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내 경험은 조금 달랐다. 돈은 숫자로 남지만, 숫자가 누구의 손실인지 설명하는 문서는 얼마든지 바뀐다.
12월 19일 토요일. 나는 지난해 화진모빌리티 보험금 부풀리기 사건의 계산표를 다시 펼쳤다. 최초 조사에서는 3억 8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후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그 금액이 실제로 한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여러 계약과 조정 예정액이 합쳐진 표의 총합일 수 있었다.
오선영은 이번에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진혁아. 네가 그때 '손실 가능액'이라고 적은 금액이 회사 보고서에서는 왜 '확정 회수액'이 됐을까?"
"제 보고서를 변형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공식 재산정을 했을 수도 있죠."
"그래서 원본과 결재 이력을 대조 중이야."
나는 지금까지의 실수를 떠올렸다. 3억 8천만 원을 범인의 동기로 삼으면 이야기가 단순해진다. 누가 돈을 가져갔고, 누군가 그 사실을 알아내자 죽였다는 이야기. 그러나 회수 예정액을 실제 횡령액으로 오인하면 무고한 사람이 범인 역할을 맡게 된다.
나는 보험사 의뢰 당시의 계산표를 열어 각 금액의 출처를 다시 따라갔다. 실제 지급된 금액, 회수 여부를 검토 중인 금액, 다른 법인 사이에서 조정될 금액이 한 줄의 합계로 묶여 있었다. 분모를 달리하는 숫자들을 더한 것은 회계상 관리 목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합계를 누군가에게 직접 갚으라고 통지하면 법적 의미가 달라진다.
내가 잘못 계산했을 가능성도 남겨뒀다. 원본 정산표와 후속 조정 결과가 없으면 정확한 금액을 다시 산정할 수 없다. 나는 '3억 8천만 원은 거짓'이라고 쓰지 않았다. 대신 '3억 8천만 원이 모두 동일한 성격의 확정 손실액이라는 근거를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적었다. 더 긴 문장이었지만 그만큼 적은 사람을 해칠 수 있었다.
점심 무렵 박혜림이 전화했다. 합의안에 아직 서명하지 않았고, 상담을 마친 뒤 회사에 몇 가지 문구 정정을 요청했다고 했다.
"상대가 금액을 더 줄 수 있다고 했어요. 대신 제가 업무를 전달받았는지에 대해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쓰래요."
"그 조건이 어느 시점의 사실을 뜻하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문서가 무엇인지도요."
"그래서 문서 목록을 달라고 했어요. 자기들이 보내놓고 어떤 문서인지 말도 안 해주니까요."
나는 그녀의 선택을 칭찬하지 않았다. 합의하지 않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알 권리를 행사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후 두 시, 한유리는 과거 회사 정산 업무를 맡았던 직원의 말을 전했다. 3억 8천만 원으로 알려진 금액은 실제 지급된 보험금, 환입 요청액, 회계상 미결제 항목을 합친 '관리 규모'였다는 것이다. 익명으로 제공된 설명이었고, 그녀는 독립된 자료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 직원이 표를 직접 만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한 번 검토했다고 해요. 그런데 원본은 회사에 있대요."
"그럼 일단 진술로만 적어두세요."
나는 오래된 업무보고서의 제목을 다시 확인했다. '부정청구 관련 점검 예정 규모'. 내가 작성한 표현이었다. 회사 회수팀에서 사용한 제목은 달랐다. '미회수 채권 현황'. 그중 무엇이 실제 돈을 뜻하는지는 항목별 전표를 봐야 했다.
저녁에 오선영은 일부 정산표에서 새로운 차이를 발견했다고 했다. 회수 대상자를 적는 칸에 배정우 이름이 있었는데, 다른 판본에는 그 칸이 '외부 검토자'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판본이 먼저인지 아직 확인 중이었다.
