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던 조사사무소 프로그램에는 '확인' 버튼이 두 종류 있었다. 하나는 자료를 실제로 내려받았다는 표시, 다른 하나는 의뢰인에게 확인 요청이 전달됐다는 표시였다. 이름이 비슷해 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종종 혼동했다. 그러나 나에겐 직원이 없었다.
오선영이 말한 것은 그중 후자였다. 경찰이 확보한 접수 내역 복사본에는 2025년 8월 21일 오전 9시 06분, '서진혁 확인 요청 전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읽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누가 읽어야 한다고 지정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러면 배정우가 내게 보냈다는 보장은 없네요."
"맞아. 무엇보다 그 기록을 만든 회사도 너의 사무실이 아니라 별도의 문서 수발업체야."
업체 이름은 온새문서지원이었다. 최근까지 수신자별 사건기록을 제작할 능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던 곳. 나는 지난해 업무 파일을 검색했다. 온새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나왔다. 화진모빌리티의 정산표를 보험사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외부 복사본을 받았던 날이었다.
수신 확인 문구 아래에는 '열람 예정 11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숫자 때문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수신자 번호가 01부터 03까지 적힌 최근 익명 메일과는 별개의 자료였다. 숫자가 닮았다고 같은 조직의 규칙이라고 생각해선 안 됐다.
오선영은 수신자 명단을 경찰이 확인 중이며, 인원 열한 명 가운데 일부는 이름이 아니라 부서 계정으로 올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보험사 담당자, 회사 법무팀, 감사를 맡은 외주인력. 열한 명이면 많지만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오전의 접수기록을 종이에 두 줄로 옮겼다. '요청 전달'과 '자료 열람'을 굵은 선으로 분리했다. 같은 화면에 있던 두 칸을 떼어놓으니 꽤 다른 이야기가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라고 지정한 사람은 발신자일 수 있다. 문서를 실제로 읽는 사람은 그 다음 단계의 수신자다. 그런데 오래된 회사 장부는 두 행위를 모두 '확인'으로 처리했다. 담당자가 악의를 갖지 않았다 해도 그런 시스템은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유용하다.
한유리는 그 설명을 듣고 웃으며 물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확인을 눌렀냐가 아니라 무슨 확인을 눌렀냐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확인을 했다는 기록이 어디서 나왔는지도요." 우리는 기록 관리 시스템의 화면을 두고 십 분 넘게 이야기했다. 단 한 번도 누가 살인범일지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대화가 어떤 추궁보다 사건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임소율에게서 면담 요청이 왔을 때 나는 이런 설명을 길게 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가 기억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떤 답이 옳은지 먼저 가르치는 건 위험했다. 질문을 적은 종이도 최대한 짧게 만들었다. '본 것', '들은 것', '나중에 알게 된 것'. 세 칸만 준비했다. 그 칸들이 임소율의 기억까지 정확하게 분리해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그 경계를 함부로 넘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다.
오후에 임소율이 만나자고 연락했다. 경찰을 통해 안전한 장소와 동행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오선영이 지정한 면담실에서 마주 앉았다. 임소율은 이전보다 야위어 있었다. 내게 건넨 첫마디는 안부가 아니었다.
"배정우 씨가 정말 죽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손에 쥔 휴지를 네 번 접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나요?"
"저는 아직 모릅니다."
"그 사람한테 돈을 돌려달라는 전화를 받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녀는 지난해 8월 19일 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회수 예정금을 누가 부담할지 두고 회의가 길어졌고, 정산 승인자는 늦게까지 남았다. 배정우는 회의실을 나갔다 돌아와 종이 두 묶음을 들고 왔다. 한 묶음은 '최종'이라고 적혀 있었고 다른 묶음은 인쇄가 덜 된 초안이었다.
"저는 둘 다 같은 숫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우 과장이 앞에 있는 표만 보라고 했어요. 뒤쪽은 법무팀이 확인할 거라고."
"그때 최명환 실장도 있었습니까?"
"회의 막바지에 왔어요. 다만 누구한테 어떤 지시를 했는지는 들은 게 없어요."
그녀는 기억을 더듬느라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려다가 그만뒀다. 내가 보지 않은 회의실에 사람을 임의로 세우면, 나중엔 내가 상상한 걸 기억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럼 그날 누구한테 문서 두 묶음을 넘겼습니까?"
"서류함에 놓았어요. 다음 날 보니까 한쪽만 남았고요."
"없어진 쪽이 최종본입니까?"
"모르겠어요. 전 그때도 제목을 제대로 안 봤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또 있습니까?"
"문서 정리하던 남궁태식 씨요. 그리고 한 명 더 있었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나요."
정확하지 않은 이름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았다. 대신 그 사람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어떤 물건을 갖고 있었는지 물었다. 임소율은 종이 펀치를 들고 왔다고 했다. 별것 아닌 특징 같았지만, 나중에 사진이나 근무표와 대조할 수 있었다.
면담 후 오선영은 그 정보가 아직 단서일 뿐이라며 경고했다. "임소율이 당시 너무 지쳐 있었대. 회의가 열린 순서부터 다른 자료로 대조하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기억은 CCTV가 아니다. 그 말을 잊을 때마다 범인은 우리 대신 기억을 편집할 기회를 얻는다.
그날 저녁 한유리가 연락했다. 그녀는 온새문서지원 전 직원과 확인한 열람 교육자료를 다시 살펴봤다고 했다. 문서 제목을 고치는 기능보다 더 특이한 항목이 있었다. '열람 확인 대상'과 '열람 사실을 통지받는 대상'을 서로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 서진혁 확인 요청 전달이라는 문구는 제가 읽었다는 말이 아닐 뿐더러, 제가 받았다는 말도 아닐 수 있네요."
"네. 받게 하려는 대상이라는 뜻일 수도 있어요."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분명하지 않은 걸 분명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때 한유리가 덧붙였다. "그런데 열람 예정 열한 명 중에, 실제로 확인 버튼을 누른 사람은 열 명이라고 제보자가 기억해요."
"누가 안 눌렀답니까?"
"제보자도 명단은 못 봤대요. 대신 시스템 화면에는 미확인이라고 뜨다가, 나중에 관리자가 일괄 확인으로 바꿨다고요."
나는 종이에 썼다. '열한 번째 열람자: 실제 열람 없을 수 있음. 관리자의 일괄 확인이 허위 독자 생성.'
임소율에게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궁태식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내가 기억을 확인하겠다고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두 사람의 말이 서로 섞일 수 있다. 나는 그날 임소율이 말한 펀치의 색깔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걸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다음 면담에서 정식으로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익명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발신자가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것이 내게는 오히려 신경 쓰였다. 예고가 없으면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 순간, 나는 이미 그가 만든 습관 속에 살게 된다.
퇴근 전에 오선영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제출된 봉투 속 문서 사본 네 장의 가장자리에는 같은 위치에 둥근 구멍이 있었다. 단 한 장만 구멍이 반쯤 잘려 있었다.
'이 차이만으로 문서가 교체됐다는 뜻은 아니야.'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묶음인지 검증할 이유는 되겠네요.'
누가 마지막 장을 숨겼는지 찾던 일이 이제는 누가 열한 번째 독자를 만들어냈는지 알아보는 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두 질문이 언젠가는 같은 사람에게 닿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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