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여섯 시 사십 분, 오선영을 경찰서 근처 식당에서 만났다.
그녀는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도 전화를 내려놓지 않았다.
식당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교통사고, 신제품 발표, 주말 날씨. 우리의 사건을 아는 사람은 아직 극히 적었다. 나는 그 평범한 화면이 부러웠다.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누가 어떤 말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계란말이를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긴장할수록 손이 너무 바빠지는 버릇이 있어서였다.
오선영은 식당 문을 등지고 앉았다. 평소에는 반대였다. 출입문을 확인해야 하는 자리에 내가 앉으려고 하면, 그녀는 항상 '그런 건 경찰이 할 일'이라며 자리를 바꾸었다. 오늘은 그런 농담도 없었다.
"어제 경찰 연락이 회사로 퍼진 경위는 다 확인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누구에게 언제 연락했는지는 확인했어. 그 뒤로 누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계속 보고 있고."
"정민규 순경은 괜찮습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계속 말해. 내가 그만하라고 했어. 지금 필요한 건 자책이 아니라 당시 들은 말을 정확히 적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규가 선의로 연락했다고 해서 그로 인해 생긴 문제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반대로 그의 실수를 범인의 모든 행동에 대한 설명으로 삼는 것도 틀렸다. 상대는 우리가 서로 책임을 따지는 동안 시간을 벌 수 있다.
오선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도 조심해야 해. 민규한테 빨리 연락처부터 찾아보라고 시킨 사람이 나니까. 결과가 잘못됐으면 지시도 같이 검토해야지." 그녀는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믿었다.
"배정우는 찾았습니까?"
"주소 확인했어. 인천에 있는 집이야. 아직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움직임을 확인 중이야."
"오늘 서울에 온 기록은 없고요?"
"지금까지는 없어. 하지만 기록이 없다는 것과 오지 않았다는 건 달라."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건 이런 순간에 분명해졌다. 서로의 추측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지적해 주는 사람.
"최명환은요?"
"원효로 창고의 CCTV를 보존했다고 했어. 실제로 녹화되고 있는지 현장 인력이 확인했어."
"그 장소에 임소율이 가기로 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요?"
"회사 서류를 회수하기로 한 약속이 있었대. 계약상 회수 장소가 그 창고였고."
"서류는 뭡니까?"
"아직 내용 확인 중이야."
나는 서둘러 범인을 확정하고 싶은 욕구를 눌렀다. 최명환이 정말 범인이라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백한 사람 역시 자신에게 혐의가 닥칠 걸 두려워하며 과하게 협조할 수 있다.
"CCTV가 잘 나오면 좋겠네요."
"그래. 범인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실제 기록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선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진혁아. 현장에는 가지 마. 네가 끼면 누군가는 수사가 민간인에게 휘둘린다고 할 거야."
"알겠습니다."
"임소율도 안전한 곳에 있고, 현장에는 사복 둘이 지켜보고 있어. 만약 누군가 나타나면 우리가 확인할게."
"고생 많으십니다."
"그런 말은 사건 끝나고 해."
나는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지난해 화진모빌리티 문서를 다시 보았다. 법무담당 백이준의 이름이 적힌 한 장의 회신 공문. 그는 당시 자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고, 내가 그 설명의 허점을 지적하자 다른 근거를 보태 다시 답했다. 그때 내 인상은 간단했다. 이 사람은 일의 맥락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범죄자라는 법은 없었다. 똑똑한 사람을 악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금방 좁아진다.
오후 여덟 시 오십일 분, 새 이메일이 도착했다.
봉투 위에 놓인 만 원짜리 지폐 열다섯 장의 사진이었다. 봉투에는 '김동식'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원효로 물류건물 야간 경비원. 오늘 18:12 현금 150,000원 수령. 대가: 21:00~21:20 방문 차량의 출입기록을 작성하지 않을 것.'
나는 즉시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몇 분 뒤 경비원이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돈을 준 사람은 자신을 대리기사라고 소개했고, 출입기록을 잠깐 생략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김동식은 이름도 연락처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봉투 뒤에 적힌 번호 하나만 갖고 있었다.
"그걸 수락했다고요?" 내가 물었다.
"응. 본인이 인정했어."
"왜요?"
"사정이 있었다고 해. 아직 진술 받는 중이야."
오선영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피로가 묻어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부정행위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경계망이 느슨해질 수 있었다. 나는 경비원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가진 자료를 다시 살폈다. 현장 출입구는 차량 한 곳, 사람 출입문 두 곳. 이미 사복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출입기록이 누락돼도 CCTV에 찍힐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15만 원인가.
돈을 받는 사람이 느끼기에는 적지 않으면서, 외부에서 들으면 '그 정도 때문에?' 하고 쉽게 비난할 액수. 뇌물로서는 흔적이 선명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사진이 내게까지 도착한 건 더 이상했다.
'누가 이 사진을 찍었는가.' 나는 종이에 썼다. '왜 경찰이 아닌 나에게 보냈는가.'
