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을 찾는 사람은 보통 마지막 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 생각부터 의심하기로 했다.
11월 14일 토요일, 남궁태식의 진술 일부를 정리하던 오선영이 내게 연락했다. 그는 2025년 8월 19일 원효로 보관실에서 C-12 봉인표가 붙기 직전 두 묶음의 문서를 보았다고 했다. 한 묶음에는 지급 승인 내역이, 다른 묶음에는 거래를 되돌리거나 바꿔 적는 정정 이력이 들어 있었다.
"남궁태식 씨가 그걸 직접 읽었답니까?" 내가 물었다.
"첫 장의 제목만 봤대. 마지막 장 내용은 못 봤다고 해. 그리고 종이를 따로 빼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누가 말했는지는 여전히 특정하지 못해."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합니까?"
"작업장 소음이 컸고 여러 사람이 있었대. 처음에는 남자였다고 하더니 지금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태식이 기억을 정정한다고 해서 그의 말 전체가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었다. 확신하지 못하는 대목을 구분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오선영은 이어 말했다. "창고에 남은 장부 첫 페이지를 다시 대조했어. 8월 19일 이후 발급된 출력물에서는 페이지 번호가 하나씩 밀려 있더라."
"누락한 장이 한 장이라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야. 양면 출력 설정이 바뀐 흔적도 있어. 누군가 빼냈다고 결론 내리기엔 일러."
그녀는 늘 내 머릿속에서 자라는 확신을 잘라냈다. 그러나 그 칼날 덕분에 나는 헛디딜 곳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해 자료를 다시 폈다. C-12 상자에 있던 문서를 내가 직접 다루지는 못했다. 대신 당시에 보험사로부터 적법하게 전달받은 지급명세서와 거래처별 영수증이 있었다. 종이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 돈을 받은 쪽과 승인한 쪽이 같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3억 8천만 원을 계산했다. 작년 보고서에는 승인금액과 장부상 지급금액 사이의 차이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중 1억 2천만 원은 이미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록된 상쇄 거래였다. 나머지 2억 6천만 원도 곧바로 횡령액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숫자 옆에 '추가 검증 필요'라고 적었다. 어떤 결론이든 확인된 거래의 합계보다 커질 수는 없었다.
점심을 먹으려다가 박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직접 통화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나는 먼저 그녀가 경찰 조사와 관련 없는 상담을 원하는지 확인했고, 필요한 부분은 오선영에게 사전 설명했다.
박혜림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만난다고 사람들이 알아도 되나요?"
"지금은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전화도 기록을 남겨두고요. 원하시면 담당 형사를 통해 얘기하셔도 됩니다."
"그냥 하나만 물어볼게요. 계약이 끝나면 제가 잘못한 게 되는 건가요?"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계약이 끝났다는 사실과 일을 잘못했다는 건 다릅니다. 회사가 쓴 사유가 사실인지도 따로 봐야 합니다. 법률 상담을 받으셨습니까?"
"받았어요. 서류가 더 필요하대요. 근데 회사에서 제가 만졌다는 C-12 상자의 위치를 적으라고 해요. 저는 그날 상자 앞에도 안 갔는데."
"그러면 가지 않았다고 적으세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적으라고 해도 자신이 확인하지 않은 내용을 쓰지 마세요."
그녀가 아주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쓰면 또 일자리를 못 구할 것 같아요."
나는 실질적인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라는 말만으로 그녀의 생계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도 거짓 진술을 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제가 아는 노동 상담 창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하진 않겠습니다."
"괜찮아요. 약속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거든요."
통화가 끝나고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사람의 안전을 지키려는 선택이 그의 다른 삶을 곧바로 구원하지는 않는다. 그 불편한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범인보다 훨씬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남궁태식이 처음 보았다는 두 묶음의 봉투 색깔도 다시 확인했다. 오선영은 색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작업장 조명이 노랬고, 기억에는 회색과 갈색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진과 진술을 나란히 놓고 같은 물건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경계했다.
