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돈 때문에, 두려워서, 누군가를 지키려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마지막 부류를 가장 싫어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내게 도착한 이메일은 그동안 조사했던 어떤 거짓말보다 이상했다.
발신자 주소가 비어 있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것과 실제로 없는 것은 다르다. 나는 메일 프로그램의 표시 오류일 가능성부터 생각했다.
제목은 단순했다.
[사건기록 송부 — 2026.11.03]
모니터 오른쪽 아래 날짜는 11월 2일이었다. 밤 10시 16분. 내일 날짜의 사건기록이라니. 누군가 법률 용어에 익숙한 척하려고 어설프게 만든 문서일 수도 있었다.
나는 서진혁, 서른넷. 보험사기 조사관으로 일곱 해를 보낸 뒤 개인 조사사무소를 열었다. 경찰도, 검사도 아니다. 의뢰 계약과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거래 기록과 진술을 맞춰 보는 사람이었다. 자격을 과시할 명함도, 벽에 걸어 둘 표창장도 없었다. 대신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보낸 항의 메일은 꽤 많았다.
사무실은 낡은 건물 4층, 열두 평. 비가 오면 창틀 아래에 수건을 대야 했고, 냉장고 문은 한 번에 닫히지 않았다. 사무실의 유일한 장점은 밤늦게까지 누가 들어와도 건물주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첨부파일을 바로 열지 않고 메일 원본을 따로 저장했다. 발송 경로와 수신 시각을 나중에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파일은 일반적인 PDF였고, 내부에 삽입된 외부 링크나 별도의 실행 파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 연결을 끊은 보조 컴퓨터에서 문서를 열었다.
첫 장에 '서울용산경찰서 형사과 사건발생보고서'라고 쓰여 있었다. 사건번호는 공란이었다. 사건 발생 일시는 2026년 11월 3일 오후 9시 14분. 장소는 용산구 원효로의 폐업한 물류회사 건물 지하 2층. 피해자 임소율, 서른하나. 사인은 둔기에 의한 두부 손상 추정. 유력 용의자는 배정우.
임소율.
나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지난해 화진모빌리티의 보험금 부정청구 사건을 조사하면서 만났던 정산팀 대리였다. 지급 승인 문서에 서명했지만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서 조사관님.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 뒤로 연락을 끊었다. 누구나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 범죄와 연결되는지는 증거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추가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고 사건은 의뢰 범위 안에서 끝났다.
보고서를 넘겼다. 세 장의 사진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바닥, 떨어진 여성용 손목시계, 그리고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노란색 플라스틱 조각. 마지막 사진에는 검은색으로 'C-12'가 인쇄돼 있었다. 손은 얼굴보다 거짓말을 덜 하지만, 사진 속 손이 정말 임소율의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음 장에는 '참고인 서진혁'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참고인은 사건 전날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을 인지하고 경찰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고 진술함.'
누군가 살인을 예고하면서, 그 예고를 받은 나를 사건 속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 이건 불쾌한 장난을 넘어선 문제였다.
나는 가능성을 적었다. 첫째, 문서를 위조한 장난. 둘째, 실제 범행을 준비한 사람의 예고. 셋째, 나를 특정 장소로 끌어들이려는 함정. 넷째, 내가 아직 모르는 목적.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가정은 맨 아래에도 쓰지 않았다.
나는 사건번호가 비어 있다는 점에도 표시했다. 정상적인 경찰 문서라면 작성 시점과 절차에 따라 번호 부여 상태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서는 번호가 없는 동시에 완성된 사망 원인과 참고인 진술을 적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서식 복사이고 어디부터 누군가의 상상인지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해 나는 의뢰인의 제보를 한 번 너무 빨리 믿었다가 일주일을 허비한 적이 있었다. 사진에 찍힌 차량 번호가 사기 의심 차량의 번호와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폐차된 번호판이 다른 차량에 잘못 부착된 것이었다. 그 사건에서 배운 교훈은 간단했다. 사진 속 숫자가 맞더라도, 사진을 설명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맞는 것은 아니다.
나는 PDF를 화면에 띄워둔 채 별도의 메모창에 문서에서 확인되는 사실만 타이핑했다. '파일이 도착했다.' '임소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내일 날짜가 적혀 있다.' 명백해 보이는 문장 세 개만 남기고 나니 살인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서류에 임소율의 집 주소는 없었다. 휴대전화 번호도 없었다. 그러나 내 옛 자료에는 번호가 남아 있었다. 바로 전화하기 전에 잠깐 고민했다. 거짓 경고를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고가 진짜인데 연락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도 피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신호음에 연결됐다.
"여보세요?"
"임소율 씨 맞습니까?"
"누구세요?"
"작년에 화진모빌리티 건으로 연락드렸던 서진혁입니다."
반대편이 조용해졌다. 이름을 알아들은 사람의 침묵이었다.
"왜 전화하셨어요?"
"혹시 최근 누군가에게 협박받으셨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나는 질문 대신 질문이 돌아오는 상황을 싫어했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반응하기도 한다. 물론 단순히 경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게 이상한 문서가 왔습니다. 내일 발생한다는 살인사건 기록입니다. 거기에 임소율 씨 이름이 있어요."
