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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66화
PAYLUA ORIGINAL · 제66화

66화. 동의하지 않았다는 비용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67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27일 일요일, 박혜림은 자신이 보내지 않은 이메일 하나를 부정하기 위해 두 번째 상담비를 냈다. 그녀가 내게 영수증을 보여준 건 돈을 돌려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누가 자신을 믿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합의에 동의했다는 메일을 제가 보낸 적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일단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니까 철회 절차를 밟으래요." "상담한 분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동의 자체가 있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의를 낼 기한이 내일이래요." 나는 날짜를 적었다. 12월 28일 월요일. 회사가 내부적으로 정한 회신 기한이었다. 법률상 모든 권리가 그날 소멸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 차이를 혼동하면 박혜림은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놓칠 수 있었다. "내일 마감이라는 말의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하셨나요?" "메일에 있었어요. 상담하시는 분도 그 날짜를 기준으로 우선 답장을 준비하자고 하셨어요." 그녀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회신이 늦으면 돈을 못 받을 수 있고, 서둘러 보내면 자신이 원치 않는 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읽힐까 두려워했다. 누군가 가짜 메일을 한 통 보냈다는 사실보다 그 메일이 만들어낸 선택의 폭이 더 무서웠다. 나는 서류를 대신 작성하지 않았다. 그녀의 전문가와 상의해 사실관계 정정과 조건 협의를 분리해 보내는 방법을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물었다. "이렇게 해도 회사가 저를 안 믿으면요?" "저는 회사가 어떤 판단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언제 보냈는지 기록을 남겨둘 수는 있습니다." 점심 무렵 박혜림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식당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퇴사한 회사의 거짓 문서 때문에 일요일을 모두 쓰고 있었다. 한 번의 서명이 누군가의 주말과 통장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오선영은 이날 사칭 메일에 관해 확인된 사실을 알려줬다. 발신 주소는 박혜림의 옛 회사 계정과 한 글자 다르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누가 실제로 그 주소를 사용했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발신에 쓰인 서비스도 흔한 것이어서 그것만으로 범위를 좁힐 수 없다고 했다. "보낸 사람이 박혜림이 아니라는 건 확인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녀가 발송하지 않았다는 진술과 계정 소유 관계가 안 맞는 건 확인했어. 그런데 제삼자가 실제로 보낸 건지, 회사가 전달받은 원문이 바뀐 건지까지는 더 확인해야 해." "그럼 회사는 '받았다'고 주장하는 거고 박혜림은 '보내지 않았다'는 거군요." "맞아. 그 사이에 기록을 누가 만들었는지 보는 거야." 이것은 2025년의 '확인 완료'와 닮아 있었다. 받았다는 표시는 있는데 실제 수신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반대로 보냈다는 표시가 있는데 실제 발송은 확인되지 않았다. 누군가 이런 기록상의 틈을 반복적으로 이용한다면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방식이 쓰였다고 같은 범인이란 뜻은 아니었다. 저녁에는 한유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박혜림 이름이 퍼진 인터넷 글을 추적해봤다며 출력 화면 두 장을 보여줬다. 한 장은 '합의 완료'라고 적힌 회사 공지의 캡처였고, 다른 한 장은 '동의 철회 중'이라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둘 다 사람 이름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선 피해를 줍니다. 하지만 진본 여부는 원문과 게시 이력을 확인해야겠죠." "지금은 두 게시물의 시간을 확보하고 있어요. 누가 먼저 올렸는지 하나만 밝혀도 방향이 보일 것 같아서요." 나는 그 생각을 지지했다. 다만 게시 시각이 빠르다고 최초 작성자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녀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박혜림에게서 마지막 연락이 왔다. "결정했어요. 회사가 준 문장으로 답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확인한 것만 써서 보낼 거예요." "좋습니다. 담당 전문가와 최종 확인하고 전송 기록도 보존하세요." "서 조사관님. 저는 범인을 잡는 것보다 내일 출근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해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말에 놀랐다. 나는 사건의 결말을 생각하느라 당사자가 내일 어떻게 살지를 잊고 있었다. 박혜림이 돌아간 뒤 나는 그녀의 상담 기록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가짜 이메일의 발신자를 찾으면 곧바로 이 분쟁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회사의 기록에는 '동의 회신 수령'이 남아 있었다. 발신자가 밝혀지더라도 그동안 기한을 놓친 사람의 채용 기회와 상담비가 자동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점심때 법률 상담을 맡은 담당자가 박혜림의 동의를 얻어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내게 말했다. 회사의 내부 회신 기한은 권리 자체의 소멸 시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이의 제기와 합의 조건 협상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법률 판단을 내릴 위치가 아니었다. 다만 그 설명 때문에 상대가 내세운 '내일까지 끝'이라는 문장의 압박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뜻밖의 연락이 하나 더 왔다. 회사 담당자가 박혜림에게 잘못된 답장에 대해 따로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사과문의 초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사자 간 의사소통 과정의 혼선에 대해 유감을 표함.' 마치 박혜림도 동의 과정에서 실수한 것처럼 읽힐 수 있었다. 박혜림은 내게 그 문장을 보이며 물었다. "이렇게 사과하는 걸 받아도 되나요?" "사과를 받고 안 받고는 박혜림 씨 선택입니다. 다만 사실 확인과 합의의 의미가 한 문서에 섞여 있지 않은지 상담하시는 분과 확인해보세요." 그녀는 초안을 접었다. "그럼 저쪽 말이 아니라 제가 한 말을 기준으로 정리해야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피해자의 말을 대신 써주는 순간 피해자는 또 다른 문서를 부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녁에 박혜림은 자신의 진술문에서 감정적인 표현 몇 개를 지우고 날짜와 경로를 남겼다. '저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으며 전부 사기입니다' 대신 '저는 해당 주소에서 12월 19일 발송했다는 메일을 작성하거나 전송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었다. 문장은 약해 보였지만 확인 가능했다. 실제 발신 시각은 확인 중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문서의 힘이 언제나 강한 어조에서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배웠다. 상대가 원하는 확정적 표현을 피하는 일 자체가 방어일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회신을 쓰는 중간에 내게 물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제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상대가 믿어야만 하는 건가요?" 나는 그때 "그렇게 인정받을 절차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묻고 싶었던 건 절차가 아니라, 또 거절당해도 살아갈 수 있느냐였을지 모른다. 나는 질문을 이해한 척했던 내 대답을 메모지에 적고 지웠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익명 발신자의 지난 메일을 다시 읽었다. '답장하는 사람.' 상대가 노린 것은 우리에게 사칭이라는 퍼즐을 주는 일이 아니라, 특정 기한까지 답장을 쓰게 하는 일이었을 수 있다. 그 답장이 어떤 문장인지보다 누구에게 전송됐는지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박혜림에게 새 연락을 보내려다가 멈췄다. 그녀가 이미 법률 상담을 받았고 선택을 했는데, 내가 새 가설 하나로 다시 흔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오선영에게 발신자의 '답장' 관련 문구들을 묶어 전달했다. 밤 열한 시 오선영이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 측 수신 기록 확보 중. 기한 관련 문서 출처도 따로 확인하겠어.'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 박혜림의 상담비 영수증을 떠올렸다. 기록 한 줄을 검증하는 데 드는 돈과 시간을 처음부터 범죄의 피해로 계산했어야 했다. 사건을 푸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비용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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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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