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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54화
PAYLUA ORIGINAL · 제54화

54화. 제목만 남긴 파일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85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15일 아침, 회사가 보낸 의견서 요청에는 문서 제목이 없었다. 첨부파일의 이름은 '관계자 사실확인 협조안'이었다. 파일을 열기 전 나는 메일 원본을 별도 보존했다. 첨부 서류에는 내가 확인할 수 없는 문장이 포함돼 있었다. '서진혁은 2025년 8월 22일 배포 대상자 전체에 대한 확인 절차가 완료된 사실을 인지하였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내가 확인한 것은 나중에 완료 표시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2025년 그날 내가 그것을 알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나는 회신에 단 세 줄만 썼다. 당시 완료 사실을 전달받았다는 자료가 내게 없고, 직접 수령한 기록도 없으며, 제시된 문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상대가 회신을 공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단정과 감정을 빼고 썼다. 오선영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선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왜 지금 그런 문서를 보내지?" "누군가 과거의 빈칸을 제 서명으로 채우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청한 회사 직원도 그 의도를 알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 직원 이름과 발송 시각부터 확보해. 원본은 그대로 두고." 나는 지시대로 했다. 전송 기록과 문서 생성 정보가 무엇을 보여주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변경하지 않은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오후에 김주하의 근무 일지가 발견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가 한유리를 통해 보여준 사본에는 날짜와 업무량만 적혀 있었다. '반송 봉투 열둘, 재확인 여덟, 미교부 넷.' 숫자 옆에는 작은 별표가 있었다. "그 별표가 뭔지 기억한대요?" 내가 물었다. "처음엔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보니까 장비 고장이라고 적힌 날에만 별표가 있대요."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별표가 반드시 장비 고장 표시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임의로 과거를 꾸며내는 것보다 그날 적은 메모가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었다. 한유리는 다른 페이지도 보여주었다. 8월 22일 옆에는 '이의신청 안내 출력 오류, 재시도 보류'라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정확히 누가 작성했는지는 종이의 필기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김주하는 자기 글씨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건 경찰에 전달해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동의받았어요. 원본 공책도 정식 절차로 제출할 거래요." 나는 안심했다. 그 기록이 진짜라면 박혜림에게 전달됐다는 안내문이 실제로는 그날 출력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인쇄 실패한 한 번의 작업이 유일한 출력 시도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점심이 지나 나는 회사 담당자가 보낸 요청서의 첨부 양식을 인쇄해 서로 다른 색의 펜으로 표시했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는 검은색, 확인을 요구받았지만 근거가 없는 문장에는 붉은색, 내 권한 밖의 판단에는 파란색을 사용했다. 붉은색은 세 군데, 파란색은 두 군데였다. 결론은 단순했다. 이 문서에 내 서명만 들어가면 내가 직접 보지 못한 과거까지 승인한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었다. 회사에 보낸 답장에는 감정적인 표현을 넣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 대신 '수신한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썼다. 누구든 내 반응을 인용할 수 있게 된 이상 말의 세기가 아니라 범위를 정확하게 해야 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나는 내가 지금도 문서 하나를 거절하는 데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피로를 느꼈다. 박혜림이 몇 달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을 것을 생각하니 더 그랬다. 저녁 무렵 오선영이 나를 만났다. 선배는 확보한 자료 가운데 공개 가능한 사실을 설명했다. 당시 파일 관리 시스템은 제목을 수정할 수 있었지만, 전송 작업번호는 문서 내용과 별개로 저장됐다고 한다. "열람 대상자 이의신청 안내문이란 파일명은 남아 있어. 그런데 그 제목으로 어떤 파일을 불렀는지는 아직 비교 중이야." "제목만 보고 내용이 있었다고 판단하면 안 되겠군요." "그렇지. 게다가 그날 같은 제목으로 두 건이 등록돼 있어." 나는 시선을 들었다. 하나는 실제 안내문이고, 다른 하나는 안내문처럼 보이게 만든 표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추측 이상으로 말할 수 없었다. 선배는 종이에 두 작업번호를 적었다. 앞쪽 작업은 오전 아홉 시 이전, 뒤쪽 작업은 아홉 시 이후였다. 둘 다 같은 제목의 약칭을 사용했다. 내게 중요한 건 간격이었다. 열한 번째 행이 생성된 시각은 아홉 시 십일 분이었다. 완료는 십육 분. 뒤쪽 작업이 어느 단계에 있었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 번호를 제가 직접 분석해도 됩니까?" "안 돼. 원본은 수사기록이야. 네게 지금 보여주는 건 확인 가능한 범위를 설명하는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이 내 이름과 관련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자료를 마음대로 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기록과 공개된 절차를 검토하고, 의문을 정확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회사에서 재회신이 왔다. 담당자는 처음 문구가 사실확인 목적의 초안이었다며 부담을 드려 죄송하다고 썼다. 나는 그 사과가 사실이라고 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과를 거짓으로 몰지도 않았다. 오히려 첨부파일의 속성에서 오래된 양식 이름을 발견했다. '일괄 확인 서식_기본'. 나는 그 명칭 자체가 어떤 행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지금도 2025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의 확인을 받아두려 한다는 건 주의할 만했다. 아침에 김주하가 보여준 두 상자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미교부와 재확인. 출력이 실패한 서류는 어느 상자에도 들어가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 담당자가 업무 대장에는 '재확인 대상'으로 넘겼다면, 다음 사람은 실제 종이가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선배는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그걸 이미 업무 흐름과 대조 중이야. 그리고 이름표가 바뀌었다는 김주하 기억도 확인하려고. 사진이나 다른 직원의 진술이 없으면 그 자체로 사실로 쓰진 않을 거야." 나는 통화를 마치고 한유리에게 돌아봤다. 그녀는 김주하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고 싶어 했지만, 결국 더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는 늦게 쓰는 문장이 더 정확할 때가 있었다. 김주하의 공책에 나온 '재시도 보류'라는 표현도 여러 뜻이 있었다. 기계가 고장 나서 인쇄를 멈춘 것인지, 담당자가 출력하기 전에 문서를 다시 확인하기로 한 것인지, 아예 수신처를 찾지 못해 보낸 적이 없는 것인지. 나는 세 뜻을 따로 적었다. 누군가 한 가지 뜻을 먼저 말하면 모두가 그 설명에 맞춰 기억을 고치기 쉽다. 한유리는 공책의 날짜가 실제로 그날 쓰인 것인지 확인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다른 페이지의 연속성, 사용한 펜의 흔적, 업무량이 적힌 다른 자료와의 일치 여부가 검토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작업 역시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원본 공책을 손상시키지 않고 제출 경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기사를 빨리 쓰지 않는 대가로 하루의 취재 시간이 또 지났다. 밤 아홉 시 정각, 익명의 이메일이 왔다. 제목은 '완료되지 않은 완료'. 첨부사진에는 사무실 책상처럼 보이는 곳에 놓인 두 장의 종이가 있었다. 하나는 실제 안내문, 다른 하나는 같은 제목의 빈 표지였다.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사진 속에는 날짜도 사람 얼굴도 없었다. 그러나 빈 표지의 오른쪽 아래에 작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재발행 요청 시 확인자 지정.' 누군가 그 빈 표지에 서명을 받아내려 한다면, 처음부터 문서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확인자로 누구의 이름을 넣느냐였다. 나는 내게 온 회사의 의견서 요청을 바라봤다. 빈칸을 채워달라는 문서는 이미 내게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 빈칸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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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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