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뒷면에 C-12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선영은 그 사실을 내게 전하면서 먼저 경고했다. "그게 네게 불리한 증거라는 뜻은 아니야. 누군가 글씨를 썼다는 사실까지만 확인된 거야."
"제가 적은 글씨인지도 확인하시겠죠."
"응. 배정우가 적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정확했다. 나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안심했다. 같은 편이라고 내 말을 다 믿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상대가 만든 이야기에 함께 넘어갈 것이다.
11월 4일 오전 10시. 배정우의 사망 원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 집에서 발견된 물품을 분석 중이었다. 내가 가진 건 명함의 존재와 문서 속 노란 조각의 사진뿐. 둘 사이의 연결은 가설이었다.
나는 지난해 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의 목록을 찾아봤다. 배정우에게 직접 명함을 준 기록은 없었다. 대신 화진모빌리티 인사팀 직원에게 두 장, 정산팀 직원에게 세 장을 건넸다는 메모가 있었다. 당시 만난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명함을 언제 받았는지만으로 범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뒷면에 적힌 코드가 무엇인지 알면 문서가 만들어진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오선영이 나를 경찰서 외부 면담실로 불렀다. 처음부터 수사팀의 일원이 아닌 참고인으로만 참석하기로 했다. 작은 테이블 위에 형광색 포스트잇이 붙은 복사 자료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김동식이 진술을 바꿨어."
"경비원 말입니까?"
"처음에는 그냥 15만 원만 받았다고 했지. 그런데 돈을 준 사람이 '경찰이 물어보면 출입기록은 평소대로 썼다고 하라'고 지시한 것도 기억해 냈대."
"왜 이제 말했을까요?"
"자기가 뇌물 받은 사람으로 처벌될까 봐 겁났대."
나는 자료를 읽었다. 진술을 바꾼 이유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해야 했다. 김동식은 진실을 일부 감췄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그 사람이 돈을 받은 건 기록이 있습니까?"
"자기가 갖고 있던 지폐를 전부 냈어. 봉투도 보관했더라."
"왜 하필 15만 원이었대요?"
"집에 월세가 밀렸다고 해. 지금도 경비 용역업체 임금을 한 달 넘게 못 받았고."
그는 작은 돈 때문에 거대한 범죄에 가담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가 무엇에 가담했는지도 몰랐다. 한 사람의 생활이 궁핍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 궁핍함을 이용한 사람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비원이 차량 출입기록을 안 썼다면 CCTV에는 남았겠죠?"
"그게 문제야. 차량 출입구를 찍는 카메라는 작동했는데, 원본 저장 장치의 시간 설정에 오차가 있었어."
"얼마나요?"
"정확히 측정 중이야."
"그러면 영상과 실제 시간을 직접 대조해야겠네요."
"응. 현장팀이 별도로 보정하고 있어."
나는 그때 한 가지를 물었다.
"영상 원본은 확보했습니까?"
"확보했는데, 초기에 민규가 현장 상황을 공유하려고 휴대전화로 모니터 일부를 찍어서 팀 메신저에 올렸어. 그 사진이 다른 부서까지 돌았어."
"원본과는 별개죠?"
"당연하지. 원본은 별도로 보존 중이야."
그런데도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문제가 뭔가요?"
"사진에 현장 출입구의 일부가 보였어. 그리고 촬영 시각이 화면 위쪽에 그대로 찍혔지. 누군가 그걸 외부에 흘렸어."
"누가요?"
"확인 중. 그런데 그 사진을 받은 사람이 원본처럼 기사 제보를 하고 있어."
나는 바로 이해했다. 기록의 잘못된 시간과 화면 일부를 조합하면, 현장에서 없었던 차량을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그 반대로 설명할 여지가 생긴다. 정민규는 현장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려고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진이 떠돌면 누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허위 주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민규 순경은 알고 있습니까?"
"응. 본인 경위서 작성 중이야."
"그 사람을 책임자로 몰면 안 됩니다."
오선영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 같아?"
"아닙니다. 저 자신한테 하는 말입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 사진을 흘렸다는 사실은 분명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범인을 추적하는 일보다 내부의 작은 실수에 분노하는 게 더 쉬웠다. 상대는 그 방향으로 시선을 끌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오선영이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김동식의 추가 진술이었다. 돈을 준 남자는 그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
'혹시 창고 지하 문서보관실에 노란 봉인표가 남아 있나요?'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노란 봉인표?"
"경비원은 무슨 말인지 몰랐대. 그런 건 시설관리 용역이 아니라 보관회사 직원이 관리했다고 했어."
"그 보관회사 이름은요?"
"우리가 확인 중이야."
그때 면담실 문이 열렸다.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정민규 순경이었다. 그는 내가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멈췄다.
"들어와." 오선영이 말했다.
정민규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밤새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부어 있었다.
"사진 공유한 건 제 실수입니다."
