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열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1월 19일 화요일 오전, 오선영과 수사팀은 경섭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자료의 접수 경위와 보관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전날 사무실 방문 시각과 그가 내게 말한 문장을 있는 그대로 적어 전달했다. 종이봉투에는 손대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자료를 함부로 열었다가 나중에 누군가 출처를 공격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경섭 씨가 왜 지금 나왔다고 해?” 오선영이 물었다.
“언론 보도를 봤다고 했습니다. 읽지 않은 사람의 이름으로 확인을 만들었다는 기사를요.”
“그 기사에 자료 원본은 없었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제출한 게 뭔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네가 개봉 현장에 있을 이유도 없어. 확인되는 범위만 설명할게.”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그날까지의 기록을 정리했다. 처음 사건이 시작된 2026년 11월 2일, 임소율이 죽는다는 보고서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했다. 예고 시각에 그녀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배정우가 죽은 채 발견됐다. 그 뒤 우리는 C-12, 정산 차액, 미교부 문서, 잘못된 확인 버튼과 가짜 동의 메일을 따라왔다. 아직 배정우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오후 두 시, 임소율에게 연락이 왔다.
“제 신고가 철회가 아니었다는 정정이 외부에도 가기 시작했대요.”
“실제로 받았다는 확인이 있습니까?”
“일부는요. 나머지는 아직. 서 조사관님, 제가 지난번에 화냈던 거 기억하세요?”
나는 그녀가 어머니의 위장 응급실 연락을 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경찰 보호에서 빠져나가려 했고, 나는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다.
“기억합니다.”
“그때는 당신이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뇨. 그 말이 맞다고 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이제는 알아요. 당신도 모르는 일이 많았다는 거.”
나는 웃지 못했다. 모르는 일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 건 원칙이지만, 그 원칙 때문에 누군가 혼자 불안해하는 시간을 지나게 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렇겠죠. 대신 이제 제 이름으로 뭐가 확인됐다고 하면 먼저 물어보려고요. 제가 진짜로 확인했냐고.”
전화를 끊고 나는 책상에 붙여둔 오래된 메모를 보았다. ‘신고 접수 후에도 내부 표에는 승인으로 보이는 항목. 원본 확인 불가.’ 2025년에 내가 쓴 문장이다. 그때 제대로 따져 물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 질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끝이 없었다. 당시 나는 회사 수사를 직접 지휘할 권한도, 그 자료를 강제로 확보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 피해를 완전히 외면해도 됐다는 면죄부는 아니었다.
오후 네 시, 오선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섭 씨가 낸 봉투에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인쇄물 사본과 당시 메모가 있어. 감정 전이니까 진본이라고 부르진 마.”
“어떤 메모입니까?”
“2025년 8월 25일, 화진모빌리티 정산관리실에서 사용하던 보류 파일 처리표야. 경섭 씨는 업체 측에 회수되지 않은 작업용 사본을 맡고 있었다고 해.”
“미교부 열한 번째 항목이 있습니까?”
“있어. 다만 네가 예상한 것과 달라.”
나는 펜을 들었다.
“누구 이름입니까?”
“이름이 아니야. 열한 번째 칸의 원래 구분명이 ‘미교부 수신자’가 아니라 ‘미교부 책임 이관 금지’야. 그 아래 비어 있는 확인란 하나가 있고.”
나는 숨을 멈췄다. 그동안 우리는 2025년 8월 22일 열람 예정자 명단의 열한 번째 이름이 박혜림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이 실제 문서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추적했다. 그러나 지금 나온 것은 사흘 뒤의 다른 양식이었다. 8월 25일 보류 처리표의 열한 번째 칸은 사람을 적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두 표의 ‘열한 번째’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했다.
“그럼 박혜림 씨 이름은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그건 아직 모르는 거야. 오늘 나온 자료가 진본인지부터 확인해야 하고.”
나는 숨을 내쉬었다. 선영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더 있어.”
“뭡니까?”
“경섭 씨가 가져온 문서의 맨 아래에 수기로 적힌 문장 하나. ‘확인되지 않은 보류는 비용 귀속의 근거로 쓰지 말 것.’ 날짜와 작성자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 문구가 당시 실제로 쓰였다면 누군가는 문제를 알고 경고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 경고를 누가 읽었습니까?”
“아직 몰라. 그리고 바로 그게 중요해.”
나는 순간적으로 최명환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는 최종 승인권자였다. 백이준도 생각났다. 법무 절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윤세한, 김주하, 배정우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이름도 아직 저 문장 뒤에 적을 수 없었다.
오선영은 말을 이었다.
“대신 경섭 씨가 그날 찍은 개인 메모에는 공용 계정으로 이동이 끝난 뒤 ‘재검토 요청’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 경섭 씨 말로는 답을 못 받았대.”
“원본 발송 기록이 있습니까?”
“확보 중이야.”
“그럼 경고를 무시한 사람의 손을 찾을 수 있겠군요.”
“찾을 수도 있지. 하지만 답이 없었다는 말과 누구 하나가 고의로 묵살했다는 말은 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 질 무렵, 박혜림이 면접을 마쳤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숨기지 않고 설명했다고 했다. 임소율은 정정 공문 수신처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정민규는 실무 보고서가 어디로 나갔는지 다시 점검 중이었다. 누군가는 실수를 인정했고, 누군가는 자기 명의를 되찾으려 했고, 누군가는 아직 죽음의 이유를 기다렸다.
밤 아홉 시,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열한 번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까?’
나는 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두 번째 메일이 왔다.
‘사람 이름을 찾으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두 문장을 나란히 놓았다. 발신자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는 없었다. 오늘 수사팀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됐거나,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문장을 골랐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상대가 우리의 질문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려 했든, 이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원본 후보가 나타났다.
그때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서진혁 조사관님. 이번에는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화면을 껐다. 상대가 틀렸는지 묻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엇을 확인했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다시 모니터를 켜자 새로운 첨부파일이 도착해 있었다.
제목은 ‘미교부 책임 이관 금지 — 삭제 전후 비교’였다.
파일의 첫 페이지에는 2025년 8월 25일의 경고문이 있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같은 날 오전 9시 43분, 누군가가 그 경고문을 ‘참고 문구’로 내렸다는 처리 이력이 있었다. 사용자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승인 경로에 익숙한 부서 표기가 하나 있었다.
‘화진모빌리티 정산관리실 — 최종 승인 검토.’
그 경로는 최명환의 직책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승인 경로가 곧 실제 승인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부터 익명 문서가 보여주는 이름을 따라가다가 몇 번이나 사람을 잘못 의심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고문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누군가 그것을 처리 기록에서 낮춘 경로가 남을 수 있었다. 그 경로는 회사에서 확인해야 했다.
나는 선영에게 원본을 보냈다. 그리고 새 종이를 꺼내 이렇게 적었다.
‘첫 번째 확인: 경고문은 있었다. 두 번째 확인: 누가 경고를 무시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질문은 미래가 아니었다.
과거에 누가 이미 알고 있었는가.
제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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