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목요일 오전, 오선영은 내게 한 장의 시간표를 보여줬다.
상세한 수사기록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당사자가 정식으로 확인한 항목 가운데 외부 조력자인 내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 가린 표였다. 그러나 그 한 장은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쓴 화이트보드보다 중요했다.
2025년 8월 22일 오전 9시 08분. 임소율 정산 오류 신고 접수.
9시 11분. 통합 목록에 열한 번째 분류 행 생성.
9시 16분. 윤세한 계정으로 '완료' 처리.
그동안 각각 다른 곳에서 확인한 시간이 같은 표 위에 놓였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확실한 사실이 많아졌지만 아직 빈칸도 많았다. 9시 11분 누가 열한 번째 행을 만들었는지, 그 행이 왜 박혜림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보이게 됐는지, 윤세한의 완료가 실제 무엇을 뜻했는지 여전히 확인해야 했다.
"이 시간표를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물었다.
"네가 계속 순서만 보고 범인을 찾으려고 해서. 오늘은 순서를 보는 방법을 바꿔보자."
오선영은 9시 08분을 가리켰다.
"임소율의 신고는 목록이 합쳐지기 전에 들어왔어. 그러면 통합 목록을 만든 사람은 신고 내용을 몰랐을 수도 있지."
"반대로 보고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맞아. 그러니까 이제 확인해야 할 건 열한 번째 사람의 정체가 아니라, 신고 내용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과 목록을 바꿀 수 있었던 사람의 교집합이야. 그 둘이 같은 사람일 필요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아직 범인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필요한 이름을 의심하기보다 실제 권한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오후에 김주하가 보존해둔 수첩의 일부가 원본 작업일지와 대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5년 8월 22일 오전에 C-12 구역의 부품이 파손됐고, 재출력 작업이 보류된 기록이 있었다. 그것이 신고 접수 전인지 후인지까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기록에 작은 주석이 하나 있었다.
'미교부 대상 임시 분리. 실물 인계 전 완료 처리 금지.'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누군가는 그때 완료 처리와 실제 인계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차이를 경고하는 문구가 존재했다. 그런데 9시 16분에는 완료가 눌렸다.
"누가 주석을 적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원본 작성자는 확인 중이야. 그리고 그 말이 모든 직원에게 전달됐는지도 모른다."
나는 윤세한을 떠올렸다. 그는 원본을 보지 않고 완료했다고 인정했다. 주석이 그가 보던 통합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부주의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경고를 읽고도 눌렀다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손으로 눌렀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날 오후 박혜림은 회사에 정정 회신이 접수됐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사칭 동의 메일의 존재를 이유로 그녀의 이의를 즉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녀가 직접 '동의하지 않았다'고 제출한 시간은 남았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물었다.
"기쁘진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돈은 아직 못 받았고 일자리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이번엔 제가 보낸 문서가 맞아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가장 약한 사람이 스스로 보낸 문서가 겨우 하나의 기록으로 인정됐다. 어떤 범인에게는 하찮은 결과겠지만 그녀에게는 한 달을 버텨 얻은 성과였다.
저녁 무렵 배은정은 동생의 명예를 바로잡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인터뷰를 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처음 사건기록이 배정우를 '유력 용의자'라고 적었다는 사실과 실제 수사에서 그가 유죄로 확인된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설명했다.
"제가 이걸 말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그녀가 물었다.
"모두가 믿을 거라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확인된 사실을 분리해서 말할 방법은 있습니다."
그녀는 한참 뒤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 고마움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밤에 오선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배정우 사망 당시 현장 직원이 보낸 짧은 메시지의 발신 시각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식 보고가 올라오기 전이었다. 그러나 메시지에는 '사망 확인'이라는 말이 없었다. 누군가 반응이 없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알린 것이었다.
"그럼 익명 발신자가 그 소식을 듣고 수정본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수신자가 누구고 내용이 어디까지 전달됐는지는 더 확인해야 해. 그리고 메시지 발신자가 현장 사진까지 제공했다는 증거는 없어."
나는 공식 보고보다 빠른 이메일을 초자연적인 예언으로 설명하려는 생각을 다시 지웠다. 아직 모든 부분이 설명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평범한 경로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었다.
그때 내 휴대전화로 익명의 새 메일이 왔다. 제목은 '올해 마지막 보고서'.
첨부파일은 없었다. 본문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주하.'
그 아래에 이런 말이 이어졌다.
'그날 완료하지 말라고 쓴 사람을 찾았군요. 그렇다면 왜 그 사람은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요?'
나는 곧바로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김주하가 주석을 적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상대가 이름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그 이름의 진실을 보증하지 않는다.
오선영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사람을 갑자기 위험하다고 단정하지 마. 안전 확인은 하겠지만 발신자의 말대로 움직이진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녀는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 우리가 오늘 발견한 주석 말이야. 원본에 있는 문장은 네가 전달한 메일의 문장과 조금 달라."
나는 잠시 멈췄다.
"어떻게 다릅니까?"
"원본에는 '실물 인계 전 완료 처리 금지'라고 되어 있어. 그런데 익명 발신자가 앞서 보냈던 옛 파일에는 '실물 인계 후 완료'라고 적혀 있더라."
뜻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쪽이 먼저 쓰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 원본을 요약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 다른 판본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네가 지금 해야 할 건 어느 말이 더 그럴듯한지 고르는 게 아니야. 그 두 문장이 어떻게 서로 다른 곳에 남았는지 확인하는 거지."
나는 창밖을 보았다. 멀리서 새해를 기다리는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사건이 시작된 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범인을 몰랐다. 대신 누가 무엇을 확인하지 않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됐다.
모든 것이 정리될 거라는 예감은 들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익명의 문서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한유리가 보낸 메시지는 기사 초안의 제목이었다.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는 그것을 읽고 잠깐 멈췄다. 진범을 밝히는 기사가 아니었다. 정정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제목에는 지금까지 이 사건이 요구한 행동이 담겨 있었다.
한유리는 묻지 않았다. 제목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해달라는 말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확인한 것을 보내면서, 아직 입증되지 않은 이름을 넣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기사 내용은 그녀가 스스로 검증할 일이었다.
내가 가진 기록에는 김주하가 경고문을 썼다고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 옆에 이렇게만 적었다.
'발신자가 지목함. 작성자 미확인.'
새해 첫날, 나는 그 빈칸을 확인할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 넣는 일보다, 적어 넣어도 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제7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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