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십이 분.
예고된 시각까지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고 남궁태식의 진술 요약을 읽었다. '창고에 두고 나왔다'는 말은 평범했지만 이상했다. 누군가가 반출하면 책임 문제가 생길 서류를, 해고된 직원이 그냥 놓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날 남궁태식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기록이 남는 인수인계 절차를 요구했다가 일을 잃었다면, 다시 같은 절차를 요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새벽 3시 20분, 경찰이 원효로 창고의 과거 문서 반출 장부를 확보했다. 오선영은 필요한 사실만 알려 줬다. C-12 묶음의 이동을 승인한 담당자는 최명환이었다. 도착지에는 인천 새 보관창고가 적혀 있었다. 운송업체는 정식 계약을 맺은 회사였고, 운송 확인서도 존재했다.
"그럼 이동은 사실이군요."
"서류상으로는. 실제로 같은 내용물이 옮겨졌는지는 봐야 해."
"봉인이 끊겨 있었다면 다른 물건으로 바꿀 수도 있겠네요."
"가능성은 있어. 다만 지금까지 그런 정황을 입증한 건 아니야."
나는 또 한 번 성급한 결론을 삼켰다.
그때 정민규가 공식 연락 경로로 전달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래된 장부에는 같은 날 두 건의 C-12 기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반출 보류', 두 번째는 '반출 완료'. 둘 사이에 네 시간 차이가 났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
"순경님이 그걸 찾아냈습니까?"
"네."
"잘하셨습니다."
정민규는 잠깐 말을 잃었다.
"정말요?"
"같은 코드가 두 번 적힌 걸 확인했잖아요. 이제 그게 수정인지, 재반출인지, 단순 오기인지 보면 됩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실수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뒤로 아무 일도 못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책임과 능력은 같은 항목이 아니었다.
오전 3시 34분, 오선영이 경찰서로 돌아왔다. 짧은 전화를 걸었다.
"새 보관창고에 대한 자료 확보 절차는 진행 중이야. 그런데 확인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어."
"누굽니까?"
"운송기사. 지난달 말부터 기록상 실종 신고가 들어와 있었어."
나는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범죄 연관성이 있습니까?"
나는 그 운송기사의 가족이 한 달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했다. 경찰이 실종 신고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범죄의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C-12를 이동시킨 기사라면, 우리는 그의 행적을 단순한 물류 기록으로만 취급할 수 없었다.
오선영은 가족이 신고한 내용 중 공개해도 되는 범위만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 출근 날 가족에게 '이제 이 일 끝나면 좀 쉬자'고 말했다. 특별한 위협을 암시하는 말은 없었다. 평범한 퇴근 약속이었다. 연락이 끊긴 지 몇 주가 지나도록 가족은 스스로 찾아다니다가 신고했다고 했다.
"우리가 실종 신고를 사건과 연결해 볼 때 조심해야 할 게 있죠." 오선영이 말했다.
"뭡니까?"
"가족에게 함부로 희망을 주지 않는 거야. 이 사건을 수사하면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아직 그럴 근거가 없으니까."
나는 메모에 그 말을 적었다. 나는 지금까지 숫자와 시간의 오류를 추적해 왔다. 그러나 서류 한 장의 빈칸 뒤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자꾸 뒤늦게 떠올랐다. 상대가 사람을 숫자로 계산한다면, 나는 그 사람들의 삶을 숫자로 지워서는 안 됐다.
"아직 없어. 가족이 연락이 안 된다고 신고한 거야.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
"그럼 그 운송기사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해야겠네요."
"그러는 중이야."
이번 사건에서 실종 신고가 무조건 연결된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름이 갑자기 서류의 마지막 칸에서 튀어나왔다면 확인할 가치가 있었다.
그 무렵 백이준의 회사가 보낸 공문에 답변해야 하는 기한도 다가오고 있었다. 공문은 경비원 김동식이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근거로, 그의 진술을 사건 관련 판단에서 신중히 다루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사가 그를 비난할 법적 이익이 있는지는 별개로, 주장 자체에는 일정한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말했다.
"김동식 진술이 틀릴 수 있다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죠."
"알아. 봉투와 현금, 현장 연락 기록은 별도로 확인했어."
"그럼 다행입니다."
내가 안도한 이유는 더 있었다. 상대가 경비원의 도덕성을 공격할 때, 우리는 그의 진술에만 기댄 적이 없었다. 돈을 받은 사람의 잘못은 기록으로 다루고, 범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별도의 증거로 다룰 수 있었다.
이게 우리가 처음 이기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적의 공격을 예상해서 피해를 완전히 막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증거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나누어 확보하는 것.
오전 네 시 2분, 오선영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인천 창고에 근무하는 현장관리자가 경찰 연락에 응했고, 미확인 C-12 박스가 현재 보관실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박스는 바깥쪽 라벨만 남아 있었고, 실제 내용물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늘 새벽에 누군가 그 박스를 꺼내도록 돼 있었습니까?"
