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서에 적힌 ‘11’을 두 종류로 분리해 벽에 붙였다.
한쪽에는 2025년 8월 22일 열람 예정자 명단. 열한 번째 사람은 박혜림. 다른 쪽에는 사흘 뒤인 8월 25일 보류 처리표. 열한 번째 칸은 ‘미교부 책임 이관 금지’라는 경고. 같은 숫자 말고는 연결할 이유가 아직 없었다.
1월 21일 목요일 아침, 그 두 종이를 올려다보던 중 박혜림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또 연락했어요. 이번에는 제가 ‘11번 예외 대상자’라서 관련 확인이 끝날 때까지 경력조회 답변을 보류한다네요.”
그녀는 화가 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저는 예외 대상자라는 말도 처음 들어요.”
“어떤 회사입니까?”
“예전에 일했던 데요. 지금 지원한 회사가 제 경력 확인을 요청했대요.”
나는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었다. 잘못된 이름 하나가 이제 과거 회사와 새로운 일자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확인했다고 적혀 있다는 이유로 혜림을 기다리게 했다.
“전화로만 들으신 거라면 정확한 문구를 서면으로 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그리고 기존에 정정하신 자료를 같이 제출하시고요. 다만 그 요청이 채용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제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조심조심 말해야 하는 사람인 게 싫어요.”
나는 그 마음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잘못된 명단에 올라갔던 일과 취업 기회를 눈앞에 두고 흔들리는 일은 다르다.
오선영에게 연락했을 때 그녀는 이미 같은 문제를 알고 있었다.
“관련 회사에 자료가 어떻게 전달됐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혜림 씨가 요청한 경력조회 정정은 본인이 진행하고 있고.”
“한 사람이 일부러 박혜림 이름을 두 서식에 걸쳐 놓은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 아니면 엑셀로 명단을 합치던 사람이 숫자만 맞춰 붙였을 수도 있지.”
“실수라면 너무 오래 방치됐습니다.”
“오래됐다고 처음부터 고의였던 건 아니야. 방치한 잘못과 처음 조작한 잘못은 구별해야 해.”
그녀는 단어 하나를 더 강조했다. “구별.”
오후 한 시, 한유리 기자가 연락해왔다. 지난번에는 내가 보도하지 말라고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 스스로 확인되지 않은 이름을 기사에서 뺐다. 덕분에 사건을 선정적으로 만들려던 다른 매체의 인용 요청도 일부 막았다. 물론 기사 하나를 보류했다고 잘못된 정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진혁 씨, ‘열한 번째’가 두 개라는 거죠?”
“서로 다른 문서의 열한 번째 항목입니다.”
“그걸 사람들한테 알리면 김주하 씨나 박혜림 씨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줄지 않을까요?”
“공개해도 되는 자료와 아직 검증이 필요한 자료를 나눠야 합니다.”
“말이 어렵네요.”
“가짜 문서가 진짜처럼 퍼진 상황에서, 제가 새로 만든 설명 하나가 또 다른 가짜 원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리는 잠깐 침묵했다.
“제가 직접 당해봤는데도 또 급했네요.”
“급해도 됩니다. 다만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녀가 웃었다. “그 말 누가 누구한테 하는 거죠?”
통화를 마치고 나는 회사가 낸 공개 설명자료를 검토했다. 8월 22일 명단은 사람마다 수신 예정 상태를 표시하는 구조였다. 8월 25일 표는 처리 규칙을 점검하는 양식이었다. 표의 행 번호를 문서의 고유 식별번호처럼 이용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방식이었다. 그런데 두 표를 결합한 내부 요약에는 ‘11: 미교부, 박혜림, 책임 이관 가능’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책임 이관 가능.’
원본 경고는 ‘금지’였다. 요약표에서는 그 부정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우연히 행 번호를 착각하는 것과 부정어가 사라진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이 한 번에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요약 프로그램이 경고의 첫 부분만 가져와 뒤의 글자를 잘라버렸다면, 사람은 ‘미교부 책임 이관’이라는 말만 보고 허용된 일처럼 오해했을 것이다.
