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27화
PAYLUA ORIGINAL · 제27화

27화. 사라진 십사 분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687자

오프라인 책장
11월 19일 목요일. 나는 시계를 세 개 놓고 같은 시간을 맞춰 봤다. 책상 위 전자시계, 손목시계, 오래된 휴대전화였다. 일부러 하나를 십사 분 늦게 돌려 놓자 평범한 순간이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원효로 창고 영상에 찍힌 차량의 시각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한 카메라의 화면에는 9시 14분에 차량 그림자가 나타났고, 경찰은 원본 시각 보정 뒤 실제로는 9시 11분 무렵일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 화면에 나타난 차량이 출입구에 들어왔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여기에 새로운 기록이 하나 더해졌다. 건물에 설치된 출입관리 장치의 시각이 한동안 실제 시각보다 십사 분 늦었다는 정비 메모였다. 두 장치의 오차가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 두 시계를 무작정 더하거나 빼면 존재하지 않는 이동 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오선영이 말했다. "진혁아, 이 장치는 CCTV 녹화장치랑 달라. 같은 건물에 있다고 같은 오차를 적용하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치마다 기준이 되는 외부 기록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우리가 하고 있어. 현장 통신 기록, 차량 출입 대장, 경비원의 근무일지도 봐야 하고." 나는 자판에 손을 얹었다. 사라진 영상은 되살릴 수 없었다. 대신 영상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사라지기 전 어떤 시간을 가리켰을지 검증할 수는 있다. 그 차이는 크다. 상대는 우리가 '없다'는 말을 '범인이 지웠다'로 바꾸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민규는 이날 정식 경위서 보충 조사에 다시 출석했다. 그의 업무 실수는 징계 절차에서 검토 중이었고, 가짜 인계서에 관한 의혹은 별도로 수사되고 있었다. 선배는 그를 특별히 감싸지 않았다. 다른 동료가 그의 실수를 대신 떠안게 두지도 않았다. 오후 두 시쯤 정민규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사관님, 지난해 보관 업무 매뉴얼을 확인해도 됩니까?" 오선영이 사전에 요청을 승인했다고 했다. "어느 부분입니까?" "기록 장치의 시간을 맞출 때 누가 확인 서명을 남기는지요. 그게 외주업체 업무인지 창고 경비 업무인지 구분하려고요." 나는 매뉴얼을 찾아 보냈다. 일반적인 장치 점검은 외주업체가 했지만, 현장 근무자는 점검 전후 상태를 확인하도록 돼 있었다. 업무가 겹치는 곳에서 책임은 쉽게 흐려진다. "정민규 순경. 지금 확인하려는 건 장치가 틀렸다는 사실입니까, 누가 일부러 틀리게 했다는 겁니까?" 그가 잠시 생각했다. "전자를 먼저 확인합니다. 후자는 증거가 나오면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로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한편 정비업체의 담당자가 왜 시간을 바로잡지 않았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오선영은 정기 점검 계약과 당일 긴급 출동 기록을 확인 중이라고 했다. 만약 더 위험한 설비 고장 때문에 시계 조정을 미뤘다면 게으름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부정확하다. 반면 고장 사실을 보고받은 관리자가 아무 이유 없이 수리를 방치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처음 사건을 맡았을 때 경비원과 순경의 실수에 유독 화를 냈다. 그 사람들의 행동이 실제로 피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과,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찾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 관리자가 점검 체계를 고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범인이 없어도 같은 허점이 남을 것이다. 잘못의 대가는 필요하지만, 처벌만으로 장치의 시간이 맞춰지지는 않는다. 오후 네 시, 김동식이 경찰에 추가 진술을 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그는 15만 원을 받은 뒤 출입 대장 작성을 생략하라는 말을 들었으나, 막상 의심스러워져 메모지에 차량 특징을 적었다고 했다. 그 메모는 당일 근무복 주머니에 남아 있었다. 수사기관이 확보해 진위를 확인하고 있었다. "왜 이제 내놓은 겁니까?" 나는 물었다. 오선영은 답했다.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나서 겁났대. 그 메모를 보여 주면 자기가 더 큰 잘못을 했다는 증거가 될까 봐 숨겼다고." "메모에는 뭐가 적혀 있답니까?" "네가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니야. 다만 시간과 차종 비슷한 단어가 있어. 그게 실제 목격인지 나중에 기억으로 적은 건지도 확인해야 해." 나는 그 질문에서 김동식의 비겁함과 뒤늦은 양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뇌물을 받았다. 그것만으로 이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할지 모르는 자료를 내놓았다는 행동은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저녁에 한유리는 경비원이 단순히 15만 원 때문에 사건을 망쳤다는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영상이 소실됐는지, 경비원의 행동이 무엇을 바꿨는지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인을 찾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을 더 나쁜 범죄의 가해자로 써 버리면 실제 범인이 좋아하겠죠." 나는 대답했다. "그럴 수 있겠네요. 다만 김동식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마세요." "물론이죠. 진짜 잘못을 정확히 쓰는 게 더 어렵지만요." 그날 밤 오선영이 내게 확인된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 창고 출입관리 장치의 정비 메모는 실제 존재했다. 하지만 메모가 적힌 날짜는 살인 예고 전날이 아니라, 일주일 전이었다. 정기 점검 중 오차를 발견했고, 다음 점검 때 조정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근무 담당자는 바뀌지 않았고, 나중으로 미룬 이유는 다른 설비 고장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게으름 때문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어. 점검 순서를 정한 관리자 책임도 볼 거야. 무엇보다 그 장치가 왜 아직 틀렸는지가 중요하지, 누군가 게을러서 그랬다고 먼저 낙인찍을 일은 아니야." 그녀의 말이 옳았다. 범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결함을 알고 이용했을 수 있다. 그 결함을 만든 사람이 반드시 공범은 아니다. 나는 원효로 창고 평면도를 봤다. 출입관리 장치가 붙은 문은 차량 출입구가 아니었다. 창고 안쪽 기록보관실로 가는 관리통로였다. 누군가 그 문을 통과한 기록이 있다면 시간 보정부터 해야 한다. 오선영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진혁아. 십사 분을 잘못 보정한 제보문이 기자에게 왔어. 그걸 따라가면 특정 직원이 마치 사건 시각에 문을 연 것처럼 보여." "그 직원이 누구입니까?" "그 이름을 네가 알 필요는 없어. 지금은 그 사람의 알리바이도 확인 중이야." 나는 알겠다고 했다. 잘못 맞춘 시계 하나로 무고한 사람이 용의자가 될 수 있었다. 한유리는 다음 날 그 제보문을 기사로 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살리는 결정은 언제나 현장 출동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문장을 공개하지 않는 일도 누군가의 삶을 지킨다. 그런데 내게 도착한 새 이메일은 정반대의 일을 요구했다. '십사 분을 바로잡으면 문 앞에 있던 사람이 보일 겁니다.' 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오선영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상대가 이미 잘못된 보정값을 여러 곳에 보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확한 보정은 원본과 독립 기록으로만 확인해야 합니다.' 오선영은 '동의'라고 답했다. 나는 그제야 발신자의 실패를 한 가지 발견했다. 그 사람은 우리가 틀린 시계를 서로 다른 장치에 똑같이 적용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사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대가 가진 정보가 많아도, 우리가 모든 지시에 응할 필요는 없었다. 창문 밖에 눈비가 섞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틀린 시계를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시간이 정확해져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누군가를 잘못된 시간에 가두는 일은 줄일 수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