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오후 다섯 시 십 분, 원효로 창고의 기록보관 계약을 담당했던 회사 직원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름은 박혜림. 서른아홉. 서류를 실어 나르는 하청업체에서 십일 년을 일했고, 지난해 화진모빌리티와의 계약이 끝난 뒤에는 다른 창고로 옮겨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참고인인 내가 수사 진술에 끼어들면, 나중에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부터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오선영이 허락한 범위에서 자료 목록을 확인했다.
'C-12'는 문서보관실의 칸 번호가 아니었다. 보관함을 임시로 봉인할 때 쓰는 일회용 플라스틱 표식에 찍힌 코드였다. 노란색 봉인표는 장부를 임시 이동할 때 썼다. 색깔을 보고 내용물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서명해야 할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럼 C-12는 어느 상자에 붙어 있었습니까?"
오선영이 전화로 설명했다.
"지난해 8월 19일 화진모빌리티 정산자료 묶음 중 하나. 그날 보관함 열두 개가 옮겨졌고 C-12는 마지막 봉인표였대."
"그 표가 남아 있을까요?"
"원칙대로면 폐기됐어야 하는데, 인수인계 확인이 안 된 보관함은 반송됐을 수도 있대."
나는 책상에 기록을 펼쳤다. 8월 19일. 지급 승인일과 같았다. 내가 1년 전에 확인하지 못한 선지급 사유서도 그 묶음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생겼다.
"박혜림 씨가 그걸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보관 목록이 남아 있을지 찾아보겠대. 대신 본인 이름을 절대 밖에 알리지 말라고 했어."
"이유는요?"
"당시 서류 반출을 승인한 사람이 지금도 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해."
나는 최명환을 떠올렸다. 그러나 박혜림이 말한 사람이 그인지는 모르므로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 이십 분. 한유리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얼굴이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서진혁 씨, 오늘 밤 기사 나갈 겁니다."
"어떤 기사입니까?"
"배정우 사망 전에 경찰이 그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 조사사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결정적인 역할이라는 근거가 있습니까?"
"경찰 내부 메신저 캡처가 있어요."
그녀는 화면을 보여줬다. '배정우 유력, 서진혁 제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앞뒤 대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당 메시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문장만으로 제가 배정우를 범인으로 단정했다고 쓰면 사실과 다릅니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확인하러 왔죠."
"경찰이 배정우를 어떤 단계에서 확인하려 했는지는 경찰에 물으셔야 합니다. 저는 문서에 그의 이름이 적혔다는 사실을 알렸을 뿐입니다."
"그럼 왜 발신자를 모르는 문서를 믿고 신고했습니까?"
"믿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확인해야 해서입니다. 실제로 임소율 씨가 예정된 장소에 가기로 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니까요."
한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답변 그대로 기사에 넣겠습니다. 다만 독자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는 있어요."
"그럴 겁니다."
"서진혁 씨. 저는 당신을 무조건 의심하려는 게 아니에요. 배정우 씨 가족도 누가 왜 그를 범인처럼 보이게 했는지 알고 싶어 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배정우는 죽었다. 그가 실제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가족에게는 갑자기 보호자와 설명해야 할 의혹이 함께 생겼다.
한유리가 나간 뒤, 나에게 보낸 익명의 이메일이 또 도착했다.
'언론은 사실보다 순서를 좋아합니다. 먼저 나온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 증거보다 오래 남지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이메일의 원본을 보존하고 수사팀에 전달했다. 회신하면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제공하게 될 수 있었다.
곧이어 오선영의 연락이 왔다.
"박혜림 씨가 위험하다고 연락해 왔어."
"무슨 일입니까?"
"자기 회사에서 오늘 밤 긴급 재고조사에 참석하라고 했대. 새벽 네 시까지 문서창고로 오라는 지시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예고는 11월 5일 새벽 다섯 시 무렵. 문서창고 위치는 인천 외곽이었다.
"누가 지시했답니까?"
"업무 담당 부장 명의의 문자가 왔대."
"그 부장에게 직접 확인했습니까?"
"확인하는 중. 박혜림에게는 혼자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이미 임소율에게 시도했던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응급실이 아니라 직장 상사의 지시였다. 박혜림은 부양가족이 있고 일을 잃을 여유가 없었다. 명령이 가짜라고 해도 불이익은 진짜일 수 있다.
나는 오선영에게 말했다.
"문자가 가짜인지는 확인하면 됩니다. 하지만 실제 상사가 보낸 거라면 더 위험해요. 그 상사가 협박당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보고 있어."
