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곱 시 마흔두 분.
오선영에게 전화가 왔다.
"임소율 확보했어. 지금은 안전해."
밤을 거의 새운 나는 어젯밤에 작성한 시간표부터 펼쳤다. 오전의 임소율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문서에 적힌 범행 시각은 오늘 밤 9시 14분이었다. 안도의 대상은 오늘 아침이지 오늘 밤이 아니었다.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
"안 돼. 네가 아는 사이여도 위치는 말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배정우라는 남자 소재 확인 중이야."
"문서에 용의자로 적힌 사람 말입니까?"
"임소율이 그에게 협박받았다고 진술했어. 금액은 3억 8천."
"협박했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문자가 있어. 출처는 확인 중이고."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왜 침묵해?"
"너무 잘 맞아서요. 예고문에 배정우가 범인이라고 적혀 있고, 임소율은 배정우를 의심할 근거를 말했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그쪽을 보길 바라는 것 같아서요."
오선영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한 사람만 보고 수사 안 해. 넌 지난해 화진모빌리티 자료부터 다시 정리해 줘. 추정하고 사실을 반드시 구분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지난해 회사 자료를 펼쳤다. 화진모빌리티는 물류운송 계약을 중개하던 중견업체였다. 한 해 동안 소속 차량 여섯 대가 서로 다른 사고를 냈고, 세 정비업체의 견적서에 같은 계산 오류가 있었다. 나는 보험금 부풀리기를 의심했다. 일부 청구는 조작으로 확인됐지만 결재선을 타고 올라간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임소율은 정산팀 대리로 지급 승인 서류에 이름을 남겼다. 배정우는 최초 작성자였다. 최종 결재권자는 최명환 정산관리실장. 나는 세 사람을 모두 만나려 했지만, 최명환은 회사 법무팀을 통해 면담을 거절했다.
배정우는 지난해 가을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했다. 기록상 병가를 쓴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병이 없었다고 결론 낼 수는 없었다. 그 단순한 원칙을 나는 노트 위쪽에 써 두었다. 의심은 자료를 찾게 하지만 증명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
작년 자료 가운데 유독 이상했던 건 서류 하나였다. 정산 승인일이 8월 19일인데, 수리업체가 대금을 받았다고 표시된 날은 8월 18일이었다. 선지급이 불가능한 거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지급 사유서를 요구하자 회사는 보존기간이 끝났다고 답했다. 1년이 지나지 않은 서류였다. 나는 의뢰사 담당자에게 그 답변이 불합리하다고 알렸지만 추가 조사는 승인받지 못했다.
그때 임소율에게 다시 연락했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런 가정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오늘 내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니라 그녀가 살아남을 방법이었다.
오후 두 시 열여덟 분, 임소율에게 문자가 왔다.
'서진혁 씨. 어머니 다니시는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쓰러지셨대요.'
나는 곧바로 전화했다.
"지금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아직 경찰분들이랑 같이 있어요. 병원에 가야 하는데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라네요."
"대표번호로 왔습니까?"
"그렇다니까요."
"병원에 직접 확인했을 겁니다. 경찰이 하라는 대로 하세요."
"당신은 우리 엄마가 죽어도 상관없죠?"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사람이 내게 화낼 권리는 있었다.
"상관있습니다. 그래서 사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정말 응급실에 계신다면 경찰이 안전하게 모셔다줄 겁니다."
"말은 쉽죠."
전화가 끊겼다.
오선영은 이미 병원에 확인 중이었다. 십 분 뒤 그녀가 알려왔다. 임소율의 어머니는 응급실에 온 적이 없었다. 임소율의 어머니가 정기적으로 진료받던 병원과 정확한 진료과를 누군가 알고 있었다.
"배정우도 그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요?"
내 질문에 오선영은 곧바로 대답했다.
"모른다고 봐야지. 알았다는 증거가 아직 없으니까. 대신 그 병원 정보가 화진모빌리티 가족돌봄휴가 신청서에도 있어. 회사 인사 관련 자료에 접근한 사람은 여러 명이야."
"결국 범인을 한 사람으로 좁히기 어렵군요."
"그렇지. 그리고 어젯밤 연락 경위를 확인했어."
나는 펜을 들었다.
정민규 순경이 회사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직자는 임소율의 개인 연락처를 몰라 인사팀으로 연결했다. 인사팀 직원은 경찰이 임소율을 찾는다는 사실을 직속 상사에게 보고했다. 그 상사가 최명환이었다.
"민규가 수사를 망친 건 아닙니다. 절차대로 하려던 거죠." 내가 말했다.
"아직 실수라고 볼 수는 없어. 긴급한 연락처 확인 자체는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사내 보고가 어디까지 갔는지는 확인해야 해."
"최명환은 뭐라고 합니까?"
"회사 기밀 유출 가능성이 있어서 임소율이 출입하는 시설의 CCTV를 보존하라고 지시했대."
나는 노트에서 눈을 들었다.
"어느 시설입니까?"
"원효로의 옛 물류창고."
어제 받은 문서의 범행 장소였다.