선영에게 이 문제를 전달했다. 그녀는 회사의 자료생성 절차를 이미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요약표 자동 생성은 인정했어. 그다음 사람이 내용을 손으로 편집했는지가 쟁점이야.”
“어떻게 구별합니까?”
“같은 시기에 생성된 다른 요약표를 받아 비교하는 중이야. 시스템이 항상 똑같이 잘랐다면 반례가 남겠지.”
“만약 사람 손으로 지웠다면요?”
“그때는 누가 어떤 권한으로 수정했는지 찾아야지. 그래도 수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할 수는 없고.”
수사관에게는 지겨운 구분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 구분을 버리는 순간 이번에도 처음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게 된다.
저녁 무렵 한유리가 재차 전화했다.
“기사 대신 설명을 올릴 건데, 두 문서가 다른 종류라는 것까지만 적으려고요. 특정 이름은 빼고.”
“그건 기자님이 확인한 자료와 편집 판단에 따라 정하셔야 합니다.”
“알아요. 다만 하나만 묻죠. 11이 두 개였다는 걸 모르고 지나간 건 누구 잘못이에요?”
“자료를 만든 사람, 검토한 사람, 이용한 사람 각각의 책임이 다를 겁니다. 저도 한동안 같은 질문을 했으니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살인범보다 책임질 사람이 많겠네요.”
그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죽음의 책임은 죽음을 일으킨 사람이 져야 한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수사를 흐리게 한 책임은 별개의 사람들에게 나뉘어 있을 수 있다.
밤 아홉 시, 박혜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전 회사가 정정 요청을 접수했고, 경력조회 회신을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결과가 아니라 접수였다. 나는 ‘확인되면 알려주세요’라고만 답했다. 그마저도 그녀에게 또 확인을 요구하는 말처럼 보일까 싶어 문장을 고쳤다. ‘필요하시면 자료 정리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때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숫자를 떼어놓으면 이야기가 덜 재미있겠군요.’
이번에는 첨부가 있었다. 화면 캡처처럼 보이는 한 장의 그림. 맨 위에 ‘합계행 표시 방식 선택’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두 버튼이 있었다.
‘수신자 기준’과 ‘항목 번호 기준’.
‘항목 번호 기준’에는 선택 표시가 돼 있었다.
나는 캡처를 바로 믿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새롭게 찾은 요약표 구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서로 다른 표를 행 번호만으로 묶는 기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악의는 버튼을 누른 손에 있을 수도 있고 기능을 잘못 설계한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다. 또는 누구도 악의를 품지 않았는데 뒤늦게 누군가 결과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오선영에게 캡처를 전달하자 답장이 왔다.
‘비슷한 화면이 업체 교육자료에 있다. 하지만 지금 네가 받은 건 수사팀 자료와 다름. 원본 확보 전까지 결론 금지.’
나는 화면에서 선택 표시만 떼어내 별도 폴더에 저장했다. 선택 표시가 캡처에 있다는 것과 그 선택으로 실제 요약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박혜림이었다.
“서 조사관님. 회사에서 방금 수정 회신을 보냈다고 해요.”
“어떤 내용입니까?”
“제가 수신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정정했대요. 그런데…….”
그녀가 말을 삼켰다.
“그 회신이 제일 먼저 가야 할 새 회사 담당자한테는 아직 안 갔다네요. 예전 회사 내부 담당자들한테만 보냈대요.”
나는 눈을 감았다. 잘못된 문장은 이미 외부에 나갔고, 바로잡은 문장은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보낸 곳과 받지 못한 곳을 구분해서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녀가 피곤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또 제가 확인해야 하는 거죠?”
나는 대답했다.
“이번에는 확인해야 할 사람에게 직접 확인 요청이 가도록 절차를 바꾸자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혼자 다 떠맡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통화를 마친 뒤 벽의 두 종이를 다시 봤다. 숫자 11은 원래 죄가 없었다. 그것을 같은 것으로 읽은 사람과 그렇게 읽게 만든 방식이 문제였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누군가는 그 오독이 발견된 다음에도, 수정된 문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9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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