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정이 보관한 봉투의 접착면에는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있었다.
12월 4일, 오선영은 감정 담당자가 그 자국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이미 한 번 개봉했다가 다시 붙인 흔적인지, 오래된 종이를 눌러 보관하면서 생긴 손상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봉투를 정우가 직접 봉했는지도 모르니까." 선배가 말했다. "유족에게 괜한 의심을 돌리고 싶진 않아."
나는 동의했다. 배은정은 동생의 죽음을 알고 나서야 봉투를 찾았고, 경찰에 제출했다. 누가 언제 봉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가 내용을 바꿨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봉투 겉면에 적힌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서진혁에게. 그러나 그가 처음 받는다면 열지 말 것.' 처음 받는 사람이 열지 말아야 하는 봉투라니. 이상한 문장이었다. 배정우가 누군가에게 두 번 전달하라는 의미로 썼을 수도 있고, 처음 전달된다는 주장을 확인하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오전에는 회사 법무팀을 통해 지난해 내게 발송했다는 문서 목록을 받았다. '서진혁 확인 요청'이라고 적힌 행이 있었다. 접수번호도 부여돼 있었다. 하지만 내 사무소 보존 자료에는 해당 문서가 없었다.
"송달증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외부 발송 결과가 남아 있습니다." 법무팀 직원이 대답했다.
"발송 결과와 제가 실제 받았다는 증거는 다른데요."
그는 잠깐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저희가 보관한 기록에는 완료로 표시돼 있습니다."
"그 표시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확인해주시겠습니까?"
"협조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검토하겠습니다."
전화는 공손하게 끝났다. 나는 업무 메모에 적었다. 회사가 거짓말했다고 단정할 수 없음. 기록이 보여주는 사실의 범위가 다름.
점심 무렵 배은정이 동생의 달력을 경찰에 추가로 냈다는 연락이 왔다. 문제의 봉투를 맡긴 시각에 관해 새로운 메모가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맡긴 날과 달력에 표시된 날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혹시 봉투가 나중에 만들어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오선영이 바로 말을 잘랐다. "달력에 적힌 날이 봉투를 맡긴 날이라는 증거도 아직 없어. 날짜만 보고 유족 기억을 틀렸다고 하지 마."
나는 그녀의 지적을 받아 적었다. 날짜가 적힌 종이와 날짜를 설명하는 사람의 말은 서로 다른 증거다. 둘 중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보기 전에 이야기로 연결하고 싶어지는 건 내 나쁜 습관이었다.
그날 오후 한유리가 봉투 사진을 부탁했다. 단서의 원본을 보도할 생각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받은 02-A 화면의 종이띠와 비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공개하거나 적법하게 공유한 범위만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유족이 준다고 해서 모든 자료를 기사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직접 사진을 달라고 하지 않은 거예요."
그녀는 대신 자신에게 도착한 문서에서 작은 문구를 발견했다고 했다. '수신 대상 부재 시 대체 검토자에게 교부'. 02-A는 외부 열람용 초안이라는 설명과 어울릴 수 있지만, 과거 봉투의 '첫 번째 독자'라는 말과는 다른 절차였다.
"대체 검토자라면 내가 되는 겁니까?"
"서 조사관님 이름이 한 번 적혔다고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죠."
나는 웃었다. "맞아요. 제가 지금 확인하려는 걸 당신이 먼저 막았네요."
그녀는 웃지 않았다. "제가 지난번에 잘못 보낸 질문지 때문에 박혜림 씨가 의심받았잖아요. 제가 다시 추측을 기사로 쓰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아요."
