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러 온 게 아니었다.
1월 2일 토요일 오후, 오선영은 경찰서에서 있었던 면담 내용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명해주었다. 김주하는 온새문서지원의 전산 출력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2025년 8월 22일에는 창고 문서 분류와 출력 오류 접수를 함께 담당했다. 그녀의 이름이 사고일지 맨 아래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작성자란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 칸 이름은 '처리 확인'이야. 경고문 작성자 칸은 따로 없었어."
나는 수첩을 펼쳤다. 지난밤 받은 익명 지시표는 작업 시작 시각이 9시 10분이었다. 임소율의 신고가 9시 8분에 접수됐고, 미교부 열한 번째 행은 9시 11분에 만들어졌다. 그 사이의 일 분. 우연히 겹친 숫자에 끌리기 쉬운 시간이었다.
"지시표는 경찰에 보냈습니다. 원본인지 확인됐습니까?"
"아니. 잘린 사진만으로는 인증 못 해. 김주하 씨도 그 사진을 처음 봤다고 했어."
"업무 당시의 기억은요?"
"누가 분류판을 떨어뜨렸고, 종이 뭉치가 섞였다는 건 기억해. 본인이 붙인 경고 표시는 아니라고 해."
"믿습니까?"
"기억이 정확한지 따로 확인하겠지. 믿고 안 믿고부터 정하면 취조가 돼."
맞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받은 첫 사건기록에도 분류판 조각은 의미심장한 증거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 사진이 실제로 어디서 찍혔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낡은 물건 하나를 살인과 연결하려는 욕심이 생길 때마다 사진의 출처를 먼저 떠올려야 했다.
이날 오후, 김주하는 자기 명의의 계좌에서 급여가 들어온 시점까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회사가 그때 '관리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평소보다 적은 돈을 더 지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유를 몰랐고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다고 했다.
"얼마입니까?"
"십오만 원."
나는 무심코 펜을 떨어뜨렸다.
원효로 건물 경비원 김동식에게 주어졌던 금액과 같았다. 누군가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데 쓰였던 액수와, 1년 전 출력실 직원에게 추가로 지급된 액수가 같았다.
"선배, 그 두 돈을 연결하면 안 됩니다."
오선영이 웃지 않고 답했다. "내가 하려던 말이야. 날짜도 지급 목적도 다른데 숫자만 같아."
나는 펜을 주웠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물었다.
"급여명세서의 항목 이름이 정확히 뭡니까?"
"김주하가 보관한 명세서에는 '임시업무 정산'이래. 본인이 관리 수당이라고 기억한 것과 달라. 회사 원천 자료로 확인 중이야."
여기서도 기억과 문서가 달랐다. 정직한 사람이 잘못 기억할 수 있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정확한 문서를 들고 올 수 있다. 둘을 섞으면 언제든 함정이 된다.
나는 1년 전 보험사 조사 메모를 다시 읽었다. 화진모빌리티의 보험금 처리 절차에는 외부 문서지원 업체의 자료 송수신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온새문서지원이 어떤 원본을 받았는지 전부 확보하지는 못했다. 의뢰 범위 바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빈칸을 되살리려면 당시의 권한이 아니라 현재의 적법한 조사 절차가 필요했다.
점심이 지난 뒤 박혜림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전보다 단단했다.
"정정 회신을 보냈는데 회사에서는 아직 검토 중이래요. 저를 대신해서 동의 메일을 보낸 사람은요?"
"발송 계정과 실제 작성자를 나눠서 확인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 때문에 채용이 무산될 수도 있어요. 조사관님들은 문서가 진짜냐 가짜냐 확인하면 끝이지만, 저는 다음 주에도 면접을 봐야 해요."
나는 사과할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무턱대고 사과하면 듣는 사람을 더 화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겪는 비용은 사실이었다.
