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8화
PAYLUA ORIGINAL · 제8화

8화. 서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5,143자

오프라인 책장
11월 5일 오전 12시 36분. 한유리 기자의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사망 전부터 용의자로 지목된 배정우, 누가 경찰에 문서를 보냈나'. 기사는 내가 임소율의 살인 예고를 신고했다는 사실, 배정우가 사망했다는 사실, 경찰이 현재 두 사건의 관련성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각각 분리해 썼다. 문제는 기사 밑에 붙은 익명 댓글이었다. '서진혁이 배정우를 범인으로 몰았다.' '경찰이 민간인 말만 믿고 무리하게 수사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 확인되지 않은 말이 반복되면 사람은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보다,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를 기억한다. 나는 댓글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나에 대한 비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몇 사람의 생각을 전체 여론처럼 받아들일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내 어머니에게까지 전화가 갔다. 어머니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을 살리려다 사건에 휘말렸다는 식으로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문서를 전달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 죽었고, 제 판단이 옳았는지도 조사 중이에요." "네가 잘못한 거야?" "제가 한 일은 제가 책임질 거예요. 하지만 하지 않은 일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밥은 먹고 다니니?" 나는 피식 웃었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지금 내게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질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컵라면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밥을 챙길 정도의 평범한 정신이 남아 있어야 실수도 줄일 수 있다. 피로는 범인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실재하는 위험이었다. 나는 잠깐 복도를 걸었다가 돌아와 내 메모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피해자 보호 완료'라는 문장에 줄을 그었다. 보호는 완료되는 일이 아니었다. 임소율에게는 여전히 찾아올 사람이 있었고, 박혜림에게는 내일의 출근이 있었다. 상대가 그 일상을 건드리는 한 우리가 지킨 것은 한 번의 사건 발생 시각일 뿐이었다. 내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 상대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말했다. "서진혁 씨, 사람 하나 죽여 놓고 편합니까?" "누구십니까?" "당신이 경찰에 거짓말했잖아." "사실 확인을 원하시면 경찰에 정식으로 문의하십시오." 상대는 욕설을 하고 끊었다. 이런 전화를 신고한다고 바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남겨야 했다. 나는 통화 시각과 내용을 적었다. 얼마 뒤 한유리가 메시지를 보냈다. '기사에 없는 내용을 퍼뜨리는 계정이 있어요. 동일 문구 반복. 제가 확인 중입니다.' 나는 고맙다고 답하려다가 멈췄다. 그녀는 내 편을 드는 게 아니었다. 기사와 소문을 구분하는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이 오히려 믿음직했다. 경찰서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민규가 초기에 공유했던 현장 사진의 일부가 사내 문서와 합쳐진 뒤 외부로 유출됐다. 누군가는 그 자료를 근거로 경찰이 회사 자료를 불법으로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오선영은 원본 보존 경위와 자료 확보의 법적 근거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게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는지 알아?" 그녀가 전화로 말했다. "그럴 겁니다." "자료를 가져온 방식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오면 실제 수사의 적법성부터 확인해야 해. 증거가 아무리 좋아도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사건 전체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상대는 그걸 알고 있겠죠." "그런데 지금 할 일은 화내는 게 아니라 기록을 확인하는 거야." 나는 웃었다. 이번에도 같은 결론이었다. 오전 1시 18분, 회사 쪽에서 경찰에게 정식 서면을 보냈다. 기록보관창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안전 확인에는 협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장은 정중했다. 법적 근거도 붙어 있었다. 백이준의 문장이라는 걸 나는 이름을 보지 않고도 알 것 같았다. "무리하게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절차대로 하고 있어. 관련 자료 확보의 필요성과 범위를 정리했고, 현장 안전 문제는 별도로 확인하고 있지." 오선영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 새벽 네 시에 재고조사가 있기로 했던 장소에는 실제로 작업자가 없겠네요?" "일정을 중단시켰으니까." "그럼 누군가 그 빈 공간을 이용하려 들 수도 있겠군요." "그 가능성도 대비했어." 나는 잠시 안도했다. 오늘만큼은 그녀가 나보다 먼저 몇 발을 움직인 것 같았다. 오전 1시 44분, 박혜림이 보관했던 오래된 업무 수첩이 경찰에 제출됐다. 회계 장부나 고객 개인정보가 적힌 것은 아니었다. 근무 날짜와 인계 서명 여부를 적어 놓은 개인 메모였다. 지난해 8월 19일 옆에 빨간 별표가 있었다. 'C-12 확인 미완료. 남궁태식 미출근. 최명환 승인 보류.' 나는 사진을 직접 받지 않고 오선영이 읽어주는 내용만 적었다. 이 한 줄로 모든 의문이 풀린 건 아니지만, 중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C-12의 인계 절차가 끝나지 않았고, 최명환의 승인과 연결돼 있었다. "남궁태식은 찾았습니까?" "연락이 닿았어. 그런데 경찰서에 오지 않겠대." "이유는요?" "자기 이름이 다시 회사에 알려지면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는 아세요?" "알고 있어. 하지만 네게는 말하지 않을 거야." "옳은 판단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했다. 