나는 '잘못 보낸 질문지 때문에 의심받았다'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제보자가 그 질문지를 실제로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확인 중이었다. 그러나 질문지 유출이 그녀의 이름을 새 거짓 문서에 등장시키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저녁에는 배정우의 오래된 기록을 검토했다. 2025년 8월 21일의 수신확인 용지에 적힌 '1차 검토자 배정우'. 그 아래의 '2차 확인 요청 대상 서진혁'. 이 두 줄은 다른 수신자를 뜻하는지, 한 사람이 한 뒤 다른 사람이 검증해야 하는 절차를 뜻하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의뢰인의 담당자에게 연락해 공식적으로 자료 보존 여부를 문의했다. 그는 오래된 사안이라 사내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내가 다른 기관이나 회사의 보관 문서를 강제로 꺼낼 수는 없었다. 다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지 분명히 남기는 건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박혜림이 연락했다. "서 조사관님, 제가 받은 적 없는 문서가 왜 제게 책임이 됐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무엇을 확인하셨습니까?"
"인수 확인은 전체 목록이 다 처리됐을 때 한꺼번에 완료로 바뀌더라고요. 제 이름이 남은 마지막 한 건 때문에 화면 전체가 초록색이 된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때 병원에 있었고, 누가 대신 눌렀는지 몰라요."
나는 설명을 듣고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화면이 초록색이 된 시점과 실제 승인 주체, 후속 책임 고지서가 작성된 시점이 연결돼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이름이 왜 목록에 남았는지 설명하는 가설이 하나 생겼다.
"그 화면의 출처를 보존하셨나요?"
"네. 이젠 아무것도 지우지 않아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힘이 느껴졌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시스템의 표시가 더 이상 절대적인 판결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선영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자 그녀는 오히려 한 가지를 물었다. "그 설명을 어디서 들었다고 하니?"
"과거 동료에게 문의했다고 합니다."
"좋아. 그 동료가 직접 봤는지, 다른 사람에게 들었는지도 따로 확인할게."
나는 그때 깨달았다. 거짓 기록이 사람을 해치는 것만큼,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우리는 박혜림을 돕고 싶어서 그녀의 말을 더 쉽게 믿을 위험이 있었다.
그날 배은정은 경찰에 봉투를 처음 보관했던 장소를 다시 설명했다. 책장 위가 아니라 오래된 서랍의 맨 아래였다는 것이었다. 예전 진술과 달랐다. 오선영은 그녀에게 왜 기억이 바뀌었는지 묻고, 당시 집 안을 정리한 다른 가족이 있었는지도 확인했다고 했다.
나는 유족의 진술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불편해졌다. 그러나 배은정은 봉투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정확히 기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동생이 죽은 뒤 며칠을 거의 잠들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일기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럼 봉투를 누가 만졌는지는 확인할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유족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경위를 확인하고 있어. 추측할 자료는 없어." 선배의 대답이었다.
나는 배은정이 왜 경찰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내게 계속 묻는지도 생각했다. 공식 기록에는 그녀가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았다. 감정 중, 확인 중, 미확정. 나는 그 말을 덜 쓰고 싶었지만 없앨 수는 없었다. 대신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을 하나씩 정리해 전달하기로 했다. 봉투를 언제 발견했고, 누가 보관했으며, 문서를 어떤 상태로 경찰에 넘겼는지. 그 세 줄의 설명은 동생의 죽음을 설명해주진 않았어도, 그녀가 했던 일을 남겨줄 수 있었다.
늦게 온 메시지에는 종이 봉투의 감정 결과 일부가 적혀 있었다. 배정우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수기 문장은 아직 필적 판단을 마치지 못했다. 대신 봉투 속 네 장의 문서 가운데 한 장은 다른 세 장보다 나중에 출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예비 의견이 나왔다. 인쇄 특성의 차이만으로 출력 날짜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잠깐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 봉투의 내용이 한 시점에 한 사람이 만든 것인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처음 받는다면 열지 말라는 문장에는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침부터 묻던 질문을 바꿨다. 배정우가 왜 나에게 이 봉투를 맡겼는가가 아니라, 배정우가 맡겼던 봉투 안에 지금의 네 장이 모두 들어 있었는가.
그 질문에는 아직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공백이 누군가에게 유리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제4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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