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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55화
PAYLUA ORIGINAL · 제55화

55화. 죽은 남자의 하루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20자

오프라인 책장
문서는 사람의 행동을 기록하지만, 종종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보다 먼저 기록의 완료 여부를 알려준다. 12월 16일 아침, 배은정이 동생의 마지막 날을 정리한 수첩을 가져왔다. 그녀는 경찰에 이미 제출한 자료의 사본만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허락받은 범위에서 읽었고, 원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정우가 죽기 전날 누구를 만났는지 아직 몰라요." 배은정이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정우가 뭘 숨겼냐고 묻더라고요. 죽은 사람은 대답도 못 하는데." 수첩의 날짜는 11월 3일이었다. 그 전날 내게 사건 예고 이메일이 도착했다. 배정우가 인천 집에서 발견된 저녁보다 앞선 기록이었다. '오전 병원', '오후 한 시 통화', '여섯 시 서류 확인'. 그 아래 조그만 글씨로 '먼저 믿은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누가 썼습니까?" "동생 글씨 같아요. 하지만 정확하게는 몰라요. 다른 메모도 섞여 있어요." 나는 필체를 근거로 사실을 단정하지 않았다. 수첩에 적힌 시간이 실제 행동과 같다는 보장도 없었다. 다만 배정우가 남긴 봉투에는 '처음 받는다면 열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믿은 사람'이라는 문장은 그 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오선영에게 연락하자 그녀는 최근 통신기록과 주변 자료를 법적 절차에 따라 확인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내가 가진 수첩 사본은 정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했다. "그리고 진혁아. 네가 배정우 마지막 날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해해. 그런데 그가 죽은 날과 2025년 문서가 이어진다는 건 아직 가설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은 시간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시간표를 확인하는 건 좋아. 다만 죽은 사람의 선택을 뒤늦게 네 이야기 안에 넣지 마."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배정우는 내게 의심스러운 과거 검토자이자 살인사건의 피해자였다. 그에게도 마지막 날의 평범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병원 예약을 지키고, 통화 약속을 기다리고, 누군가에게 빚을 갚으려 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배정우의 수첩에 적힌 병원 일정도 따로 정리했다. 외래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건강 상태가 어떠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알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죽은 피해자의 마지막 날에 이상한 일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정상적인 일정을 대부분 지켰다는 사실 역시 중요했다. 범인은 그런 평범한 틈에 숨어 있었을 수 있다. 배은정에게는 수첩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가 한 번 기억을 바꿨다고 해서 진술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오늘 처음 떠올린 말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처럼 쓰지 않도록 메모의 날짜를 구분했다. 슬픔 속에서 기억을 꺼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심문이 아니라, 기억이 생긴 시점을 정직하게 남길 기회일지도 몰랐다. 오후에 한유리가 찾아왔다. 배정우가 퇴사 직전 회사에서 누군가와 갈등을 겪었다는 제보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제보를 보도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아직 당사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배정우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죠."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한 사람이 살해될 이유가 생기는 건 아니죠." 우리는 배정우를 미화하지 않았다. 그가 지난해 부정청구 문서를 작성했다면 그 책임 역시 따져야 했다. 다만 그 판단은 그의 죽음과 별도로 입증돼야 한다. 해가 질 무렵 오선영이 전화했다. 배정우의 최종 행적에 관해 새로운 참고인 진술이 나왔다고 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봤다고 주장한 사람은 건물 주민이 아니라 방문 수리기사였다. 기사는 한 남자가 서류봉투를 들고 복도를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배정우였습니까?" "얼굴을 분명히 보지 못했대. 키와 외투만 기억하고." "그럼 배정우를 봤다는 진술도 아니군요." "맞아. 처음엔 '아마 그 집 남자였을 것'이라고 했어." 기사는 그날 건물에 다른 일로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진술이 알려진 뒤 인터넷에 '배정우 마지막 목격자 등장'이라는 표현이 떠돌았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기사를 흘렸습니까?" "아직 몰라. 내 쪽에서 확인 중이야. 네가 받은 제보도 있으면 원문 그대로 보내." 나는 한유리에게도 이 내용을 기사에 쓰지 말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대신 마지막 목격이라는 표현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한유리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저녁 뉴스에는 배정우의 이름이 다시 나왔다. '경찰에 살인범으로 예고됐던 남성의 죽음'이라는 표현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 제목은 누군가 배정우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는 사실과 경찰이 실제로 그를 살인범이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한 문장 안에 섞어놓았다. 배은정이 그 제목을 본다면 또 한 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익명으로 제보한 문서의 내용을 처음 경찰에 전달할 때 내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확인했다. 당시 원문을 함께 제출했다는 기록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화에서 '유력 용의자'라고 말한 부분도 있었다. 상대가 일부러 만든 표현을 나 역시 무심코 옮긴 것이다. 그 선택이 수사 방향을 결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한 말의 영향을 확인할 책임은 있었다. 밤에 배은정이 전화했다. 수첩의 '먼저 믿은 사람'이라는 글씨를 다시 생각해 봤다고 했다. "동생이 저한테 한 말이 있어요. 자기가 확인하지 않았는데 확인했다고 적힌 종이가 한 장 있다고. 그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사과하려고 했대요." "누군지 말했습니까?" "아뇨. 그래서 제가 화가 났어요. 왜 이제 와서 옛 회사 일을 뒤집으려고 하냐고요. 그냥 조용히 살라고." 그녀는 잠시 흐느꼈다. 나는 위로부터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제가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어요. 네 잘못이 아니면 네가 왜 사과하느냐고. 그런데 정우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도장을 찍지 않았어도 누군가 그 도장을 믿고 망가졌으면 자기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나는 메모를 멈췄다. 그 말이 배정우를 무죄로 만들지는 않았다. 기억이 완전한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관여한 목록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말을 경찰에도 하셨습니까?" "이제 하려고요. 그때는 별말 아닌 줄 알았어요." 나는 통화를 마치고 오선영에게 그녀의 의사를 전달했다. 기억을 강요하는 대신 직접 진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았다. 늦은 밤, 수첩의 두 날짜를 다시 보던 나는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여섯 시 서류 확인' 옆에 적힌 작은 번호는 박혜림 관련 이의신청 안내문의 출력 작업번호와 비슷했다. 똑같지는 않았다. 끝자리 두 개가 달랐다. 숫자 하나를 같다고 말하는 실수는 지금까지 여러 번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적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를 확인할 경로만 찾았다. 오선영에게 보내기 전 수첩을 다시 훑었다. 마지막 장에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받지 못한 사람에게 먼저 가자. 받은 사람에게는 그다음.' 나는 그 문장이 배정우의 죽음을 설명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를 직접 만나려 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때 내 휴대전화에 새로운 통화 요청이 떴다. 발신자는 화진모빌리티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서 조사관님, 배정우 씨가 마지막으로 만나려고 했던 사람을 찾으시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이름과 소속부터 물었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제가 그 약속을 취소한 사람입니다." 나는 통화 녹음을 시작했는지 확인하고, 메모지에 첫 질문을 적었다. '언제, 어떤 권한으로, 누구의 약속을 취소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누구도 마지막 목격자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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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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