오선영은 피곤할 때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나는 그녀가 밤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로는 판단 능력을 조금씩 깎는다. 범인이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다면, 우리의 분주함은 이미 비용이 아니라 범인의 자산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박혜림이 입사했던 기록보관 회사의 공개된 계약 공고를 확인했다. 회사는 반년 전 물류단지를 이전하면서 외부 감사에 대비한 문서관리 체계를 강화했다고 홍보했다. 그 공고에 적힌 새 보관 장소와 박혜림이 호출된 장소가 같았다.
이 사실은 그녀가 진짜 업무를 지시받았을 가능성을 높였다. 무작정 함정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는 공개된 공고의 날짜와 위치를 오선영에게 전달하고, 중요한 결정을 수사팀에 남겼다.
나는 박혜림이 처한 선택을 생각했다. 그 여자가 경찰의 말을 듣고 출근하지 않으면 임금이 깎이거나 다음 계약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위험을 모른 척하고 출근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위험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보호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나는 오선영에게 그 부분을 물었다. 그녀는 안전 조치와 별개로 박혜림의 회사 지시, 경찰 연락 시각, 결근 사유가 기록으로 남도록 안내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나중에 다른 이유를 들어 불이익을 주려 한다면 법적 다툼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우리의 수사 때문에 직장을 잃으면요?" 내가 물었다.
"그렇다고 위험한 장소에 보낼 수는 없잖아.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절차를 최대한 남겨야지."
나는 답하지 못했다. 수사관이 한 사람을 지키려 할수록 그 사람의 생계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약점을 아는 적이라면 칼을 들 필요조차 없다. 회사 업무지시 한 장으로 누군가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거나, 위험한 곳에 가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임소율이 했던 말을 이해했다. '취소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진작 취소했죠.' 그녀는 미신을 믿어서 움직인 게 아니었다. 다른 선택에 붙은 비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 비용까지 계산하지 않으면 다음 피해자를 또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밤 8시 40분, 정민규 순경이 나를 다시 찾았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직후였다.
"조사관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수사 내용이라면 경위님께 말씀하세요."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꾸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는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려다가 멈췄다. 나는 손을 저었다.
나는 그가 왜 자신이 가진 자료를 자꾸 내게 보여주려는지 이해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 주면 조금은 책임이 덜해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의 선의만 보고 수사자료를 받으면 또 다른 오류가 생긴다. 서로에게 친절한 것과 서로의 책임을 지켜주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진은 보여주지 마세요. 원본이든 복사본이든 지금 제게 전달할 이유가 없잖아요."
"맞습니다."
정민규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제가 어제 사진 공유할 때 '현장 확인 완료'라고 썼어요. 그런데 사실은 현장에 간 경찰한테 전화로 들은 걸 적은 거였습니다."
"그러면 표현이 정확하지 않았겠네요."
"그런데 그 말이 기사 제보에 들어갔습니다. 사진까지 제 손으로 찍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이해했다. 사소한 편의 표현 하나가 기록의 출처를 바꿔 버렸다. '확인했다'는 말은 누가,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
"경위서에 그 부분도 적었습니까?"
"네. 수정된 진술을 남겼습니다.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럼 받아야 할 책임은 받으셔야 합니다. 대신 본인이 하지 않은 일까지 인정하지 마세요."
그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웠습니다. 제가 실수한 게 사실이니까, 나머지도 다 제 잘못 같았거든요."
나는 그를 사무실 문 앞까지 배웅했다. 상대가 공격할 때 가장 쉬운 목표는 이미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책임을 조금만 더 얹으면,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지기 쉽다.
밤 10시 10분, 오선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사 지시는 진짜야. 기록보관 회사 부장이 박혜림에게 직접 보낸 게 맞아."
"그럼 부장을 조사해야겠군요."
"조사 중인데, 회사에서 외부 감사 때문에 긴급 재고조사를 하는 거라고 주장해. 서류도 있어."
"그 서류가 언제 작성됐습니까?"
"오늘 낮."
"감사는 언제 예정돼 있었습니까?"
"다음 주."
나는 잠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범행을 위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감사가 정말 예정돼 있었다면 상대는 존재하는 업무의 틈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런 작전은 확인하기 어렵다. 합법적인 일에 불법적인 목적을 덧씌울 수 있으니까.
"박혜림 씨는 어떻게 합니까?"
"안전을 우선할 거야. 조사 일정도 바꿨고."
그 말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피해자를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 필요는 없다. 대신 상대가 박혜림을 노리는 이유부터 확인하면 된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익명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PDF가 아니었다.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박혜림을 막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새벽조에 들어옵니다.'
나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발신자는 피해자가 누구인지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덧붙였다.
'박혜림 씨를 빼는 것만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실제 재고조사 근무자 전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답장은 곧바로 왔다.
'이미 확인하고 있어.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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