나는 최명환이 경찰보다 먼저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임소율이 약속을 잡은 상대가 회사 관계자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소한 단서가 모두 범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 같은 사건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모든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오선영은 최명환이 CCTV 보존을 지시한 이유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나는 회사 관계도를 다시 그렸다. 임소율 아래에 배정우, 최명환을 적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작은 이름 하나를 추가했다. 백이준. 당시 법무·준법지원실의 담당자였다. 내 면담 요청에 회신했던 회사 측 이메일 서명에 그 이름이 있었다. 조사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오후 네 시쯤 정민규 순경이 나에게 전화했다.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사팀까지 연락이 퍼진 게 제 잘못 같습니다."
"아직 잘못인지도 몰라요. 확인해야 할 사람을 찾았고, 정보가 전달된 거죠."
"경위님이 혼내시진 않았는데요. 제가 좀 더 조심했으면……"
"순경님. 그날 왜 그 방법으로 확인했습니까?"
"당직자가 담당자 연결이 제일 빠르다고 했습니다. 저는 빨리 피해자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럼 당시에는 빠른 방법이었겠네요. 기록만 남겨 두세요. 누구와 언제 어떤 말을 했는지. 나중에 기억에 의존하면 서로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야 할 피해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가지를 생각했다. 적이 유능하다면 우리를 움직이는 데 반드시 돈을 쓸 필요는 없다. 선의와 조급함만으로도 통로가 생긴다.
저녁 일곱 시가 되자 임소율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엄마는 무사하시대요. 아까 화낸 건 죄송해요. 그래도 제가 여기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나는 바로 답했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관련된 사람을 담당 경찰에게 말하세요. 본인 판단으로 나오지 마세요.'
메시지를 보내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이 반복됐다. 그녀는 자신이 죽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가 죽는 걸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임소율의 지난해 통화 녹취 메모를 다시 찾았다. 당시 대화 말미에 그녀가 툭 내뱉은 말이 있었다.
'숫자만 맞으면 사람들이 아무도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
그 문장이 내게는 정산 조작을 암시하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범행 계획도 장부처럼 숫자를 맞추고, 시간을 맞추고, 책임을 맞추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밤 8시 7분, 오선영에게서 현장 보존 준비 상황이 왔다. 원효로 창고에 사복 경찰이 배치됐고, 임소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속을 알리지 않으려고 현장에 가는 인원도 최소로 잡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건물 관리 주체와 출입 허가권자를 각각 확인했습니까?'
그녀가 보낸 답은 짧았다.
'확인 중. 현장에 오지 마.'
나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남들이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는 일은 어렵다. 특히 내게 온 문서 때문에 경찰이 바빠졌다고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내 역할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그날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지난해의 결재자료를 다시 읽으며 거짓말의 최초 발생 지점을 찾는 것.
나는 지급 승인 기록 세 장을 나란히 두었다. 날짜는 달랐지만 승인 요청서 아래쪽에 같은 문구가 있었다.
'원본 확인 후 폐기.'
서류 세 장 모두 한 사람의 서명이 없었다. 마지막 검증을 담당한 사람이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빈칸의 의미를 몰랐다. 단순한 양식 오류일 수도 있었다.
지난해 그 빈칸을 문제 삼았을 때 회사 담당자는 결재 프로그램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인쇄 양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교체 일정표를 요청했고, 담당자는 곧 제출하겠다고 했다. 결국 그 일정표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는 정산 금액을 확인하는 게 계약상 우선순위라 넘어갔지만, 오늘은 그 누락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작년의 내 보고서도 다시 읽었다. 결론에는 '조직적인 가담 여부는 추가 확인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 그 문장 가운데 '조직적인 가담'만 잘라 보여 준다면, 나는 이미 회사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판단한 사람이 된다. 발신자가 내 말을 이용하는 방식도 그런 것일 수 있었다.
그때 오선영에게 전화가 왔다.
"배정우 소재를 거의 확인했어. 그런데 진혁아, 최명환이 경찰에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어."
"나쁜 일은 아니죠."
"그렇지. 문제는 그 사람이 임소율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누구보다 먼저 했다는 거야."
"그건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그 회사 내부 통화기록에 남았어. 어제 경찰 연락을 받은 직후, 최명환이 인사팀에 '임소율 찾으면 절대 혼자 보내지 말라'고 했대."
나는 수첩을 덮었다. 피해자를 보호하라는 말은 옳다. 옳은 말이 의심스럽다고 해서 바로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최명환이 왜 임소율에게 위험이 닥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는 물어봐야 했다.
"선배. 그 사람이 보호를 요청한 이유를 물어보셨습니까?"
"물었어."
"뭐라고 답했죠?"
"회사 내부에서 갈등이 심했고, 배정우가 앙심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대."
"그럴 수 있겠네요."
"너답지 않게 순순히 인정하네."
"가능성은 인정해야죠. 증거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통화를 끊고 노트에 한 줄을 더 썼다.
'최명환은 경찰보다 먼저 위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을 만든 사람인지는 아직 모른다.'
아래쪽에 덧붙였다.
'왜 범인은 임소율을 죽이려는 시각까지 정확하게 알려 줬을까?'
누군가 정말 살인을 완수하려 한다면, 그렇게 상세한 예고를 하는 건 불리하다. 그러나 우리의 움직임을 보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제야 조금씩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으려는 건 살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여준 살인 계획의 한 가지 버전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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