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화요일 아침, 경찰이 보내지 않은 출석 공문과 박혜림이 보내지 않은 동의 메일을 나란히 놓았다.
실제 원본은 내게 없었다. 내가 가진 건 당사자가 공개한 부분과 오선영이 확인된 사실만 알려준 목록이었다. 두 문서에 쓰인 글씨체나 색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할 생각은 없었다. 문서 양식은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고, 회사는 외부 업체에 디자인을 맡기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같은 질문을 적었다.
'두 사람이 왜 같은 시기에 확인 또는 동의라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았는가.'
윤세한에게는 가짜 출석 안내가 갔다. 박혜림에게는 사칭 동의 기록이 생겼다. 고태원에게는 경위서의 문장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왔다. 나에게는 비공개 문서의 첫 줄이 도착했다. 누군가는 다섯 사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게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기록들을 나중에 한 장으로 묶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는 몰랐다.
한유리가 오후에 연락했다. 그녀가 취재 중인 문서 대행업체가 일부 양식을 여러 회사에 납품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나는 먼저 물었다.
"그 업체가 위조 문서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아뇨. 똑같은 머리글과 제목 규칙이 계약상 제공되는 기능이라는 것까지 확인했어요."
"그렇다면 양식이 같다는 건 연결고리로 보기 어렵겠네요."
"맞아요. 오히려 그런 말을 기사에 쓰고 싶어요."
그녀는 신문 기획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거가 약한 고발을 뒤집는 기사라서 편집부 반응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같은 모양의 문서를 보면 같은 발신자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습관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오선영은 별도로 확인한 사실을 알려줬다. 경찰 출석 공문을 흉내 낸 문서는 오래된 양식을 참고해 만들었을 수 있었다. 해당 양식은 공개된 자료로도 얻을 수 있었다. 박혜림 사칭 메일은 이와 달리 개인이 사용하는 주소 패턴을 알고 있어야 만들기 쉬웠다. 두 문서의 제작자는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상대가 여러 명일 가능성을 생각해봤습니까?" 내가 물었다.
"처음부터. 누군가 하나의 계획을 짰더라도 실행자가 전부 같은 건 아니니까. 그리고 여러 사람이 저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비슷한 짓을 했을 수도 있지."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음모라는 설명을 좋아한다. 모든 증거가 하나의 중심으로 모이면 이해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범죄는 서로 다른 욕심과 게으름이 우연히 맞물려 커지기도 한다.
오후 늦게 윤세한이 회사 조사를 받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누른 완료 버튼의 범위를 구분해 진술했고, 회사는 그를 징계 검토 대상으로 올렸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들으며 복잡한 마음이 됐다. 원본을 확인하지 않은 책임은 분명히 남아야 한다. 하지만 그 버튼을 이용해 다른 사람 이름을 추가한 사람이 따로 있다면 그 책임까지 윤세한이 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민규도 내부 교육과 추가 점검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왔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인정한 뒤에도 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책임과 불이익이 뒤따랐다. 상대는 그 불이익을 악용할 수도 있었다.
저녁 무렵 고태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 조사관님, 회사가 제 경위서를 다시 바꾸라고 하지 않기로 했대요."
"다행입니다. 처음 쓴 내용과 수정 요청 모두 보존하셨죠?"
"경찰에 전달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말씀하세요."
"저한테 수정 요청이 오기 전에 다른 부서 사람이 이미 제가 문장을 고칠 거라고 알고 있었대요."
나는 펜을 들었다. 누군가 고태원의 선택을 예상했거나, 수정 요구가 사전에 공유됐을 수 있었다. 둘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말을 한 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까?"
"제 동료가 들었대요. 저는 아직 못 만났어요."
나는 그 사실을 일단 전언으로 표시했다. 소문의 출처를 확인하기 전까지 누구도 예언자가 아니다.
밤에 오선영이 다시 연락했다.
"진혁아. 사칭 메일이 처음 회사에 도착한 시각을 다시 확인했어. 박혜림에게 합의 회신을 요구하기 전이더라."
"그럼 누군가 답장을 받기 전에 동의한 것처럼 꾸민 셈이군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내부 전달 시각과 실제 수신 시각도 다시 봐야 해."
나는 침묵했다. 상대는 누가 어떻게 대답하든 이미 같은 결론을 만들어놓고 있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박혜림이 거짓 동의를 부정하는 모든 과정도 그 사람이 원한 분쟁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박혜림의 정정 요청은 제때 접수됐다. 회사가 즉시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선택이 기록으로 남았다. 계획을 짠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예상 밖의 저항이었을 수 있다.
한유리가 돌아간 뒤 나는 두 종류의 문서를 다루는 사람들을 따로 생각했다. 문서를 만들어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보내는 사람, 문서를 진짜라고 주장하는 사람. 이 셋은 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도 있고 서로 모를 수도 있었다. 범죄를 증명하려면 동작이 실제로 이어졌다는 자료가 있어야 했다.
오후에 오선영은 문서 대행업체 관계자가 경찰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업체는 정식 고객사 요청으로 수년간 양식 묶음을 납품했고, 나중에 누가 그 양식으로 편지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담당자는 지난해 8월부터 '확인 요청'과 '완료 통지'의 제목을 서로 바꿔달라는 수정 요청을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
"누가 요청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계약상 고객사 담당 부서로 기록돼 있어. 개인 이름은 아직 대조 중이야. 그리고 요청 내용이 실제 사칭과 이어진다는 증거는 없어."
나는 짧은 흥분을 눌렀다. 제목을 바꾸는 일은 업무상 흔하다. 그러나 2025년의 완료 처리와 지금의 가짜 동의 메일이 둘 다 제목의 뜻을 이용했다면 적어도 확인해볼 만한 작업이었다.
한유리는 오후에 다시 전화했다. 자신이 취재했던 업체 직원이 기사에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그 직원은 지시받은 양식을 만들었을 뿐인데 범죄 조직의 일원처럼 보일까 걱정했다.
"이름을 빼면 기사가 약해질까요?" 한유리가 물었다.
"오히려 확인할 범위를 분명히 하면 더 정확해질 겁니다. 그 직원이 직접 범행에 관여했다는 근거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결국 업체명도 계약 관련 사실이 정리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기자와 수사관이 하는 일은 같지 않지만, 사람이 억울한 의심을 받게 하지 않을 책임은 둘 다 있었다.
밤 늦게 정민규가 실수의 정정 보고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왔다. 오선영은 그가 반성한다고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언제 수정본을 열람했는지 확인할 단서를 남겼다고 했다. 실수한 사람이 그 실수의 경로를 숨기지 않으면, 악인이 이용한 길도 조금씩 드러날 수 있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최명환과 백이준의 이름을 같이 확인할 수 있는지 물으려다가 멈췄다. 두 사람이 문서 절차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과 사칭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별개였다. 그들이 준비한 공식 양식은 다른 직원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대신 두 문서가 처음 등장한 저장소와 전달 경로만 정리했다. 누군가를 특정해 달라는 요구보다 수사에 도움이 되는 질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새 질문을 적었다.
'누가 보냈는가보다, 누가 이 기록이 존재한다고 가장 먼저 주장했는가.'
가짜 문서의 제작과 유통은 따로 있었다. 그 둘 사이에 처음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제6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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