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화요일 아침, 나는 화이트보드에 세 줄을 적었다.
첫째, 배정우는 11월 3일 죽었다.
둘째, 21시 16분에 그를 피해자로 적은 수정본이 도착했다.
셋째, 그 수정본과 닮은 문서가 접근 제한이 누락된 공용 계정에서 열렸다.
세 줄 사이를 화살표로 잇지 않았다. 서로 관련이 있어 보여도, 실제 연결 경로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화살표 하나를 마음대로 그리는 순간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수 있다.
오선영은 전날 문서 열람 흔적에 대해 연락했다. "계정은 확인됐어. 하지만 접속 기록에는 공용 단말 표시가 있어서 사람을 특정할 수는 없어."
"수정본을 열었다는 사실은 확정됐습니까?"
"그 제목의 항목이 열렸다는 건 맞아. 그런데 실제 파일 내용이 네가 받은 수정본과 같은지 아직 확인 중이야. 같은 제목이라고 같은 파일이 아니니까."
나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답답했다. 또 한 걸음 나아갔지만 결론은 멀었다. 그러나 내 답답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오전 열 시, 배은정이 서류철을 들고 경찰서를 찾았다. 동생이 오래된 가계부 뒤에 끼워 둔 수신확인 용지였다. 그 종이에는 2025년 8월 21일 문서명과 확인 예정 대상자가 적혀 있었다. 이름은 서진혁이 아니었다.
배정우.
나는 그 사실을 오선영에게서 들었다. 처음에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배정우가 자기 서류를 먼저 읽는다는 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그 종이의 상단에는 '1차 검토자'라는 말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2차 확인 요청 대상: 서진혁'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럼 봉투의 문장이 이 구조를 가리킨다는 겁니까?"
"가능해. 하지만 종이가 진짜인지는 확인 중이야. 배정우 본인이 썼는지 누가 넣었는지도 몰라."
나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첫 번째 독자였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일부러 그 구도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배은정은 한 가지를 더 말했다고 한다. 동생은 서류를 두 번 읽으면 글자가 달라진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앞장에 같은 서명을 붙이는 방법을 말했던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노트에 썼다. '첫 번째 독자: 배정우라는 기록 존재. 실물 감정 전. 두 번째 확인 대상: 서진혁. 실제 수신 여부 미확정.'
점심 무렵 한유리에게 새로운 자료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온새문서지원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교육 화면의 설명이었다. '첫 번째 독자'는 검토 책임자를 뜻하고, '두 번째 독자'는 검토 후 배포받는 이해관계자를 뜻했다. 공식 용어는 아니고 당시 담당팀이 임의로 쓰던 말이었다.
나는 한유리에게 물었다. "그 설명이 지난해 화진모빌리티 문서에도 쓰였다고 확인됐습니까?"
"그건 아직 아니에요. 그래도 봉투의 표현이 초자연적인 건 아니라는 가설을 뒷받침하죠."
"그 정도는 말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웃었다. "우리가 이 소설 같은 말을 현실적인 사무 용어로 바꾸느라 한 달을 썼군요."
나는 같이 웃지 못했다. 그 한 달 동안 배정우는 여전히 죽은 사람이었고, 박혜림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정민규는 자신이 하지 않은 위조까지 의심받았다. 답을 찾는 속도가 느린 건 죄가 아니지만, 느린 동안 남들이 치르는 비용까지 없는 셈 칠 수는 없었다.
오후 세 시, 오선영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배정우의 수신확인 용지 뒷면에 손으로 쓴 전화번호가 있었다. 2025년 8월의 번호였고, 지금은 해지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옆에는 '한 번만 확인'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나는 번호를 외워 전화를 걸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해지된 번호에 연락하는 건 의미도 없고 불필요한 개인정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선배는 적법한 경로로 가입·사용 기록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박혜림은 내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제가 작년에 못 받았다는 서류, 만약 지금 받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나요?'
나는 답장을 쓰기 전에 오래 생각했다. 법적 기한이 다시 열리는지, 계약상 권리가 복구되는지 나는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지난 절차를 다시 살펴볼 근거가 될 수 있다.
'자동으로 원상복구된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 실제 수령 여부를 확인하고 관련 전문가와 정정·구제 절차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한참 뒤에 답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배정우가 남겼다는 '두 번째로 받을 것'이 떠올랐다. 같은 문서라도 받는 사람이 자기 권리를 알고 읽을 때와, 누군가 이미 받았다고 써놓은 뒤 읽을 때는 의미가 다르다.
나는 저녁을 먹다가 오래된 조사 노트의 첫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보험사기 조사관 시절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적혀 있었다. '어떤 기록이든 첫 번째 작성자를 찾기 전에 두 번째 복사자를 찾아라.'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원본만 찾으면 되지 왜 복사자를 먼저 찾느냐고 반문했다. 선배는 웃었다. 사람들은 원본보다 자신이 전달받은 사본을 더 자주 믿는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사본은 늘어나고, 그 사본이 누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결정한다고 했다.
이제 알 것 같았다. 배정우가 첫 번째 독자였다는 기록만으로는 살인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두 번째 확인 대상이었다는 기록 역시 나를 범인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그 두 기록을 연결해 새로운 문서를 만들면, 사람들은 그 문서의 결론부터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나는 한유리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오늘 받은 메일을 어디에 전달하기 전에 원본을 보존해 주세요. 화면 캡처만으로는 뒤에 붙은 번호가 처음부터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이미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그녀가 예전처럼 기사 마감 때문에 서두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안심됐다. 미끼가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밤 열 시, 익명 이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사건기록이 아니라 표 하나였다. 수신자 세 명을 뜻하는 01, 02, 03 중 02에는 '미수신' 대신 '직접 확인'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한 줄.
'첫 번째 독자가 죽으면 두 번째 독자가 책임을 진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까지 나온 수신 기록과 이 문장이 교묘하게 맞물렸다. 배정우가 첫 번째 독자였고 내가 두 번째 독자였다면, 누군가 그의 죽음을 내 책임으로 돌리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문서상의 역할을 형사 책임으로 바꾸는 억지였다.
나는 원본을 보존하고 선배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오선영의 전화가 왔다.
"진혁아. 오늘 그 표는 너뿐만 아니라 한유리한테도 갔어. 그런데 그녀가 받은 표에는 02가 '직접 확인'이 아니라 '확인 거부'라고 적혀 있어."
"서로 다른 반응을 유도하려는 걸까요?"
"가능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표에 붙은 숫자야."
"무슨 숫자입니까?"
"네가 받은 문서의 번호는 02-B. 한유리가 받은 문서는 02-A야."
나는 말이 없었다. 번호 하나로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는 두 버전의 문서를 준비했다. 우리가 서로의 자료를 비교하지 않았다면 각자 다른 사실을 믿었을 것이다.
오선영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배정우가 남긴 용지에는 아직 우리가 공개하지 않은 번호가 있어. 02-A."
내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것이 제작자의 흔적인지, 다른 문서에서 복사한 코드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명확했다.
배정우는 왜 죽기 전에 02-A라는 번호를 가지고 있었을까.
누가 그 번호를 다른 독자에게 다시 보내고 있을까.
나는 화이트보드에 처음으로 화살표 하나를 그었다. '배정우 수신 용지 02-A'에서 '한유리 수신 문서 02-A'로. 그리고 그 화살표 옆에 크게 썼다.
'관련성 있음. 동일 작성자 확정 아님.'
화살표 끝에는 아직 사람 이름을 적지 않았다. 그 빈칸이 내일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랐다.
제4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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