼로 되돌려줄 방법을 찾고 싶던 내 마음을 정확히 찔렀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누구 하나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밤늦게 익명 메일이 왔다. ‘지금 누구를 믿고 계십니까?’ 나는 한 문장으로 답하고 싶었다.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선영의 판단을 믿고 있었고, 임소율이 자기 이름으로 정정을 요구할 용기를 믿었다. 정민규가 실수를 고치려는 행동도 봤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메일함을 닫았다. 누군가 우리의 약점을 계산한다면, 이번에는 약점을 숨기기보다 정확히 드러내고 고쳐야 했다. 그래야 상대가 기대한 두 번째 실수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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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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