그녀는 내 안부도 묻지 않았다.
"장소가 어디예요?"
"원효로에 있는 옛 물류회사 건물 지하 2층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바닥에 부딪혔다. 뒤이어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거기는…… 내일 제가 가기로 한 곳인데요."
나는 펜을 들었다.
"누구를 만나기로 했습니까?"
"말할 수 없어요."
"장소를 누가 정했습니까?"
"그것도요."
"그럼 약속을 취소하세요."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취소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진작 취소했죠."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직접 경찰과 이야기하셔도 좋고요."
"안 돼요. 경찰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사망 예고를 받았습니다. 신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진짜 죽어요."
"누가요?"
답변이 없었다. 멀리서 문이 열렸다. 그녀가 누군가와 짧게 인사하는 소리, 발소리, 다시 닫히는 문소리. 전화가 끊겼다.
재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번호와 통화 시각을 기록하고, 경찰에 신고한 뒤 지난해 함께 일했던 오선영 경위에게 연락했다. 용산경찰서 강력팀 소속. 오선영은 내가 아는 경찰 중 확인되지 않은 확신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서진혁,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살인 예고를 받았습니다."
"그럼 신고부터 해."
"했습니다. 그런데 내일 날짜의 수사보고서가 왔어요. 피해자에게 확인했더니 정말 그 장소에 갈 예정이랍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의자가 밀렸다.
"자료를 원본 그대로 보내. 네 해석 붙이지 말고."
"원본과 제가 적은 참고사항은 구분하겠습니다."
"피해자에게 또 전화하지 마. 임의로 현장에도 가지 말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오선영이 다시 말했다.
"진혁아. 네가 아는 사이라고 해서 이걸 네 사건으로 만들진 마. 우리가 움직일 수 있게 사실만 보내."
그 말이 옳았다. 나는 문서와 통화 경위를 정리해서 보냈다. 사무실에 혼자 남으니 낡은 에어컨의 팬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사건 전 경과'를 다시 읽었다. 이상하게도 기록은 사망 예고보다 내 행동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22:16 — 서진혁, 전자우편 수신.
22:27 — 피해자 임소율에게 전화.
22:38 — 오선영 경위에게 전화.
23:07 — 참고인 서진혁, 예고된 기록의 시간정보가 실제 상황과 일치한다고 판단.
나는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임소율에게 건 시간은 22시 27분, 오선영은 22시 38분. 둘 다 맞았다. 내 손끝이 차가워졌다. 내가 통화할 상대를 범인이 미리 알았다면 시각도 어느 정도 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 단위의 일치가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불편했다.
현재 시각은 10시 45분. 23시 7분까지 스물두 분 남았다. 그 시각에 무슨 일이 벌어져야 내가 '일치한다고 판단'하게 되는 걸까. 나는 그 문장을 읽은 사실부터 메모했다. 결과를 알면 누구나 원인을 끼워 맞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창밖 도로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멈췄다. 운전자는 헬멧을 벗고 전화기를 들여다봤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행인을 감시자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이미 상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일부러 카메라가 없는 벽을 등지고 앉았다. 누가 나를 볼 수 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확인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10시 56분, 오선영에게 문자가 왔다.
'피해자 긴급 안전 확인 중. 기다려.'
그 문자까지 미리 적혀 있지는 않았다. 나는 작게 안도했다. 문서가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그런데 11시 7분이 되는 순간 메일 알림이 울렸다.
'첫 번째 사건을 막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서 조사관님이 경찰에 연락하신 사실은 이미 상대방에게 전달됐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여러 번 읽었다. 받은 시각은 23시 07분. 누군가 내가 그 시각을 기다릴 것을 계산하고, 정확한 순간에 확인할 만한 내용을 보냈다. 나는 예고문에 있는 판단을 실제로 내리고 있었다.
곧바로 오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제가 보낸 자료 누구한테 보여줬습니까?"
"당직 팀장에게 설명했고 정민규 순경에게 피해자 연락처 확인을 지시했어. 왜?"
"경찰에 연락한 사실이 상대에게 전달됐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확인부터 부탁드립니다."
"경찰 내부에서 샜다는 뜻으로 단정하지 마. 내가 알아볼게."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민규가 회사 당직 담당자에게 연락했어. 임소율 연락처를 찾으려고."
"경찰이 찾는다는 것도 알렸겠죠."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지금 통화 내용 확인 중이야."
그녀는 신중했다. 나 역시 단정할 수 없었다. 경찰 연락은 정상적인 안전 확인 절차였다. 잘못이 있다면 범인이 아니라 우리 편에서 나온 실수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실수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봤다.
'상대방에게 전달됐습니다.'
상대방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발신자가 정말 피해자를 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왜 '범인'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이 사람은 우리가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까지 고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적었다.
'이 문서에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가 아니었다.
'이 문서로 인해 누가 움직이게 되는가?'
그 질문의 답에는 이미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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