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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46화
PAYLUA ORIGINAL · 제46화

46화. 세 번째 자리의 빈칸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34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7일 월요일, 나는 오선영의 전화를 받고 화이트보드에서 숫자 셋을 지웠다. 01, 02, 03. 처음에는 세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배정우, 두 번째 나, 세 번째는 누군가 아직 모르는 피해자. 익명 발신자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표를 만들었다. 그런데 온새문서지원의 보존 기록에는 전혀 다른 설명이 있었다. "숫자는 사람 순서가 아니래." 선배가 말했다. "한 문서를 몇 단계로 보내는지 나타내는 내부 작업 차수였다는 증언이 있어." "그럼 02-A와 02-B는 두 번째 사람에게 간 문서가 아니라 두 번째 작업의 변형본일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지. 다만 지난해 계약 문서가 실제로 그 방식을 썼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야." 나는 숫자 아래에 써둔 이름을 지웠다. 지우는 데는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름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사람을 잘못 의심할 뻔했다. 이번에는 종이에 한 장씩 번호를 적었다. 문서의 검토 차수, 배포 유형, 책임을 물을 대상, 발신자가 만들어낸 상징. 같은 숫자가 네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었다. 누구든 하나를 선택해 나머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실제 작성된 장부와 전산 용어를 확인하기로 했다. 정오 무렵 한유리에게 익명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03이라는 숫자 밑에 공백이 있었다. 그 옆에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새로운 피해자를 고르라고 하는 건가요?" 한유리가 물었다. "그렇게 해석하길 바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대상인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무시해요?" "위협으로 보이는 자료는 신고하고 보존해야죠. 대신 우리가 사람 이름을 채워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유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한테 임소율 씨 이름을 써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이미 아는 이름이니까 더 쉽게 썼겠죠." "그리고 기사는 그 사람을 다시 위험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그녀는 메시지를 수사팀에 전달했다. 편집국에는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자가 메시지에 반응해 기사를 쓰는 순간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게 될 수도 있었다. 오후 두 시, 경찰에서 박혜림의 수신 대장을 추가로 확인했다는 소식이 왔다. 2025년 8월 21일 처리된 일부 항목의 상태는 실제 열람이 아니라 '마감 정리'로 바뀌어 있었다. 여러 항목을 한꺼번에 닫는 업무였고, 어느 관리자가 처리했는지는 확인 중이었다. 모든 항목을 열어보지 않고도 마감을 할 수 있었던 구조였다. "그럼 왜 박혜림만 책임 고지서에 남았죠?" 내가 물었다. "아직 몰라. 마감 당시 다른 열 명은 실제 배포 기록이 있었는데 혜림 씨 것만 빈칸이었을 수도 있어. 그 상태를 나중에 누가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문제야." 나는 그 말이 사건의 뿌리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그 실수로 누구의 이름을 남길지 고른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후에는 임소율이 경찰에 보충 진술을 했다. 2025년 8월 회의에서 별첨의 마지막 장이 분리됐고, 한 사람이 새 앞장을 꽂았다는 기억을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는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남궁태식의 진술과 비교하는 일도 조심스럽게 진행 중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회의실 탁자, 뒤집힌 서류 묶음, 누군가 펀치를 들고 왔다가 나가는 모습. 그러나 상상으로 만든 장면을 사실처럼 기록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현장에 없었다. 그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이야기는 증거가 될 수 없었다. 저녁에 오선영은 온새문서지원 전 관리자의 진술을 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일부 문서를 복사할 때 앞장과 뒷장이 섞이는 일을 막으려고 종이띠에 코드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코드를 잘못 쓴 경우에는 보통 수정 내용을 남겼다고 했다. "그럼 배정우 봉투의 종이띠도 확인해야겠네요." "이미 하고 있어. 다만 같은 코드라고 곧바로 같은 원본 묶음은 아니야. 여러 건에서 재사용한 코드일 수도 있어." 정민규에게서 전해 들은 또 하나의 업무 기록도 있었다. 2025년 말 회사의 문서 작업 차수는 최대 다섯 단계까지 표시됐고, 앞의 숫자가 뛰어도 작업 자체가 누락됐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이 03을 세 번째 피해자로 해석한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깨달았다. 앞의 숫자를 사람 이름에 연결하는 근거는 익명 문서가 보여준 배열뿐이었다. 오선영은 내게 하나를 더 물었다. "03이 비어 있다는 사진을 봤을 때 누구를 떠올렸어?"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박혜림 씨였습니다. 새로 이름이 알려졌고, 협박 전화를 받았으니까요." "그럼 누군가 네 반응을 보려고 그 사진을 보냈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겠네." "그렇죠. 제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는 걸 막을 수는 없어. 다만 추정을 보고서에 적을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해." 나는 그 말을 적었다. 나 역시 숫자 하나에 이름을 붙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실수만 지적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한유리는 빈칸이 있는 사진을 본 뒤 자신이 일하던 신문사의 제보함 설정도 점검했다고 했다. 누가 보낸 자료인지 추적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접수된 원본과 취재자가 열람한 사본의 구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전 질문지처럼 편집 중인 내용이 뜻하지 않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다. "이렇게 한다고 앞으로 실수 안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실수하겠죠. 그렇지만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볼 수는 있을 겁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잘못이 발생했을 때 그 잘못을 다른 사람의 범죄와 구분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려 했다. 발신자가 그 차이를 지우려고 할수록 기록이 중요해졌다. 그날 밤 임소율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찰 보호가 길어지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보호를 받았다는 사실만 생각했지, 보호받는 동안 잃는 생활은 생각하지 못했다. "제가 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면 당신은 저한테 위험하다고 하겠죠?" "필요한 이동은 경찰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제가 막을 권한은 없어요." "그럼 그냥 기다려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선뜻 말하지 못했다. 보호는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매일의 선택을 줄어들게 만든다. 임소율은 그 둘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선택부터 정리해볼까요?" 내가 물었다. "직장과 생활에 필요한 연락을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는지, 어떤 정보는 공개해도 괜찮은지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회사에 근무 형태 변경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누군가 대신 정해주는 계획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계획이었다. 그날 새 익명 메일에는 '03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유리는 그 메일을 받고도 숫자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임소율은 두려움 때문에 모든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혜림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확인하겠다고 요구했다. 나는 조금씩 이상한 사실을 느꼈다. 발신자는 사람들의 선택을 아주 잘 예측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오선영에게서 밤 열한 시에 메시지가 왔다. '03은 아직 대상자 번호라는 근거 없음. 자료 추가 확인.' 나는 화이트보드에 다시 03을 썼다. 이번에는 그 아래 이름을 적지 않았다. 대신 물음표만 적었다. 발신자가 이 물음표를 견디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더 내놓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범인을 유인할 방법인지, 또 다른 미끼에 올라서는 일인지는 아직 몰랐다. 다만 숫자만 보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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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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