"배정우가 돈을 갚아야 했던 겁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 없어. 어떤 사람을 회수 책임자로 지정한 문서와 그 사람이 실제 채무자라는 건 다른 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정우는 죽었다. 그의 이름이 문서에 남은 상태에서 숫자와 책임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을 지우고 죽은 사람에게 청구서를 보낼 수도 있었다.
그때 배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동생 명의의 정산 확인서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문서에는 '관련 금액 확인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동생의 채무라는 뜻인지 불안해했다.
"문서를 바로 인정하지 마세요. 사본을 보존하고 법률 상담을 받으십시오. 그 문구만으로 돈을 갚아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이런 종이가 나오면 왜 자꾸 겁이 나죠?"
"누군가 설명하지 않은 숫자에 동생 이름을 붙여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확인되지 않은 책임을 유족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날 배은정은 돈을 갚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예금을 먼저 해지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족에게 온 확인서에는 법적인 청구인지 단순한 자료 확인인지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경찰에 알려달라고 권하고, 문서가 실제 채무를 입증하는지 법률 전문가에게 확인할 때까지 성급히 돈을 내지 말라고 말했다.
누군가 모호한 문장 하나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서류가 법률적으로 틀렸더라도 당사자가 두려워 돈을 보내면 현실의 결과는 바뀐다. 그러나 나는 그 문서를 보낸 회사를 곧장 범죄 조직이라고 쓰지 않았다. 회사 업무상 잘못된 안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악인이 그 실수를 이용하는 것과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구분해야 했다.
밤에 오선영이 연락했다. 온새문서지원이 2025년 정산표를 재배포할 때 사용한 용어표가 일부 확보됐다는 것이다. 그 표에는 '확인', '검토', '회수 예정', '수령'이 서로 다른 뜻으로 정의돼 있었다. 그런데 나중 판본에서는 그중 두 용어가 하나의 '완료'로 묶여 있었다고 했다.
"누가 합쳤습니까?"
"자료가 어떤 경로로 바뀌었는지 확인 중이야. 지금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까지만."
나는 세 가지 문서의 이름을 종이에 적었다. 수신확인 용지, 이의신청 안내문, 정산 차액표. 서로 다른 목적의 문서인데도 끝에 같은 도장이 붙어 있었다. '완료'.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일부러 의미가 다른 업무를 같은 말로 묶어 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담당자는 원본을 읽지 않고도 모든 일이 끝났다고 믿는다. 악인은 사람 한 명을 매수하는 대신, 한 번 만들어진 오해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의도적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시스템을 단순화하려다 발생한 오류일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 범죄는 그 뒤에 오류를 발견하고도 방치하거나 이용하는 순간 시작될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때 익명 발신자가 새 문서를 보냈다. 제목은 '책임 귀속표'. 거기에는 서진혁, 배정우, 박혜림 세 사람의 이름이 순서대로 있었다. 옆에는 각각 다른 금액이 적혀 있었다.
나는 금액을 합산하지 않았다. 일부러 합계가 맞도록 만든 숫자일 수 있었고, 세 사람이 같은 채무 관계에 있다는 증거도 없었다.
한 줄만 검증했다. 서진혁 명의의 칸에 적힌 날짜는 내가 보험사에 자료를 제출한 날짜와 달랐다.
그 차이를 표시한 뒤 파일을 보존했다. 누군가 나를 숫자 하나로 위협하려 했지만, 내가 그 숫자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위협은 문서에 적힌 주장일 뿐이었다.
새벽 한 시가 지났을 때 오선영의 메시지가 왔다.
'회수 대상자라는 표기가 생기기 전, 원래 칸의 제목 확인. 보상 책임자가 아니라 통지 담당자였어.'
나는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사람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문서가, 원래는 누구에게 연락할지를 정하는 목록에서 출발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배정우가 죽기 전에 사과하려던 사람은 그 목록에 적힌 누군가였을지 모른다.
제5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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