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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44화
PAYLUA ORIGINAL · 제44화

44화. 한 번만 확인하라는 말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836자

오프라인 책장
해지된 전화번호 하나가 사람의 과거를 지우지는 않는다. 12월 5일 오전, 오선영은 배정우의 수신확인 용지 뒤에 적힌 번호에 대해 합법적으로 확인 가능한 통신 기록을 살폈다고 했다. 번호의 당시 이용자 정보는 개인정보와 수사 절차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번호가 개인 휴대전화가 아니었어. 회사가 외부 상담 업무에 쓰던 번호였던 시기가 있어." "화진모빌리티입니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일러. 용역업체가 여러 거래처 전화를 받던 번호야." 나는 노트에 적었다. 개인의 비밀 연락처가 아니라 업무용 창구일 수 있음. 그 번호를 배정우가 알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사적으로 연락했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만 확인'이라는 메모는 다르게 읽혔다. 같은 문의를 여러 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누군가 확인 전화를 받고 결과를 바꿔줄 수 있다는 뜻이었을까. 나는 그 문장을 사건기록과 분리해 적어두었다. 한유리가 취재 중 찾아낸 전직 전화상담 직원은 2025년 여름 특정 서류가 도착했는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잦았다고 했다. 다른 업체에서 문서를 보냈다는 표시만 보고 실제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일이었다. 직원은 당시 업무 매뉴얼에 '접수 상태를 읽어줄 것, 실제 열람 여부는 확인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그 기억이 확인 가능한지 물었다. 한유리는 매뉴얼 사본은 아직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 직원이 어떤 기간에 근무했고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부터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의 기억에 맞춰 증거를 고르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때 박혜림이 다시 전화했다. 그녀는 오늘까지 답변을 요구하는 문서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책임 고지서를 정정해달라는 요청에 회사가 '내부 확인 중'이라는 답을 반복하던 참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회사가 그녀에게 현재의 진술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제가 기억 안 난다고 쓰면 거짓말이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그렇게 쓰는 게 맞습니다. 기억이 나는 부분과 구분해서요. 법적 판단은 상담받으시는 전문가와 같이 보세요." "그럼 사람들이 또 제가 숨긴다고 할 텐데요." "그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원하는 대답 때문에 기억을 만들어낼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에 말했다. "저 오늘 면접 하나 더 봤어요. 회사 이름은 말 안 할게요. 이 일에 또 엮일까 봐." 나는 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너무 쉬웠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자기 일상을 지키는 데까지 나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었다. 오후에 오선영은 문서 수발 업무를 맡았던 외부 상담창구의 과거 계약서를 확인했다고 했다. 온새문서지원은 그 업무 일부를 다른 회사에 재위탁했고, 전화 문의 담당자와 전산 입력 담당자가 서로 달랐다. 누군가 전화로 '전달 완료'라는 설명을 듣고 전산에는 '확인 완료'라고 적어두었다면, 그 사이에서 의미가 바뀔 수 있었다. "일부러 바꾼 걸까요?" "모르지. 매뉴얼이 부정확했을 수도 있고, 누가 지시했을 수도 있고. 그게 지금 확인해야 할 일이야." 나는 2025년의 발송 목록에서 이상한 행 하나를 발견했다. '2차 확인 요청 대상 서진혁'이라는 문구 옆에 수신처가 내 사무소가 아니라 과거 근무하던 보험사 부서로 적혀 있었다. 해당 부서는 이미 조직개편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선배, 이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뭐가?" "문서를 받도록 지정된 장소가 제가 더 이상 근무하지 않던 부서였어요. 요청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도 제게 도착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근무 이력으로 확인할 수 있겠네." "네. 다만 부서로 온 걸 누군가 전달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나는 당시 퇴직 증명과 사무실 이전 자료를 정리해 선배에게 전달했다. 내게 유리한 기록만 고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뒤에도 옛 동료에게서 서류를 전달받은 적이 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사실도 메모에 적었다. 저녁에는 한유리가 수신지 오류에 관한 취재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 퇴사 시점만 보도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실제 전달 여부가 확인되기 전이라면 '잘못된 주소로 보내졌다'는 표현조차 과장일 수 있었다. 당시 그 부서가 문서를 대신 수령하는 관행이 있었는지도 봐야 했다. 한유리는 알겠다고 하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저는 처음엔 서 조사관님이 무언가를 숨긴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이름이 사건기록에 계속 나오니까요." "지금은 아닙니까?" "아직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숨기는 게 있는지 없는지도 포함해서요." 나는 웃었다. 그 정도의 의심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가 내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진술을 믿는 순간, 나는 잘못을 고칠 기회를 잃는다. 밤 아홉 시, 오선영에게 연락이 왔다. 전화상담 창구의 예전 업무표에 '수신자 부재 시 2차 확인 처리'라는 칸이 있었다고 했다. 그 칸은 실제로 문서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요청을 다시 돌려보낸 담당자가 표시하는 항목이었다. "그럼 제가 두 번째 확인 대상이라는 기록은 단순히 연락을 재시도하라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가능해. 그런데 그 표에 이상한 표시가 있어." "어떤 표시입니까?" "2025년 8월 21일에 네 이름을 넣은 뒤, 8월 22일 누군가 수신처를 바꿨어. 새로운 수신처 칸은 비어 있어." 나는 종이에 두 날짜를 적었다. 내가 받지도 못한 문서의 수신처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그 변경이 이루어질 때 누군가 내가 문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오선영은 말을 이어갔다. "수정 이력은 남아 있는데 변경 사유가 없어. 누가 바꿨는지는 전산 기록으로 확인 중이고." 나는 바로 범인을 떠올리지 않았다. 시스템 이관이나 단순 정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경 사유가 비어 있는 칸은 설명을 요구했다. 그때 어제의 실패한 출력 작업이 다시 생각났다. 누군가는 '열람 대상자 이의신청 안내문'을 출력하려다 실패했다. 누군가는 문서가 도착하지 않은 사람을 확인 완료로 처리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수신처를 아무 주소도 없는 칸으로 바꿨다.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의 행동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사람의 실수를 이용하기 전, 그 실수가 생길 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는 점은 점점 분명해졌다. 나는 근무기록을 확인하면서 작은 문제를 하나 더 발견했다. 내 퇴사 날짜는 명확했지만, 그 이후 한 달 동안 옛 회사 이메일이 임시 전달용 주소로 남아 있었다. 문서가 그 주소에 도착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사실도 선배에게 보냈다. "네게 불리할 수도 있는 자료인데 왜 보냈어?" 오선영이 물었다. "그걸 빼면 나중에 더 불리해지겠죠. 제 진술이 스스로 고른 기록에만 기대게 되니까요." 오선영은 메일 전달 설정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오래된 이메일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문서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선배는 그 말까지 경위 기록에 남기겠다고 했다. 다행히 선배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사실만 적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자정 직전 또 하나의 익명 메일이 왔다. '전화는 한 번이면 됩니다. 확인은 버튼 하나면 됩니다. 책임은 평생 남습니다.'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메일은 저장해 오선영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른 글자를 찾았다. 발신자의 문장에는 오래된 상담 매뉴얼과 비슷한 표현이 있었다. 누군가 매뉴얼을 읽었다는 뜻인지, 우리가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길 바라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비어 있는 8월 22일 수신처 칸을 노트 한가운데 그렸다. 빈칸은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 누가 지웠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 빈칸을 성급하게 사람 이름으로 채우지 않는 것. 오늘 내가 지킬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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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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