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금요일 오후, 한유리가 예정했던 기사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압력을 받은 줄 알았다.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부끄러워졌다.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외부 간섭을 의심한 것은 내 편견이었다.
한유리는 내 전화를 받고 짧게 말했다. "제가 내렸어요.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 있었거든요."
"어떤 문장이요?"
"온새문서지원의 변경 이력에 접근한 계정이 화진모빌리티 내부 계정이라고 적었어요. 그런데 확인해 보니 공동으로 쓰는 외부 업무 계정이었고, 접속 장소도 특정되지 않았어요."
"그럼 작성자를 단정할 수 없겠네요."
"그래서 내렸죠. 편집국에서 싫어하더라고요. 이미 예고까지 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지쳐 있었다. 나는 얼마 전 정정 보고서를 낸 뒤 계약이 보류됐던 기억을 떠올렸다.
"다음에는 더 나은 문장을 쓰면 됩니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 기자에게 마감은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 끝나는 일이에요."
나는 사과했다. 같은 원칙을 지켜도 사람마다 치르는 비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녀는 잠시 후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내린 건 후회 안 해요. 그 계정이 특정 회사 사람의 것이라고 쓰는 순간, 실제 범인이 아니라 제 기사 때문에 누군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거든요."
오후 세 시, 내가 받지 않은 이메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익명 발신자가 이번에는 한유리의 편집장에게 정민규의 휴대전화 화면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낸 것이었다. 사진에는 누군가가 수사자료를 외부로 넘겨주는 대화가 표시돼 있었다.
한유리는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내부 회람용 질문지에 담긴 구절 하나가 그대로 포함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며칠 전 잘못된 수신 그룹으로 보낸 질문지였다.
"내가 밖으로 보낸 질문을 누군가 가짜 증거의 대사로 쓴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진 속 대화가 진짜인지 의심해야겠네요."
"더 정확하게는, 적어도 그 문장 하나는 내 질문지와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자신의 실수로 흘린 문장을 다시 위조 자료에 넣었다면, 그 위조의 출처를 좁히는 데 그 실수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했다.
한유리는 편집장과 상의해 그 사진을 기사로 싣지 않았고, 원본 수신 경위를 경찰에 전달했다. 대신 '수사자료 유출 의혹'이라는 제보가 있었지만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당장은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기사 한 줄이 정민규에게 또 다른 혐의를 만들 수 있어서였다.
나는 정민규에게 그 일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 오선영이 필요한 범위에서 전달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이 흔들릴 만한 일이 생겼다는 건 알았다.
오선영은 저녁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정민규가 물었어. 제 실수 때문에 계속 사건이 엉키는 것 같다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한 실수는 네가 책임지면 된다. 다른 사람이 가짜 증거를 만든 책임까지 네가 질 필요는 없다고 했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애가 이런 말을 하더라. 상대가 자기 이름을 쓰는 걸 막으려고 이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대."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무력감이란 때로 죄책감보다 위험하다. 누군가 잘못을 이용해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일도 하지 못한다.
"그럼 작은 일부터 다시 맡기세요. 정확히 할 수 있는 일로요."
"이미 맡겼어. 올해 사건과 관계없는 장부의 문서 번호 대조부터. 그건 민규가 잘해."
선배는 그에게 무죄를 보장하지 않았다. 징계 절차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만든 악의 때문에 그의 능력 전체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한유리는 기사를 내린 뒤 편집국에서 공개된 정정 절차를 검토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기사가 나간 것은 아니지만, 예고한 내용에 오류가 있었다면 독자가 기대했던 기사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설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보고서 정정 문제와 비교했다. 나도 기존 문장을 그냥 지우지 않았다. 전후 버전을 함께 남겨 어떤 판단이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고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우리를 변덕스럽다고 비웃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비웃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체면을 지키려고 한번 쓴 문장을 끝까지 끌고 가다가, 정작 그 문장 때문에 다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다시 지난해의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는 '정정 요청 접수'라는 칸이 있었다. 숫자는 바꾸지 않고 책임을 누가 지는지만 고칠 때 사용하는 항목이었다. 배정우가 마지막 통화에서 했다는 말과 연결되는 부분이었다.
그때 한유리가 또 연락했다. 그녀는 온새문서지원에서 오래 일하다 나온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했다. 취재에 동의했지만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무슨 말을 했답니까?"
"업체에서 고객이 준 내용을 그대로 정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문서 제목을 고치거나 수신자별 표를 만드는 일이 있었다고요."
"회사 업무라면 있을 수 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걱정하는 건 한 가지예요. 정렬을 담당하던 사람이 고객에게 보내지 않은 초안도 따로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조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초안이 있으면 누가 무엇을 추가했는지 비교할 수 있겠네요."
"네. 다만 제보자가 실제로 본 파일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야 해요."
"경찰에 연결할 수 있습니까?"
"본인이 원하면요. 지금은 보복이 무섭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박혜림의 계약 문제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경찰에 협조하는 일의 비용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밤 아홉 시,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제보자의 고백'. 나는 정해 둔 절차에 따라 원본을 보존하고 위험 여부를 확인한 뒤 경찰에 전달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한유리 기자가 자기 기사를 지웠습니다. 다음에는 오선영이 자기 보고서를 지우겠죠.'
나는 화가 났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은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사회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스스로 잘못을 고치면, 그 사실을 약점으로 만들어 다음에는 고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유리는 이번에 기사 수정 사실을 공개했다. 편집국은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했고, 잘못된 문장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했다. 발신자의 예상이 완전히 맞았다고 볼 수 없었다.
나는 한유리에게 말했다. "당신이 기사를 지운 건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당신이 선택한 겁니다."
"맞아요. 그리고 그 선택을 누군가 자기 승리처럼 써먹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
그날 밤 늦게 오선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온새문서지원이 과거 초안 일부를 제출했어. 한 가지 다른 부분이 확인됐어.'
나는 서둘러 답장을 썼다. '무엇이 다른데요?'
그녀의 답은 짧았다.
'원래 표에는 내 이름이 없고, 네 이름이 있었어.'
나는 휴대전화를 오래 바라봤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고 다른 이름을 넣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뀐 한 칸 때문에 우리는 며칠 동안 오선영이 다음 피해자인지 고민했다.
내 이름이 표에서 사라진 이유가 처음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우고 선배를 넣어,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그 표의 이름을 바꾼 사람이, 처음 사건기록을 보낸 사람과 같은 인물인가.
그것만큼은 새로 확인해야 했다.
제2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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