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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56화
PAYLUA ORIGINAL · 제56화

56화. 취소된 약속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77자

오프라인 책장
남자는 고태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화진모빌리티 총무지원팀 대리였고, 배정우가 사망하기 전 회사로 걸어온 전화 한 통을 처리했다고 했다. 12월 17일 목요일 오전. 나는 사무실에서 남자의 설명을 들었다. 그는 정식 신고도 고려 중이라고 했지만 아직 경찰에는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범죄와 관련될 수 있는 내용을 직접 캐묻기보다 먼저 오선영의 연락처와 신고 절차를 안내했다. 그가 자발적으로 설명하겠다면 내게도 자신이 겪은 일의 시간 순서를 말할 수는 있었다. "배정우 씨가 최명환 실장님하고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고태원이 말했다. "언제요?" "11월 3일 오후 여섯 시. 회의실 예약이 있었습니다." "취소했다고 하셨죠. 누가 지시했습니까?" 그는 머뭇거렸다. "저한테 직접 지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실장님 일정이 겹치는 걸 보고 제가 미리 정리한 겁니다." 나는 펜을 멈췄다. "배정우 씨에게는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실장님이 참석하기 어렵다고요." "실장님의 의사를 직접 확인했습니까?" "아니요. 그래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어요." 고태원은 자기가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한 실수를 지금 와서 고백하는 사람이 보이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회의실 일정표를 정리하며 상사의 다른 약속을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결정 하나 때문에 배정우가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배정우의 죽음과 직접 연결하지 않았다. 배정우가 실제로 그 회의실에 오려 했는지, 취소 통보를 받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예약과 취소 기록은 남아 있습니까?" "전자일정표에 있습니다. 회사에 보존 요청을 할 수는 있어요." "직접 임의로 가져오거나 고치지 마세요. 경찰에 그 사실을 말하고 적법한 절차로 확인하게 하세요." 고태원은 잠시 실망한 것 같았다. 나에게 모든 답을 알려주면 나는 즉시 범인을 지목할 거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었다. 오선영은 그날 오후 고태원에게 연락했다. 이후 선배에게서 확인된 사실만 들었다. 예약 일정은 존재했다. 취소를 기록한 계정 역시 고태원의 것이었다. 하지만 최명환과 배정우가 실제로 만날 의사가 있었는지는 추가로 확인해야 했다. "고태원이 실수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 죽는 건 아니니까." 선배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배정우의 약속 취소를 알고 있었다면 동선을 바꾸게 할 기회가 있었겠죠." "그건 확인해볼 수 있어. 실제로 누가 그 변경을 알았는지부터." 나는 그녀가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가설을 떠올렸다. 최명환이 배정우를 만나려고 했는데 고태원이 취소했다면, 배정우는 실장에게 직접 연락했을 것이다. 반대로 고태원이 연락을 대신 막았다면 회의가 취소됐다는 사실을 최명환은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지금 단계에서는 가능성에 불과했다. 오후 늦게 나는 고태원이 취소했다고 한 '회의실 예약'과 회사의 '방문자 등록'이 서로 다른 절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무실 예약이 취소돼도 방문자 등록은 남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아무도 오지 않은 회의실을 누군가 예약해둘 수도 있다. 고태원의 설명에는 방문자 등록 기록이 언급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시 연락해 묻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수사팀이 정식으로 확인할 때 먼저 알려진 질문 때문에 기억이 바뀔 수 있었다. 대신 오선영에게 두 기록을 분리해 검토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럴 생각이라며 통화를 짧게 끝냈다. 나는 상대가 의도적으로 회의를 취소하게 만들었는지보다, 실제로 배정우가 회사를 향해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편이 중요하다고 메모했다. 저녁에 한유리가 연락했다. 고태원 이야기가 회사 안에서 소문이 됐다고 했다. 누군가 직원들 사이에 '죽은 배정우의 마지막 약속'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제가 취재한 적 없는데도 제 이름이 달려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캡처 원본을 보존하세요. 게시자는 확인됐습니까?" "아직요. 누군가 제가 고태원 대리를 만난 것처럼 적었어요." 나는 한유리가 고태원을 만났는지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이름이 잘못된 출처로 쓰였다는 사실만 기록해둘 수 있었다. 누가 허위 글을 올렸는지 단정하는 건 별개였다. 오후 늦게 배은정이 나를 찾아왔다. 동생의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먼저 믿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모른다고 했다. "고태원이라는 사람이 연락했다던데요?" "사망 전에 예정됐던 약속을 취소한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그 사람이 동생분을 만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왜 자꾸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동생 마지막 날에 등장하는 걸까요?" "사람이 죽으면 안 보이던 일정과 종이가 한꺼번에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전부 마지막 날의 진실은 아니죠." 나는 그 말을 하고 스스로 불편해졌다. 가끔 나는 설명을 하면서 상대의 상실을 분석 대상으로 만든다. 배은정은 수첩을 쥔 채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논리보다 동생을 제대로 기억할 시간이었다. 그날 밤 오선영이 자료 하나를 더 알려주었다. 고태원이 취소한 회의실 예약은 오후 여섯 시가 아니라 '오후 여섯 시부터 여섯 시 삼십 분'까지였다. 그런데 배정우 수첩에는 '여섯 시 서류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용은 비슷해 보였지만 회의가 그 수첩 메모와 같은 행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두 날짜를 비교했다. 2025년 8월 22일의 확인 버튼과 2026년 11월 3일의 회의 취소. 둘 사이에는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연결을 만들려면 그 사이에 실제 연락이나 문서가 있어야 했다. 고태원은 대화 도중 자신의 직급을 여러 번 말했다. 총무지원팀 대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회의실 예약을 취소하는 권한은 그에게 있었다. 작은 권한은 책임도 작다고 느끼기 쉽다. 회사에서는 그의 버튼 하나로 몇 사람의 일정이 바뀌었다. 나는 어느 순간 그에게 동정과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자기가 확인하지 않은 상사의 의사를 대신 전한 사람. 하지만 고태원이 실제로 무엇을 봤는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범죄자의 공범처럼 취급해서는 안 됐다. 그는 지금 자기 실수를 덮지 않고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그 설명을 악의의 증거로 바꾸면, 다음 사람은 아마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밤 열 시, 고태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목소리가 한층 작아져 있었다. "서 조사관님, 회사에서 저한테 누가 배정우 얘기를 물었냐고 해요."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경찰에 연락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문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물어요." 나는 어떤 문서인지 되묻지 않았다. 대신 회사의 보존 요청과 경찰의 확인을 구분하라고 설명했다. 고태원이 가진 정보를 자기 판단으로 흩뿌리면 그 내용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나중에 알기 어려워진다. 고태원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가 회의를 취소하지 않았으면 배정우 씨가 살았을까요?" 나는 그 질문에 확답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한 선택을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 전체와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 확인된 사실만으로 누구에게 사망 책임을 돌릴 수는 없었다. 통화가 끝난 뒤 나는 그의 예약 변경 기록 옆에 새 질문을 적었다. '최명환은 배정우와의 약속이 취소된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조금 뒤 회사 관계자에게서 공식 회신이 왔다. 최명환의 일정표에는 그날 오후 여섯 시 다른 회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읽었다. 고태원은 일정이 겹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 일정표에는 충돌이 없었다. 누군가 고태원이 보던 화면에 다른 일정이 표시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는 고태원의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어려운 차이였다. 일정 하나를 잘못 지운 사람이 있다면, 그 실수를 누가 이용했는지 확인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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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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