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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47화
PAYLUA ORIGINAL · 제47화

47화. 부재중의 서명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67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이 적힌 서명란을 본 순간, 나는 가장 먼저 필체를 확인하지 않았다. 12월 8일, 오선영은 2025년 8월 21일의 수신 기록에서 '서진혁 확인'이라고 인쇄된 부분을 확대해 보여주었다. 경찰이 정식으로 보존한 자료의 일부였고, 나는 참고인으로서 설명을 요청받았다. 손으로 쓴 서명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출력된 이름이었다. "받았습니까?" 오선영이 물었다.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문서는 본 적 없어요." "기억이 없는 것과 안 받은 건 달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존 자료를 찾아봤어요." 나는 옛 보험사 근무 기록과 퇴사 자료를 내밀었다. 문제의 수신처는 내가 이미 떠난 부서였다. 하지만 내가 퇴직하고도 동료에게 서류를 전달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도 적어두었다. 오선영이 자료를 살폈다. "그 사실을 빼놓았으면 널 더 의심했을 거야." "지금은 덜 의심합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의심하지."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믿어달라고 부탁하는 대신 어떤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지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옛 부서 동료 한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생겼다. 그는 다른 직장으로 옮긴 뒤에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이었다. 나는 먼저 사적인 기억을 유도하지 않고, 그 시기 회사의 문서 수발 방식이 어땠는지 물었다. "서진혁 앞으로 오는 서류가 있으면 누가 받았는지 기억납니까?" "보통 총무팀이 받았지. 그다음엔 담당자 메일로 스캔을 돌렸어. 근데 퇴직자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반송하기도 했고." "제가 퇴사한 뒤에도 서류를 전달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었지. 네가 나중에 전화해서 다른 담당자한테 넘기라고 한 것도 있고." "2025년 8월 21일은요?" 그는 길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 날짜는 기억 안 나. 기억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가 나를 돕기 위해 기억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경찰은 옛 보험사에 관련 기록의 보존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내 개인 메일을 다시 검색했지만 그 문서 제목과 정확히 일치하는 메일은 없었다. 다만 제목을 바꿔 전달했거나, 다른 주소로 보냈다면 검색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동료는 통화를 끊었다가 십 분 뒤 다시 연락했다. 예전 부서에 종이 우편물을 분류하는 공책이 있었고, 누군가 대신 서류를 받으면 수신인 옆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공책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동그라미가 있으면 제가 받은 겁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대신 받아서 책상에 올려놓았다는 뜻이었어. 내가 기억하는 한은." 나는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내렸다. 다시 같은 문제였다. 받아놨다는 기록은 수신인이 읽었다는 기록이 아니다. 예전의 나는 업무 대장에 동그라미가 있으면 전달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누군가는 끝내 종이를 못 봤을지 모른다. 동료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그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건 전부 표시만 해놓고 넘어갔어." 나는 그가 지금 느끼는 죄책감 때문에 없는 기억을 만들지 않게 말해주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만 해줘. 그게 더 도움이 돼." 그는 오래 침묵하다가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 대화의 요지만 오선영에게 전달하고, 동료가 공식 확인을 요청받을 경우 직접 답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내가 그의 말을 대신 확정하면 또 하나의 간접 진술이 생길 뿐이었다. 선배는 그 판단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네가 예전에 수신 동그라미를 확인 완료로 처리한 적도 있니?" 나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선배는 더 묻지 않았다. 언젠가 확인이 필요하면 기록으로 확인할 것이다. 그날 나는 과거의 나도 지금의 수사에서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범인이 내 이름을 이용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적힌 모든 기록이 거짓은 아니다. 나 역시 편리한 확인 버튼을 눌렀던 사람일 수 있었다. 오후에는 한유리가 취재원으로부터 사진을 받았다. '서진혁 수신 완료'라고 적힌 종이였다. 그녀는 내게 보내기 전에 먼저 전화했다. "이 사진 보시면 화나실 겁니다." "그럼 오히려 보내지 마세요. 원본부터 확인해요." "서 조사관님 이름이 있는데도요?" "제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검증 기준을 낮추면 안 됩니다." 그녀는 화면을 보며 설명했다. 사진에는 작성일이 2025년 8월 21일로 되어 있었지만, 바닥에 2026년에 새로 쓰기 시작한 회사 주소 양식이 인쇄돼 있었다고 했다. 나는 바로 조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난해 문서를 올해 다시 출력하면서 새 양식을 적용했을 수도 있었다. "2025년 원본 사진인가요, 2026년에 출력된 사본인가요?" 내가 물었다. "제보자는 원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확인하려고요." 나는 그녀가 기사로 내기 전에 그 차이를 발견한 사실이 다행이었다. 누군가 내 이름에 분노한 내가 성급하게 반박하도록 유도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화를 내면 한유리는 그 반응을 기사로 쓸 수 있다. 그러면 사진의 원본 여부와 상관없이 내 이름은 사건의 중심에 남게 된다. 저녁 무렵 정민규가 오선영을 통해 질문을 전했다. 자신이 보관 요청을 늦게 한 CCTV의 소실 구간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복구 불가'라고 적으면 모든 증거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확인 어려움'이라고 적으면 자기 잘못을 숨기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답했다. "소실된 시간대와 장치, 원본 보존 여부를 정확히 적으세요. 해당 구간 영상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다른 카메라에서 확인 가능한 부분은 따로 남기고요." 정민규는 선배를 통해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이제 보고서 문장을 쉽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단어 하나에도 누군가의 운명이 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밤 여덟 시에 오선영이 다시 불렀다. 지난해 서류에 적힌 내 이름은 누군가 손으로 쓴 서명이 아니라 자동 인쇄된 '확인 요청 대상자'의 이름이라는 점이 전산 설명서와 부합한다고 했다. "그럼 제가 확인했다고 적힌 것은 아닙니까?" "문서의 그 칸은 아니야. 하지만 다른 수신 완료 표가 있어. 둘을 분리해서 확인해야 해."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내 이름 하나에 붙은 오해가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새로운 의문이 남았다. 누군가 '확인 요청'을 '확인 완료'로 바꿔 읽게 만들었다면, 왜 하필 나를 골랐을까. 오선영은 내게 오래된 사건기록의 첫 페이지를 다시 물었다. "네가 이 문서를 받은 게 처음이었던 날짜는 11월 2일이지?" "네." "그런데 지난해에도 너한테 확인 요청이 갔었다면, 누군가는 네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걸 이용할 수 있었겠지." "반대로 제가 실제로 받았다는 흔적을 찾으면 저도 의심받을 수 있고요." "그렇지. 네 일이라고 더 쉽게 믿거나 버리지 않을 거야." 사무실에 돌아오자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서명했습니다'. 첨부사진에는 내 이름이 선명히 인쇄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파일의 보존 절차를 지켜 경찰에 전달하고, 내가 모르는 사실은 모른다고 적었다. 상대가 내 분노를 예상했다면 그 기대가 틀렸기를 바랐다. 몇 분 뒤 온새문서지원에서 관리자가 남긴 기록 일부가 확인됐다는 연락이 왔다. 확인 요청이 '완료'로 바뀐 시각은 2025년 8월 22일 오전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내 이름이 적힌 수신처가 빈칸으로 바뀐 바로 그날이었다. 나는 메모 끝에 썼다. 누군가 받았다고 표시하면서 동시에 보낼 주소를 지웠다. 두 행동이 한 사람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날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제 기록으로 남았다. 처음으로 내 이름보다 중요한 질문이 생겼다. 그 완료 버튼을 누른 사람은 무엇이 완료됐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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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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