문득 사진 속 봉투 아래쪽이 눈에 들어왔다. 접힌 부분에 파란 잉크가 살짝 묻어 있었다. 정산 승인 문서에 쓰이던 스탬프 색과 비슷했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세상의 파란 잉크가 모두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오후 아홉 시 사 분, 오선영이 연락했다.
"출입 차량은 아직 없어. 경비원은 보호 조치했고 출입구는 확인 중이야."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전화하려 하진 않았습니까?"
"돈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어. 봉투 뒤 번호로 전화하겠다고 하는 걸 일단 말렸지."
"잘하셨습니다. 그 번호가 누군가에게 신호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확인할게. 현장에는 절대 오지 마."
전화가 끊겼다. 나는 시계를 봤다. 아홉 시 십일 분. 세 분 뒤에 임소율이 죽을 거라는 문서가 내 책상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문서가 거짓이기를 바랐지만, 막연한 희망으로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9시 12분.
9시 13분.
9시 14분.
아무 연락도 없었다.
9시 19분, 내가 먼저 오선영에게 전화했다.
"현장은요?"
"이상 없어. 임소율도 안전해."
나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예정된 장소와 시각에 예정된 살인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다행이라기보다 우리 편의 성과였다. 누군가가 경고를 의심하면서도 무시하지 않았고, 피해자를 보호했고, 현장에 사람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선배, 이건 우리가 막았습니다."
"그래. 아직 끝났다고 말하진 말자."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무전이 들렸다. 여러 목소리가 빠르게 섞였다. 오선영이 잠시 침묵했다.
"진혁아. 배정우가 발견됐어."
"그럼 소재는 확정됐겠네요."
"죽었어. 인천 집에서."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발견 시각이 언제죠?"
"현장 경찰이 21시 15분에 발견했고 첫 보고는 21시 17분에 올라왔어. 아직 사망 시각이나 원인은 몰라."
그 순간 또 하나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사건기록 송부 — 수정본'. 문서 첫 페이지에서 피해자 이름이 배정우로 바뀌어 있었다. 장소는 인천의 다세대주택. 사건 시각은 21시 14분. 유력 용의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가장 먼저 알고 있던 사람.'
메일 수신 시각은 21시 16분이었다. 경찰의 첫 보고보다 1분 빨랐다.
나는 즉시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첨부파일을 받은 뒤 바로 말했다.
"이걸 미래를 안 증거로 생각하진 마. 15분에 발견한 사람은 보고 전에 이미 알고 있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범인이 현장 주변에서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직접 죽였을 수도 있어. 어느 쪽도 아직 확인 안 됐어."
"그럼 최초 발견자와 보고 경위도 확인해야겠네요."
"이미 하고 있어."
나는 조금 안심했다. 내게는 귀신 같은 정보로 보이는 것들이, 그녀에게는 확인해야 할 시간표였다.
수정된 문서 마지막에는 문장 하나가 더 있었다.
'다음 사건까지 남은 시간: 31시간 42분.'
메일을 받은 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다음 사건은 11월 5일 새벽 다섯 시 무렵이었다. 새벽 시간대를 선택한 이유는 모른다. 사람들의 교대가 잦고 피곤한 때지만, 그것이 범행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두 문서를 나란히 펼쳤다. 같은 글꼴, 같은 서식, 같은 로고. 그러나 첫 사건에서 '피해자'였던 임소율이 살아 있고 '용의자'였던 배정우가 죽었다. 수사가 막은 일이 있었고, 동시에 수사가 확인해야 할 일이 늘었다.
"선배. 혹시 배정우에게 경찰이 연락한 적 있습니까?"
"확인 중이야."
"그가 경찰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그것도 아직 몰라."
나는 문서 맨 아래의 참고인 문장을 보았다.
'서진혁은 배정우를 용의자로 지목한 자료를 경찰에 제공했음을 인정한다.'
그 문장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사실이었다. 나는 문서를 보냈다. 하지만 내가 배정우를 범인으로 단정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 사실의 일부만 남겨 다른 뜻으로 읽히도록 만들었다.
나는 범행을 예고한 발신자보다 수사기록을 작성한 발신자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누가 죽는지만 고르는 게 아니라, 누가 의심을 받을지도 고르고 있었다.
오선영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저도 제가 한 말을 전부 기록하겠습니다. 누군가 제 말의 앞뒤를 잘라 쓰고 있습니다."
"좋아. 대신 네가 본 것을 혼자 증명하려 하지 마. 원본을 보관하고, 확인 가능한 경로로 보내."
전화가 끊겼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9시 28분.
방금 전까지 나는 내일의 살인기록을 보고 미래를 막으려 했다. 이제는 오늘 실제로 죽은 사람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첫 사건에 남겨진 노란 조각 'C-12'가 떠올랐다.
누군가 찍어 놓은 죽음의 사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수정본의 진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준비된 사진을 현실의 사건기록처럼 보이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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