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수요일, 나는 처음 도착했던 살인사건 기록의 세 번째 사진을 다시 열었다.
피해자의 손에 쥐어졌다고 설명된 노란색 플라스틱 조각. C-12. 당시에는 범인이 남긴 암호처럼 보였다. 이제는 그 조각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실제 자료가 생겼다.
오선영이 말했다.
"원효로 창고에서 비슷한 부품을 확인했어."
"같은 물건입니까?"
"아직 아니야. 선반 끝에 끼우는 문서 분류표의 탈착식 고정 부품이야. 색과 형태는 비슷하고 번호도 C-12 구역에 쓰였어."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특이한 암호가 아니라 작업장에 흔한 부품이었다. 그것이 실제 사진 속 물건과 동일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래도 사진을 제작한 사람이 창고의 구조나 물품을 알았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부품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습니까?"
"창고에서 일한 사람이라면 볼 수 있었을 거야. 외부 납품처에도 같은 형식이 있었고."
"그럼 특정인 추적에는 거의 쓸 수 없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사진이 언제 촬영됐는지 비교할 기준은 될 수 있어."
나는 11월 2일 받은 첫 문서에 사진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존재한 사진. 그것이 실제 사망 현장의 사진일 필요는 없었다. 오래전에 찍은 물품 사진을 마치 미래 사건 현장처럼 꾸밀 수도 있었다.
오후에 김주하가 경찰을 통해 자신의 업무일지 일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C-12 구역의 부품이 2025년 인쇄물 분류에 쓰인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그 물품을 직접 만진 사람은 여러 명이었다.
"그 구역에 서류가 두 종류 있었어요." 김주하가 말했다. "정산정정 통지하고 미교부 재발송 목록이요."
"그 두 종류가 같은 서류라는 뜻입니까?"
"아니요. 오히려 섞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붙여놓은 색깔이 달랐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을 적었다. C-12가 사람 이름이나 지급 대상자를 가리키지 않고 물품 보관 구역이었다면, 누군가 그 번호를 문서의 사람 순서처럼 이용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검증해야 할 가설이었다.
김주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2025년 그날 오전에 분류표가 한 번 떨어졌어요. 고정 부품이 깨졌거든요. 누가 급하게 다시 꽂으면서 옆 구역과 순서를 바꾼 것 같았어요."
"그걸 확인한 사람은 있습니까?"
"작업반장이 사진을 찍었어요. 업무실수 보고한다고요."
"그 사진은 남아 있습니까?"
"아마 창고 업체 사고일지에 있을 거예요."
나는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표를 바꿔치기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컸다. 하지만 번호가 붙은 부품이 깨졌고, 그 때문에 다른 분류표와 섞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면 처음 목록이 달라진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오선영은 그 말에 신중했다.
"그 사고가 실제 있었다고 해도 박혜림 이름을 넣은 사람까지 알려주는 건 아니야. 단지 처음에 분류 오류가 생길 조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거지."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 오류를 나중에 의도적으로 이용했을 수는 있고요."
"그것도 증거가 필요해."
나는 오후 늦게 창고 관리업체의 공식 보존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게 원본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작업반장이 장비 고장 사진을 올린 기록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기록의 업로드 날짜가 2025년 8월 22일이라는 사실만 확인됐다.
한유리는 나에게 기사를 쓰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범인이 저 노란 조각을 일부러 보여줬다면 왜 사람들이 보게 했을까요?"
"우리가 무언가 특별한 암호라고 믿게 만들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고에서 찍은 흔한 사진을 찾다 선택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말하면 재미없는 기사인데."
"재미없어도 맞는 기사면 좋겠습니다."
한유리가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 기사에서 C-12를 '살인을 예고한 암호'라고 쓰지 않았다. 대신 사건 서류 속 물품 사진과 실제 작업장 기록의 관계를 검증 중이라고 썼다.
밤에 임소율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선영을 통해 나에게 전해도 된다고 한 말이었다.
"그때 창고에서 분류표가 깨졌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누군가 제게 '서류를 잃어버린 건 당신이 신고를 해서'라고 말했어요."
"누가 말했습니까?"
"정확한 이름은 경찰에 말씀드릴게요. 그 말 때문에 제가 신고를 철회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오래전에 일어난 실수 하나가 사람을 침묵시키는 재료가 됐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플라스틱 조각이 깨진 일과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 일은 다르다. 누군가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를 끊기 전 임소율은 말했다.
"저는 지금도 그 신고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숫자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책임을 넘기는 방식이 틀렸다고 했거든요."
나는 그 문장을 원문과 구분해 기록했다. 그녀의 기억은 중요한 진술이지만, 당시 문서 자체가 무엇을 적었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했다.
내가 가장 놀란 건 김주하의 다음 말이었다. "부품이 깨졌을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분류표는 다시 꽂으면 돼. 완료 표시는 나중에 고쳐.'"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의 억양이나 키를 캐묻지 않았다. 일 년 넘은 기억을 지금의 용의자에게 맞춰가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그 말은 그날 누구에게 보고했습니까?"
"작업반장에게요. 그분이 사고일지를 썼을 거예요."
"그 보고가 실제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면 되겠네요."
김주하는 잠깐 웃었다. "그때는 진짜 사소했어요. 플라스틱 하나 깨졌다고 보고서까지 써야 한다니 귀찮았죠." 나는 그 귀찮음이 오히려 지금의 단서가 됐다고 생각했다. 누가 범인인지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분류표가 바뀔 수 있었던 상황을 기록해두었으니까.
오선영은 그 말에 덧붙였다. "그 당시 작업장 사진이 진본이라고 해도 살인 예고에 쓴 사진과 같은 물건이란 건 다른 문제야. 정밀 비교가 필요해." 나는 그 경계를 기억했다. 하나의 물건처럼 보이는 두 사진 사이에 시간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녁 늦게 나는 직접 창고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C-12 선반 앞에 서면 퍼즐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장은 수사팀과 창고 관리자의 통제 아래 있었고 내게 독자적으로 확인할 권한은 없었다. 대신 그곳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의 진술 시점을 비교했다. 최초 사고일지가 작성된 시점, 김주하가 나중에 떠올린 시점, 익명 발신자가 사진을 보낸 시점이 모두 달랐다.
그때 뜻밖의 문자가 왔다. 고태원이었다. "저도 C-12를 압니다. 2025년에 회사가 그 구역에 누락 서류를 모았거든요." 나는 그가 그곳에 실제로 근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 부서의 근무표에는 창고 근무가 없지만 가끔 문서 인수 업무를 했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 역시 독립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표시했다.
누군가 C-12를 안다고 해서 범인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 번호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내게 연락하는 걸까. 언론에 정보가 떠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구나 의심받기 전에 자기를 설명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발신자가 그 반응까지 계산했을 가능성은 열어두되, 이를 명백한 사실처럼 쓰지 않았다.
자정 직전 새 메일이 도착했다.
'조각은 맞는 자리에 돌아왔습니까?'
나는 더 이상 답을 찾아 화면을 헤집지 않았다. 이번에는 창고의 실제 사진과 최초 작업 기록이 상대보다 먼저 발견되고 있었다. 발신자가 우리의 발견을 알고 새 말을 붙였을 가능성은 남았다.
한 장의 사진이 미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이 남게 된 과거의 실수를 찾아내면, 미래처럼 보이게 만든 사람이 선택한 재료를 이해할 수는 있다.
제6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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