"제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와, 회사에 직접 정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다만 해결된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은 안 하셔도 돼요. 대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주세요."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동안 가장 많이 사용한 문장을 이제 피해자가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 고태원에게서 새 연락이 왔다. 지난해 11월 3일 회의 취소 기록을 확인하던 회사가 담당자의 업무 실수를 이유로 그에게 경위서를 요구했다고 했다. 그가 본 빨간색 일정이 실제 화면에 있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제가 실수했다고 인정하면 나중에 수사가 끝나요?"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하신 행동을 정확히 적으세요. 화면에 무엇이 보였는지는 기억과 기록을 나눠서요."
"회사에서는 제가 책임지면 서로 편해진다고 해요."
"누가 그랬습니까?"
"부서장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녹음은 없어요."
나는 말 대신 날짜와 상대를 메모해두라고 했다. 고태원이 느끼는 압박도 실제였지만, 그 말이 회사 전체의 지시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해 질 무렵 오선영이 보낸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주하 씨가 사고일지에 남은 자기 서명을 확인. 경고문 전체가 아니라 9시 24분 복구 작업만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 그 시각의 작업표와 대조 중.'
그렇다면 김주하의 이름은 누군가가 경고문 전체를 확인했다는 증거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뒤늦게 자기 책임을 줄여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두 가능성을 나란히 적었다.
해가 진 뒤 김주하의 급여 항목에 관한 추가 사실이 확인됐다. 15만 원 지급은 그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같은 부서의 임시 근무자에게도 서로 다른 금액의 업무 정산이 지급된 기록이 있었고, 지급 기준은 야간 분류 복구 작업에 투입된 시간이었다. 김주하가 정말 그 일을 했는지와 별개로, 금액 하나를 뇌물의 흔적이라고 믿을 이유는 줄어들었다.
나는 선영에게 물었다. "이렇게 확인되면 김주하 씨 의심은 거두는 겁니까?"
"돈을 받은 사실만으로 만든 의심이라면 거둬야지. 그런데 그날의 다른 행동은 따로 확인할 거야."
선영은 내게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우리가 숫자에 반응한다는 걸 누군가 알았다면, 십오만 원이라는 금액을 다른 자료에 일부러 넣었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그것 역시 사실이라고 단정하면 안 돼."
나는 그날 처음 김동식의 진술을 다시 읽었다. 그는 돈을 받은 일을 인정했지만 그 돈의 대가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를 선량한 피해자로 바꿔 부를 수는 없었다. 돈을 받고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은 행동에는 그 자체의 책임이 있었다. 김주하의 임시업무 수당과 김동식의 현금은 액수만 같을 뿐, 현재까지 확인된 성격이 달랐다.
그 차이를 적어놓자 다른 것도 보였다. 누군가가 기록을 왜곡하려 한다면 반드시 거짓말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서로 상관없는 진짜 기록 두 개를 나란히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은 관계없는 숫자를 연결하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상대가 우리에게 요구한 행동도 어쩌면 그것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의심스러운 금액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던 버릇을 고쳤다. 대신 각 숫자의 지급 사유와 작성 주체를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김주하 씨가 제가 보낸 자료 때문에 조사를 받는 건 아닙니까?" 내가 묻자 오선영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그 부분도 확인하겠어. 하지만 조사 필요성을 판단한 건 우리야. 네가 모든 책임을 짊어질 필요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필요도 없어."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노트에 옮겼다.
그날 밤 새 파일이 이메일로 왔다. 제목은 '서명된 사람'. 폴더 이름처럼 보이는 문구 아래에 김주하의 이름과 두 개의 체크박스가 있었다. 하나는 '복구 완료', 다른 하나는 '배포 완료'. 첫 번째 칸에는 표시가 있었고 두 번째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신자는 본문에 덧붙였다.
'그녀는 하나만 확인했습니다. 누가 둘 다 확인했다고 말했습니까?'
나는 이미지가 사실이라면 누군가의 거짓말이 시작되는 위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지가 사실이라는 전제부터 검증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오선영에게 원본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제7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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