"알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팀 내부에 빨리 보여 주면 도움 될 줄 알았습니다."
"누가 다른 곳으로 보낸지는 아직 모르죠?"
"모릅니다. 그래도 최초에 올린 건 저니까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민규 순경. 혹시 경비원이 돈을 받은 사진을 처음 보셨을 때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경비원이 공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요?"
"모르겠습니다. 돈은 받았지만…… 그 사람이 뭘 알고 있었는지는 다르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판단을 잊지 마세요. 실수했다는 사실이 다른 판단까지 전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니까."
오선영이 서류를 챙겼다.
"진혁아. 오늘은 여기까지. 원본 대조 결과가 나오면 연락할게."
나는 일어섰다. 복도 끝에서 정민규가 따라 나왔다.
"조사관님."
"네."
"회사 당직자한테 연락한 것도, 사진 올린 것도 전부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둘 다 당신이 한 행동은 맞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모두 당신 책임인지는 조사해야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위님이 묻더라고요. 왜 사진을 올렸냐고. 제가 '빠르게 공유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더니, 빠른 것과 정확한 것은 다르다고 하셨어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사관님. 이상한 게 있어요."
"뭡니까?"
"제가 사진을 올린 시각이 9시 3분이었거든요. 근데 사진이 외부로 전달됐다는 제보는 9시 1분에 들어왔대요."
나는 잠시 멈췄다.
"정확한 시각이 맞습니까?"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 그냥 이상해서요."
"그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그를 다시 오선영에게 데려갔다. 정민규는 기록을 확인했고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제보 접수 시각은 9시 11분이었다. '1분'과 '11분'을 혼동한 것이었다.
그는 연달아 사과했다.
나는 내가 그의 실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더 엄격하게 대하고 싶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 틀린 사람의 다음 말을 쉽게 무시하는 것도 내 편견이었다. 그는 원본과 사본을 구분하지 못했던 일을 인정했고, 이제는 두 자료의 차이를 찾아냈다. 중요한 건 그의 체면이 아니라 그 차이가 실제로 검증되는지였다.
"보셨죠?" 내가 말했다. "지금처럼 기록을 바로 확인하면 잘못된 추측을 멈출 수 있습니다."
오선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현실에서 많은 수사는 거창한 추리보다 이런 확인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한유리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진혁 씨, 혹시 경비원 김동식이 돈을 받았다는 거 아세요?"
나는 대답을 아꼈다.
"확인되지 않은 수사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럼 하나만 여쭤볼게요. 누군가 돈을 주고 출입기록을 없애 달라고 했다면, 그게 범행을 숨기려는 목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럴 수 있지만 다른 이유도 가능하겠죠."
"예를 들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누군가가 출입기록을 없애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남기려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상한 답이네요. 그런데 제가 받은 제보도 비슷한 말을 하네요."
"무슨 제보입니까?"
"그 경비원에게 돈 준 사람 말고, 돈 준 장면을 찍은 사람이 따로 있었대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보도되지 않은 사진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 받은 이메일의 지폐 사진에는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봉투 뒤에 파란 잉크가 묻어 있었다. 누군가 돈을 건네는 순간 찍은 사진이 아니라, 건넨 뒤 의도적으로 연출한 사진일 수도 있었다.
나는 오선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봉투 사진은 뇌물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연출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자와 전달자를 구분해서 확인해 주세요.'
그 사진에서 경비원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지폐를 실제로 수령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김동식은 돈을 받았다고 인정했고 실제 지폐도 제출했다. 내 생각은 그 진술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돈이 오갔다는 사건과 돈을 주는 장면을 누가 기록했는지는 두 가지 다른 질문이었다.
경비원에게 돈을 건넨 사람은 왜 스스로 사진을 찍었을까. 상대에게 협박할 자료를 남기려는 의도일 수 있다. 반대로 현장에 있던 제삼자가 범죄를 고발하려고 찍었을 수도 있다. 사진만으로 의도를 정하면, 상대가 사진 한 장으로 우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
나는 내게 온 이메일이 몇 개인지 세었다. 첫 사건기록, 경찰 연락이 전해졌다는 통보, 수정 사건기록, 경비원의 봉투 사진. 모든 정보는 내가 가장 불안해질 시점에 도착했다. 꼭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때에 주는 사람은 협력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의 목적이 수사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수사관의 판단을 조종하는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전자우편 제목을 지우지 않고 분류했다. 사건기록, 경고, 사후 통보, 증거 제시. 유독 한 가지가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신원을 설명하는 내용을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 결핍이 어떤 단서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답장은 짧았다.
'동의. 그리고 보관회사 찾았어. 내일 만나자.'
나는 창밖을 봤다. 어둠이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 사건의 예고 시각은 내일 새벽 다섯 시 무렵. 수사팀이 움직일 시간은 하루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쫓는 진실과, 발신자가 경찰에게 발견시키고 싶어 하는 진실이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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