한때 나는 상대에게 모르는 것을 들키는 게 싫었다. 이제는 모르는 게 더 안전한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조력자가 늘어난다고 수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어야 할 사람만 아는 정보가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 오전 2시 3분, 남궁태식에게서 경찰 연락 경로로 진술 일부가 들어왔다. 그는 C-12에 들어 있던 서류가 보험금 청구자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뭡니까?" 오선영이 물었다. "검증용 대조표요. 승인된 숫자와 실제 송금된 숫자를 비교한 서류."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 인사팀에서 옮기라고 해서 옮겼어요." "왜 인사팀에서요?"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그날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남궁태식은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해고된 사람의 기억에는 분노가 섞일 수 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따로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자료의 성격은 명확해졌다. 송금 금액을 비교한 대조표가 남아 있다면 지난해 사건에서 빠진 고리를 찾을 수 있다. "C-12 원본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선영이 물었다. "아니요. 마지막에 박혜림 씨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담당자가 바뀌어서 창고에 두고 나왔어요." "어느 창고요?" "원효로요." 나는 전화를 듣는 내내 원효로 창고의 구조도를 생각했다. 누군가 임소율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곳에 있어야 할 서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예고의 장소는 인천의 새 기록보관창고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서류가 이동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오전 2시 21분, 오선영은 경찰이 확인한 계약자료를 토대로 새 정보를 전했다. 원효로의 잔여 문서가 전부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말 인천 보관창고로 일부가 이관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관 목록 가운데 한 줄은 내용 확인란이 비어 있었다. 잠깐 통화를 끊은 뒤 오선영이 다시 전화했다. 그녀 자신도 문서 이동 날짜를 처음 잘못 읽었다고 말했다. 밤샘 근무 끝에 '11월 19일'을 '11월 9일'로 보고 보고서를 적으려던 참이었다. 다행히 다른 수사관이 원본과 대조하다가 발견해 수정했다. "선배도 실수하는군요."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그래서 둘이 확인하는 거야. 이번엔 결재 올리기 전에 잡았으니 다행이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책보다 짜증을 들었다. 피곤해서 생긴 오류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느냐, 기록을 고치고 다시 확인하느냐에서 차이가 생긴다. "적이 우리가 틀리길 기다리는 상황이라 더 부담되겠네요." "그렇다고 사람이 기계가 되진 못해. 실수하면 고치고, 한 사람을 믿지 말고 자료 둘을 비교하는 수밖에 없어." 'C-12, 봉인 상태 미확정.'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꾸민 문서라면 회사 내부에까지 같은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기록이 실제로 있었다고 해서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오늘 새벽에 이걸 노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보고 있어." "그러면 서류를 먼저 확보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고, 보관함의 실제 소재도 확인해야 해. 회사는 협조한다지만 범위에는 이견이 있어."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오선영이 옳았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찾은 증거는 누군가의 인생을 법정에서 바꾸는 데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오전 2시 48분, 익명 이메일이 왔다. 이번에는 사건기록도 사진도 없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다만 현명한 사람들은 대체로 한발 늦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회신을 작성했다. 보내지는 않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나는 초안을 지웠다. 상대는 내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걸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대신 배정우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C-12가 무엇인지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는 없어졌다. 정보가 사라지는 방식은 서류를 태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증언할 사람이 사라지면 남은 사람들은 그가 했을 법한 말을 끝없이 추측한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의 생전 진술이 적힌 과거 메모를 다시 확인했다. 그가 그날 한 말 중 내게 불리할 수 있는 부분도 지우지 않았다. 누군가의 진실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만 진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 역시 조작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내가 수사팀에 제공할 수 있는 자료 목록을 정리했다. 예전 면담 메모와 정산 파일 원본, 메일 수신 원본, 통화기록. 각각 언제 얻었고 언제 저장했는지 적었다. 첨부가 여러 번 복사돼 파일명이 바뀐 곳은 변경 경위도 표시했다. 상대가 우리 자료의 신뢰성을 공격한다면, 적어도 내 손에서 시작된 혼란은 줄여야 했다. 대신 오선영에게 한 문장을 보냈다. '발신자가 보고 싶은 건 우리가 어느 창고를 먼저 확인하느냐일 수 있습니다. 장소 선택이 곧 정보가 되지 않도록 수사 목적을 구분해 주세요.' 오선영의 답장은 늦게 왔다. '알고 있어. 이번엔 네 말보다 기록을 믿을 거야.' 그 말은 모욕이 아니었다. 나는 웃었다. 그게 우리가 살 수 있는 방식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8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