사건을 추적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조각을 맞춰 완성된 그림을 만들고 싶어 한다. 조각 하나가 비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러나 빈자리를 마음대로 채우는 순간, 퍼즐은 정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아질 뿐이다. 나는 빈칸에 일부러 물음표를 크게 그렸다.
오후 네 시, 정민규가 공식 경로를 통해 오래된 문서 출력 형식의 질문을 보냈다. 나는 2025년 당시 인쇄한 영수증의 페이지 여백을 비교해 자료를 제출했다. 대조 과정에서 같은 문서의 두 사본에서 한 가지 차이를 발견했다. 한 사본은 하단에 '검증 대기'라고 인쇄돼 있고, 다른 사본에는 그 문구가 없었다.
나는 정민규에게 그 차이를 먼저 말했다. "둘 중 하나를 조작본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프로그램의 출력 조건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네. 그래서 업체가 내놓은 출력 규칙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혹시 마지막 장이 두 종류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저도 그 생각을 했지만, 확인 전에는 수사 메모에 가설이라고 적겠습니다."
나는 짧게 웃었다. "좋습니다."
그날 저녁 오선영에게서 예상 밖의 소식이 왔다. 온새문서지원이 2025년 8월 20일에 만든 보관용 색인표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원본이 있는지는 조사 중이었고, 복사본에는 '최종 장'이라는 표시가 두 번 나타났다.
"같은 장을 두 번 출력한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최종 승인본과 정정본을 따로 보관했을 수도 있지."
"그럼 누군가 마지막 장을 빼냈다는 진술과도 모순되지는 않네요."
"그래. 다만 적어도 하나의 마지막 장이 더 존재할 가능성은 생겼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가 숨기고 싶은 건 한 장의 종이가 아닐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장을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차이일지 모른다.
오선영이 물었다. "진혁아, 지난해 보험사에 낸 자료 중 8월 20일자 정정내역이 있니?"
"직접 받은 건 없습니다. 대신 8월 19일 출력본과 8월 21일 결산요약본이 있습니다."
"그 둘의 숫자를 다시 비교해 봐. 새로운 계정이 생겼을지 몰라."
나는 밤이 깊도록 계산했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었다. 비용 총액도, 승인 담당자도 같았다. 그런데 수취인별 합계를 다시 묶자 숫자 하나가 두 장에서 다른 곳에 놓여 있었다. 돈이 더 나온 게 아니었다.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주체가 바뀐 것이었다.
나는 빨간 펜으로 원을 그렸다.
'회수 예정금'.
그 항목은 8월 19일에는 회사가 받을 돈으로 적혀 있었고, 8월 21일에는 외부 관리 업체에 받을 돈으로 옮겨져 있었다. 외부 관리 업체가 실제로 그 돈을 부담하기로 동의했는지는 아무 자료에도 없었다.
나는 선배에게 질문을 보냈다.
'8월 20일 마지막 장에 금액이 아니라 책임을 인수했다는 서명이 있었을 가능성. 단정 아님. 관련 계약 원본 확인 부탁드립니다.'
보낸 뒤 생각했다. 배정우가 죽기 전에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모르는 사람의 서명 때문에 누군가 다칠 거다.'
정민규의 가짜 인계서는 올해 만들어졌다. 배정우가 말했던 서명은 지난해 책임을 떠넘기는 데 쓰인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을 빼낸 사람은 돈을 훔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책임을 떠안았다는 증거를 없애려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이것 역시 아직 가설일 뿐이었다.
그때 한유리에게서 문자가 왔다. '온새문서지원 대표가 취재 요청을 받자 딱 한 마디 했어요. 우리는 문서를 쓰지 않고, 받은 문서를 정렬하기만 합니다.'
나는 그 말이 정확한 업무 설명인지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정렬'이라는 말은 순서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으니까.
제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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