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은 내가 만나 본 회사 임원 중 가장 협조적인 사람처럼 행동했다. 적어도 말로는 그랬다.
11월 18일 수요일, 그는 화진모빌리티 명의의 공식 입장문을 냈다. 회사는 보험금 부풀리기 의혹을 재검토하고, 필요한 자료를 적법한 범위에서 수사기관에 제공하며, 관련 근로자의 불이익 여부도 확인하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든 듣기 좋은 문장이었다.
나는 한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제로 자료는 제출했답니까?"
"수사기관에 제출했다는 접수 사실은 확인했어요. 다만 목록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협조를 안 한다고 쓸 수도, 전부 제출했다고 쓸 수도 없겠군요."
"그걸 확인하려고 기자 하는 거죠. 그런데 다른 매체에서는 벌써 회사가 진실 규명에 앞장선다고 써요."
나는 입장문을 다시 읽었다. 고용 문제에 관한 문장은 '확인'이었다. 복직이나 보상을 약속하지 않았다. 나는 그 선택이 법무팀의 계산임을 짐작했지만, 합리적인 법적 방어와 범죄 은폐는 다른 문제다. 백이준이 법률 전문가라는 이유로 범죄자일 수는 없었다.
오전 열한 시, 오선영은 내가 받은 입장문과 경찰에 실제로 제출된 자료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회사는 C-12 관련 정산표의 복사본과 당시 외주업체의 색인표를 함께 제출했다. 그런데 내가 본 익명 이메일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회사가 제출한 색인표에는 오선영의 이름이 없었다.
"그럼 발신자가 경찰관 이름을 추가한 겁니까?" 나는 물었다.
"누군가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아졌지. 다만 회사가 제출한 게 원본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출처를 더 볼 거야."
"지난번 업체 문서의 버전 번호는 확인됐습니까?"
"처음 발견한 '04'는 페이지 번호일 가능성이 있어. 업체의 문서 보관 규칙을 확인하는 중이고."
나는 노트에 적은 '네 번째 판' 가설을 지웠다. 지운 자리에 삭제선을 긋고 날짜를 써 놓았다. 내가 한때 믿었다는 사실까지 남겨야 했다.
점심 무렵 백이준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의 공식 대리인 자격으로 연락한다며 녹음 여부를 먼저 확인했다.
"서 조사관님. 최근 외부에서 저희를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이메일이 여러 사람에게 보내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사관님은 계속 저희 회사의 지난해 장부를 분석하고 계시더군요."
"제 의뢰 사건의 기존 자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회사 자료를 임의로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일부 숫자가 언론에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그의 말은 정확했다. 내가 계산한 1억 8천만 원도 확정된 손실액이 아니었다. "저도 같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백이준이 잠깐 침묵했다. "그렇다면 기자에게서 연락이 오면, 확인되지 않은 금액을 회사가 빼돌린 돈이라고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박혜림 씨의 계약 문제는 회사가 고용주가 아니라서 바로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협력사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 말도 기록했다. 그가 정말 도우려는지, 회사의 책임을 줄이려는지는 한 문장으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이 이뤄지는가였다.
통화가 끝나기 직전 내가 물었다. "변호사님. 혹시 온새문서지원의 전자 색인에 외부에서 이름을 추가할 수 있었습니까?"
"그 회사가 사용하는 시스템을 제가 직접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정 권한과 변경 기록을 보존하도록 요구한 상태입니다."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제출해 주십시오."
"그럴 예정입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너무 매끄럽게 대답한다는 이유로 의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수정 이력을 보존하겠다는 조치가 있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진짜 협조자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백이준의 통화 녹음을 다시 들으며 나는 그의 말투를 분석하지 않기로 했다. 평온한 목소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의 증거도, 위험한 사람의 징후도 아니다. 그는 업무상 회사의 위험을 최소화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일이 범죄를 감추는 것과 일치할 때도 있겠지만, 회사가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면 보호해야 할 자료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날짜와 약속뿐이었다. 수정 기록을 보존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주장, 수사기관에 제출하겠다는 의사, 박혜림의 계약문제를 확인하겠다는 설명. 나는 세 가지를 서로 다른 항목으로 분리해 놓았다. 나중에 하나가 거짓으로 드러나도 나머지 사실까지 자동으로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단서를 찾는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메일을 받고 얼마 동안 너무 빨랐다. 피해자와 용의자가 적힌 칸을 보자마자 사람들의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속도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네 시, 정민규는 공식적으로 수사팀에 문서 하나를 제출했다. 온새문서지원의 옛 업무 지침이었다. 수정 요청을 받을 때 반드시 고객 담당자의 접수 번호를 기입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내부 예외 조항에는 긴급 연락이 오면 담당자 이름만으로 먼저 수정하고 나중에 승인 번호를 보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편리하겠네요." 내가 말했다.
오선영은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의 업무가 저렇게 돌아가.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서류는 나중에 맞추는 거지."
"그리고 나중에 맞춰진 서류만 보면 누가 먼저 지시했는지 알기 어렵겠군요."
"그래. 그래서 메신저와 통화기록도 별도로 대조하고 있어."
나는 그제야 최명환이 원효로 CCTV를 먼저 보존하라고 지시한 일을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숨기려면 기록을 없애는 방법만 쓰지는 않는다. 보존을 요청해 정당한 명분을 남기면서 다른 기록의 생성을 통제할 수도 있다. 반대로 진심으로 위험을 막으려 했을 수도 있었다.
저녁에 박혜림이 짧은 답장을 보냈다. 회사의 협력사가 계약 갱신 거절 사유를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했다. 좋은 소식이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제 말도 들어준대요.'
나는 답했다. '그 말을 문서로 남겨 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녀가 곧장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냈다. 나는 그것이 이 사건에 끼어든 이후 처음 받아 본 가벼운 답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밤, 익명 이메일이 왔다.
'선의로 행동한 사람과 선의를 연기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날 확인된 행동만 세었다. 회사는 자료를 제출했고, 백이준은 수정 이력 보존을 요구했으며, 박혜림의 고용 문제가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것들은 결과였다.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면 고쳐 쓰면 된다.
다음 날 아침 오선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이준이 제출했다는 수정 이력 말이야. 일부가 실제로 남아 있어. 그런데 누가 이상한 명단을 고쳤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왜요?"
"수정 접수자가 하나의 공용 계정으로 표시돼 있거든."
나는 눈을 감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만든 편의가 다시 책임의 주인을 지우고 있었다.
오선영은 덧붙였다. "그리고 공용 계정으로 접속한 시간에 누가 근무했는지 확인하려면, 업체의 교대근무 기록을 봐야 해."
"그 기록은 남았습니까?"
"남았대. 하지만 열람을 요청하자 어제 밤부터 내일까지 담당자가 휴가라는 답이 왔어."
휴가가 범죄는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누가 그 시간을 이용할지는 별개였다.
나는 새 줄을 적었다. '협조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협조의 속도를 결정하면 상대의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
제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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