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확인'과 '비용 귀속 승인' 사이에는 단어 세 개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한쪽은 읽었다는 뜻이고, 다른 쪽은 돈을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화진모빌리티의 계약서 양식을 뒤졌다. 2025년 8월 19일 정산 회의에서 사용된 공식 서식이 있었다. 맨 앞에는 비용 관련 책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서명 칸이 있었다. 문제는 중간의 정의 조항이었다. '확인자'는 비용의 발생 여부를 검증하는 사람이고, '승인자'는 회사 내부 집행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둘은 원래 다른 역할이었다.
그날 오선영은 경찰이 입수한 자료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내가 갖고 있는 지난해 의뢰 자료 안에서 정의 조항의 버전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원본 파일의 생성 날짜와 전달 경로를 함께 묶어 보냈다.
잠깐 휴식을 취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 1층 우편함에는 잘못 배달된 고지서가 꽂혀 있었다. 옆 사무실 이름과 숫자 한 자리가 달랐다. 나는 관리인에게 맡기며 수령인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편함 하나를 잘못 찾아간 종이도 법적 통지로 오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해 만났던 보험사 담당자가 떠올랐다. 그 사람은 항상 '최종본'이라고 적힌 파일을 제일 먼저 열었다. 정작 중요한 수정 내용은 '최종본_검토용'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올라오곤 했다. 우리는 늘 제목보다 작성 시각과 실제 승인 절차를 봐야 한다고 다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자신도 '최종'이라는 글자에 묶여 있었다. 내가 아는 잘못을 내가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이다.
나는 화면의 문서 파일명에서 최종이라는 단어를 가렸다. 대신 제일 먼저 생성된 초안부터 시각 순으로 배열했다. 어떤 파일은 만들어진 날짜가 같았고, 어떤 파일은 수정 시각이 뒤바뀌었다. 메타데이터는 복사나 이전으로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것도 확정 증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두 파일을 한꺼번에 '최종본'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점심쯤 백이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진모빌리티 법무·준법지원실 책임자였다. 그는 내게 만나자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질문했다.
"서 조사관님은 작년 당시 어떤 문서를 원본이라고 인정하셨습니까?"
"제가 받은 건 사본입니다. 원본이라고 단정한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본 확인 없이 내부 책임자를 지목하셨나요?"
"보고서에 책임자 확정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특정 결재 경로에 대한 추가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대화가 통하는군요."
나는 그 칭찬을 믿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답을 듣기 위해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백이준은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보였지만, 조심스럽다는 사실만으로 옳은 쪽에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회사가 별첨 제2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서류 제목이 '회수 예정금 귀속 확인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문서는 법무팀이 먼저 보냈고, 어떤 문서는 정산팀이 별도 보관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경찰에도 설명하셨습니까?"
"예. 같은 답을 드렸습니다."
"그럼 제가 별도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겠군요."
"제한적이어야지요. 수사 중인 사안이니까요."
그는 통화를 끝내려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 조사관님. 누군가 최명환 실장 이름을 서명 칸에 넣은 문서가 유출됐습니다. 그런데 그 문서의 앞장은 정작 다른 회사 것입니다."
나는 똑바로 앉았다.
"진위를 확인하셨습니까?"
"확인 중입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누군가 그 문서를 받으면 바로 단정하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중요한 경고였다. 그러나 유출된 문서를 거짓이라고 먼저 규정해 최명환의 책임을 피하게 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었다. 나는 두 가능성을 구분한 채 통화를 기록했다.
오후 네 시, 정민규가 오선영의 지시에 따라 회수 예정금 관련 업무 메뉴얼을 대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정식 수사팀의 지시에 따라 일했으며 내게 직접 비공개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선배를 통해 질문 하나가 왔다. "서류를 복사할 때 앞장만 새로 출력하고 뒷장은 그대로 두는 일이 실무에서 흔한가요?"
나는 답했다.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속 서류를 갱신할 때요. 하지만 수정 이력을 남겼는지 봐야 합니다. 그 자체로 위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선영이 잠시 뒤 전화했다. "민규가 그 답을 듣고 안심하더라. 자기 실수 때문에 실제 정상 절차까지 범죄로 보게 될까 봐 걱정했거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정민규가 보존 요청을 늦게 전달한 일과 사실관계를 축소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실수 하나 때문에 그의 나머지 판단을 전부 잘못이라고 취급하면, 수사팀은 또 다른 균형을 잃는다.
그날 저녁 임소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한 번 더 진술을 보충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회의에서 본 사람 하나가 생각났어요. 문서 펀치를 들고 왔던 사람요."
"이름을 기억합니까?"
"아니요. 다만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어요. 그래서 펀치를 한 손으로 제대로 못 눌렀어요."
나는 그 정보를 듣고 곧장 누군가를 떠올리려는 마음을 눌렀다. 팔목 붕대는 흔하다. 특히 기록보관 업체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 장면을 누가 함께 봤습니까?"
"남궁태식 씨요. 제가 그분한테 종이 좀 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나는 그녀의 동의를 얻어 선배에게 전달했다. 오선영은 독립 진술과 당시 출입 기록을 비교하겠다고 했다.
밤 열 시, 한유리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취재를 하다 발견했다는 사진에는 날짜 없는 서명란만 잘려 있었다. 그 아래 '최명환 책임'이라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내일 아침 기사로 나오게 만들어달라는 제보였어요."
"내보내실 겁니까?"
"안 내요. 서명 사진이 원래 어떤 문서에 있었는지 모르니까."
나는 사진을 봤다. '책임'이라는 두 글자는 서명 본문과 글씨체가 달랐다. 그것이 위조의 증거는 아니지만, 한 장짜리 사진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편리했다.
한유리가 말했다. "문서를 만드는 사람보다 문서를 읽는 사람을 바꾸는 편이 더 쉽겠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읽은 문장을 자기 판단이라고 믿는다. 누가 앞장을 바꿨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최명환의 이름이 왜 갑자기 반복되는지 생각했다. 그는 결재 책임자로 등장했고, CCTV 보존을 먼저 지시했으며, 이제는 누군가가 서명 사진까지 유출하고 있었다. 그가 범인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이유가 있을까. 반대로 누군가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이만큼 좋은 재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두 가설 옆에 물음표를 적고, 어느 쪽이든 맞으면 반대쪽을 버릴 수 있는 자료를 찾아야 한다고 썼다.
오선영은 저녁 보고에서 최명환에 관한 새로운 의혹이 접수됐다고만 말했다. 나는 내용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지난해 내가 갖고 있던 결재표의 사진을 원본 제출 경위와 함께 전달했다. 사진이 흔들려 있던 부분을 밝게 고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원본 그대로 두었다. 가독성을 높인 사본이 필요하다면 원본과 구분해 만들어야 했다.
그날 밤 새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마지막 서명란'. 마지막에는 한 줄이 있었다.
'최명환이 아니라면, 다음에는 누가 대신 책임지겠습니까?'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익명 발신자가 내게 원하는 사람을 지목하라고 재촉하는 동안, 정작 누가 배정우를 죽였는지는 여전히 빈칸이었다.
제3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