"회사 업무지시서에 따르면 재고조사 대상이야. 그래서 우리가 안전을 확인하려는 거지."
"그 지시서 작성자는요?"
"보관회사 부장 명의인데, 작성에 사용한 결재 계정이 본인 것이 맞는지 조사 중이야."
계정이 그 사람 것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이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나는 그 구분을 다시 메모했다.
오전 4시 16분, 남궁태식에게서 추가 진술이 들어왔다. 그는 C-12 상자를 직접 닫았지만, 안에 든 서류가 바뀐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반출 보류 지시 이후 상자 옆에 서 있던 최명환과 백이준의 대화를 들었다고 했다.
잠시 전 경찰은 이명석에게도 설명을 들었다. 박혜림 대신 출근하라는 지시는 정식 근무표와 별개로 내려왔고, 이명석은 거절하면 다음달 계약이 불리해질까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재고조사 대상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급한 업무'라고 들어서 나가려 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임소율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협박에 겁먹어 비밀을 감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지키려는 건 자기 혼자만의 안전이 아니었다. 이명석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범인의 계획을 꿰뚫어 볼 능력보다 내일 받아야 할 임금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이명석 씨가 보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응. 근무 지시와 거절 경위를 남겨 놓고 있어. 본인에게도 사본을 안내했고."
상대가 이용하는 건 대단한 비밀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평범한 의무다. 그 의무를 가볍게 여기면 우리는 계속 늦을 것이다.
'원본은 원본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한테 불리하잖아.'
누가 어느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더 묻자 그는 대답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서류를 없애려 했고, 다른 한 명은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 같다고.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서류를 없애려는 사람이 범인이고 남기려는 사람이 결백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쉬웠다. 누군가 원본을 남겨 두는 편이 나중에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트에 그 가능성을 적을 때 낯선 메시지가 왔다.
'서 조사관님, 오늘 아침 당신이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발신자의 문장에 웃었다. 나는 오늘 아침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다. 상대가 나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할 사람이죠.'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사진이 아니었다. 새벽 어둠 속 창고 앞에서 우산을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흐렸지만 손에는 노란색 표식이 들려 있었다. C-12.
나는 사진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시간 정보도 믿을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이 인천 보관창고 외관과 일치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개된 건물 사진과 비교해보니 간판 모양이 비슷했다.
그때 오선영이 전화했다.
"현장에 사람 하나 나타났어. 자기가 C-12 원본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경찰한테 직접 내겠대."
"누굽니까?"
"이름을 안 밝혀. 대신 서진혁을 불러 달래."
나는 즉시 대답했다.
"안 갑니다."
"그럴 줄 알았어."
"원본이라는 걸 확인하기 전에는 저를 부를 이유가 없죠. 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안전한 사람도 아니고요."
오선영이 작게 웃었다.
"이번엔 네 판단을 빌릴 일도 없었네. 현장에선 우리가 확인하고 있어."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범인은 계속 나를 장면 속에 등장시키려고 하지만, 내가 등장하지 않아도 수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오전 4시 37분. 경찰은 창고 앞의 남자를 안전한 장소로 분리해 신원을 확인했다. 그는 남궁태식이 아니었다. 자기 이름을 최상훈이라고 했지만 신분을 증명할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손에 든 노란 표식도 진짜인지 불분명했다.
오선영이 말했다.
"그 사람 말이 자꾸 바뀌어. 원본을 가져왔다고 했다가, 원본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하네."
"뭔가를 요구했습니까?"
"네가 직접 와야 말하겠대."
"그럼 제가 오지 않는 게 답이겠군요."
"그래. 우리는 그 사람 주장과 상관없이 따로 확인할 거야."
수화기 너머로 무전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시계를 봤다. 다음 사건까지 스물한 분.
경찰은 현장에 있었고, 관련 직원들은 보호받고 있었다. 서류의 위치도 확인 중이었다.
그런데 발신자가 정말 원한 것이 나를 현장에 부르는 일이라면, 내가 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계획을 다시 바꿀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나는 정민규의 재확인과 박혜림의 업무 수첩을 떠올렸다. 거창한 능력으로 범인을 압도한 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같은 번호가 두 번 나온 것을 봤고, 다른 사람은 지난해의 작은 빨간 별표를 지우지 않았다. 상대가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세상에 있는 모든 기록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덜 두렵게 했다. 예고된 시각은 다가오지만 우리는 전날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성과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한 줄이 도착해 있었다.
'당신이 오지 않을 것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길 때뿐 아니라 질 때의 대사까지 준비해 놓는 법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얼마나 준비했느냐가 아니라, 준비하지 못한 변수가 우리 쪽에 남아 있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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