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토요일, 비가 내렸다.
나는 서류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 앞에 섰다. 내가 직접 수색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오선영이 입회한 공식 자료 제출 절차가 있었고, 사무실에 보관해둔 내 과거 상담 기록 중 관련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출입 권한이 허용된 곳에서만 움직였다. 이런 사건일수록 누군가의 기록을 함부로 손대는 순간 사건 전체를 망칠 수 있었다.
창고의 관리인은 나를 보자 물었다.
“서진혁 조사관님 맞으세요? 사람들이 자꾸 뭘 찾는다고 와서요.”
“저도 제가 보관한 자료만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는 명부에 내 이름을 적었다. 나는 내 서명을 하고 출입 시간까지 확인했다. 지난해 같았으면 귀찮다고 생각했을 절차였다. 지금은 그 짧은 기록이 누군가에게 나를 대신할 기회를 주지 않기를 바랐다.
선영은 화진모빌리티와 온새문서지원의 보류 파일 이동 경로를 재검토하고 있었다. 회사가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 21분 공용 접수함으로 들어온 파일은 9시 32분 ‘처리 완료 참고’ 폴더로 옮겨졌다. 9시 32분은 확인됐지만 누가 옮겼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그 파일을 처음 열어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내 질문에 오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을 수도. 하지만 이동 기록에는 열람이 남지 않아. 미리보기로 내용이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고, 내용 안 보고 규칙대로 옮겼을 수도 있지.”
“그럼 왜 이 파일만 참고 폴더였을까요?”
“아직은 이 파일만이었다고도 말 못 해. 같은 날 온 다른 파일도 확인 중이야.”
그녀는 귀찮은 반례를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설명을 신뢰했다.
한 시간 뒤 뜻밖의 사실이 나왔다. 같은 날 같은 접수함에 도착한 다른 문서들은 ‘검토 대기’에 남아 있었다. 문제가 된 파일 하나만 이례적인 폴더로 이동했다. 이 차이는 실제로 확인됐다. 다만 행위자가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파일 제목에 특정 분류 문구가 들어 있으면 별도 경로로 움직이는 예외 규칙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외 규칙이 있었다고요?” 내가 물었다.
“업체에 확인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보류_수정_최종’이라는 제목을 가진 파일이 자동 예외 분류 대상이 아니어야 해.”
“그런데 그 파일만 옮겨졌군요.”
“그래.”
조사 중에는 이렇게 말이 적은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편이던 실수 하나가 범인의 기회가 됐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 그러나 그 실수가 조작인지, 게으름인지, 단순한 규칙 오류인지를 모르면 범인은 아무 곳에나 숨어 있을 수 있었다.
점심때 남궁태식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이 경찰에게 제공한 2025년 8월 19일 C-12 봉인 기록에 관해 새롭게 기억나는 게 있다며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우선 경찰에 전달하도록 안내했다.
“그런데 경찰에선 이미 진술한 거 또 바꾸면 의심받지 않겠어요?”
“바뀌었거나 새로 기억난 내용이면 왜 그런지도 함께 말씀하시면 됩니다. 기억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유죄가 되진 않습니다.”
“작년에 제가 본 사람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배정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말을 흐렸다.
“그날 얼굴을 직접 보셨습니까?”
“옆모습이었어요. 서류를 끌어안고 있었고, 팔에 검은 붕대가…….”
나는 즉시 그 말을 멈춰 달라고 했다.
“검은 붕대라는 표현은 나중에 익명 메일로 유통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 표현을 처음 언제 들었는지부터 기록해 주세요.”
“제 기억이 가짜라는 겁니까?”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기억의 출처를 분리하자는 겁니다.”
태식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왜 화났는지 이해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말했는데 내 첫 대답은 의심이었다. 하지만 그 의심을 건너뛰면 그의 진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공격하기 쉬운 약점이 됐을 것이다.
저녁에 내 사무실의 오래된 상담 노트를 펼쳤다. 2025년 8월 화진모빌리티 사건 당시 내가 기록한 한 문장이 있었다.
‘신고 접수 후에도 내부 표에는 승인으로 보이는 항목. 원본 확인 불가.’
당시 나는 그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보험사의 의뢰 범위에 없는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문장이 임소율의 신고가 ‘철회’로 표기된 문제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원본 상담 노트를 경찰에 제출할 수 있도록 복사 절차를 밟았다. 내 감정이 아니라 당시 적어놓은 시각과 표현이 중요했다.
자료를 정리하던 중 내 오래된 상담 노트에서 같은 날 적힌 숫자 하나를 발견했다. 2025년 8월 25일, 당시 나는 보험사 담당자와 통화하며 ‘정산표 11행’이라는 말을 받아 적었다. 그때는 단순히 항목이 열하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정확히 어떤 표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서랍 깊숙이 있던 당시의 전화 메모를 꺼냈다. 흰 종이 끝에는 상대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 가능한 공식 부서 번호가 남아 있었다. 그는 이미 부서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내 기록에서 과거의 업무상 연락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고, 보험사 공식 담당 창구에 확인을 요청했다.
이번에도 답은 간단하지 않았다. 보존 기간이 지났을 수 있고, 개인 조사사에게 제공할 수 없는 정보도 있다고 했다. 그 제한은 불편했지만 정당했다. 내가 상대의 불편을 이유로 규정을 건너뛰면 나중에 같은 규정이 누군가를 보호할 때도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오후 다섯 시가 지나 이경섭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곳은 자료 목록의 보관자 칸이었다. 직원인지 외주 보관 담당자인지, 동명이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이름을 동그라미 치지 않고 별표만 쳤다. 이름 하나에 의미를 너무 많이 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 사람의 신원이나 자료와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선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름을 얻었으면 먼저 그 사람이 왜 그 목록에 있는지 확인해. 범인이냐 아니냐는 제일 마지막 질문이야.”
나는 기록을 접었다. 그날 저녁에는 뜻밖에도 아무 이메일이 오지 않았다. 답을 얻었다는 느낌보다 더 많은 빈칸을 정확히 표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5년에는 그 빈칸을 그냥 두고 업무를 끝냈다. 지금은 그 빈칸 때문에 사람이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죽었다.
하지만 모든 피해가 그 빈칸에서 비롯됐다고 적지는 않았다. 연결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니까. 그 구분은 피해를 줄여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책임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밤 열 시, 오선영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정식 확보 자료의 일부를 가린 화면이었다. 문제의 보류 파일이 옮겨진 직후, 같은 공용 계정에서 ‘특별 인계 확인’ 문구를 입력한 기록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별 인계 확인이 뭡니까?”
“그건 회사에 확인 중이야. 중요한 건 2027년 1월 12일 네 이름으로 발송된 알림에도 같은 문구가 있었다는 사실이야.”
나는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제의 구형 오류와 1년 반 전의 서류가 단순히 닮은 정도가 아니게 됐다.
“두 기록이 같은 사람의 지시를 받았습니까?”
“아직 몰라. 같은 양식이면 누구나 그 문구를 쓸 수 있어. 그래도 이건 검증할 만한 연결이야.”
통화를 끊은 뒤 비가 그친 창밖을 바라봤다. 오래전 누군가가 서명 단계를 건너뛰게 한 문구와 오늘 누군가가 내 이름을 대신한 문구.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이동했는지는 이제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8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