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한 줄을 지우는 데는 두 해가 걸렸다.
2027년 5월 13일, 임소율이 회사에서 정정 통지서를 받았다. 2025년 8월 22일 제출한 R-04 신고는 철회된 적이 없었다. 내부 이관 후 종결로 처리됐다는 사실을 회사가 공식 확인했다. ‘철회 포함 종결’이라는 월간 보고서 표기는 수정됐다. 임소율은 그 문서를 한참 바라보다 내게 전화했다.
“종이로는 제가 이긴 건가요?”
“원래 신고를 철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정된 겁니다. 비용 귀속과 피해 회복은 또 별개의 절차일 거예요.”
“그래도 좋네요. 누가 다시 저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면 보여줄 종이가 생겼으니까요.”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가볍게 웃었다.
화진모빌리티는 3억 8천만 원이라는 숫자를 개인의 확정 채무로 제시했던 일부 외부 문서를 회수하기로 했다. 해당 금액은 실제 지급, 추정 손실, 이의 제기, 보류 예상액이 뒤섞인 검토 합계였다. 비용을 실제로 부담해야 할 주체는 항목별로 다시 따져야 했다. 회사는 피해액을 분리 산정하고 신용정보 정정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수 안내 한 장이 임소율의 잃어버린 계약과 불면의 밤까지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법률대리인과 손해배상 가능성을 검토했다. 나는 그녀가 혼자 그 과정을 다 감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련 자료를 정리해줬다.
오선영이 나를 만나 물었다. “이제 2025년의 책임도 드러났다고 생각해?”
“구분해서 봐야죠.”
내가 적은 표에는 다섯 줄이 있었다. 9시 31분 오승재가 예외 사유 미입력 옵션을 허용했다. 9시 36분 윤세한 명의 조건 검토가 진행됐다. 9시 37분 사유가 비어 있는 임시 권한이 발급됐다. 9시 43분 윤세한이 T-07에서 차단 경고를 참고로 낮췄다. 이후 별도의 결재 경로에서 비용 귀속 검토가 진행됐다.
“그럼 윤세한이 전부 잘못한 건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경고 하향이 안전한 일이었다는 뜻도 아니에요.”
윤세한은 화면 아래의 경고를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버튼을 누른 사실은 인정했고, 실물 인계 확인이 되지 않은 항목이 그 뒤로 넘어갈 수 있게 했다는 점도 이제 알고 있었다. 그는 무리한 마감을 핑계로 그날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징계와 책임은 별도 절차로 검토될 예정이었다.
오승재 역시 자신의 옵션 변경이 후속 권한 오용의 기회를 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직접 9시 43분 버튼을 누른 것은 아니라는 자료가 남았다. 고태원은 외주 관리 계정을 오래 유지하고 점검을 미룬 책임에 대해 감사를 받게 됐다. 세 사람의 잘못은 서로 달랐다.
최명환의 경우는 더 무거웠다. 2025년 8월 27일 그의 결재 아래 일부 비용이 개인에게 귀속됐다. 그는 법무 검토가 끝난 것으로 알고 승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재 화면에는 원자료 미교부 경고와 검토 공백을 보여주는 첨부 목록이 남아 있었다. 그가 실제로 열람했는지는 따져야 하지만, 담당 책임자로서 확인 의무가 있었다는 문제는 피하기 어려웠다.
백이준은 그 과정에서 원래 경고를 알고도 일반 분류 의견을 남긴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그가 비용을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목적을 가졌는지, 단순한 부주의였는지, 이후 2026년 허위 사건기록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는 각각 독립적으로 조사되고 있었다.
오전 회의 뒤 나는 오래된 문서 인계표를 다시 펼쳤다. 2025년 8월 25일의 누락된 두 번째 장에는 ‘검토 담당자 공석 시 처리 중지’라는 경고가 있었다. 9시 41분에 두 장을 출력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기계는 한 장만 내놓았다. 9시 42분 재인쇄 시도가 취소됐고, 9시 43분 경고가 참고로 바뀌었다.
이 네 개의 숫자를 이어보면 의도적인 범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단계에 누가 무엇을 알았는지가 달랐다. 출력실의 김주하는 한 장이 배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T-07 앞의 윤세한은 기계가 정확히 어떤 종이를 내놓았는지 몰랐다고 했다. 디지털 화면에는 경고문이 남아 있었지만 화면 아래쪽에 있었다. 그가 실제로 무슨 내용을 봤는지는 진술과 로그를 대조해야 했다.
나는 한때 김주하가 뒷장을 숨겼다고 믿을 뻔했다. 일부러 감췄다면 일이 너무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장 난 프린터는 어떤 악인의 지시 없이도 종이를 한 장 덜 뽑을 수 있다. 누군가 그 상태에서 결재를 강행한 것과 종이를 빠뜨린 행위는 다른 문제였다.
김주하는 정정 서류를 받아 들고 말했다. “종이 걸림을 기록한 건 저였어요. 인계 완료를 확인한 건 제가 아니고요.”
“확인했습니다.”
“그걸 처음부터 구분했으면 제 이름으로 만든 글이 그렇게 퍼지지는 않았겠죠.”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의 계약이 늦어졌던 시간은 숫자 하나로 복구되지 않았다.
백이준이 법무 검토란을 어떻게 작성했는지는 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능숙한 표현으로 각 단계의 약점을 설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 약점을 실제로 누구에게 유리하게 사용했느냐는 문제였다. 나는 그 질문을 정리해 선영에게 전달했다. 이번에는 결론부터 적지 않았다.
오후에는 박혜림에게서 소식이 왔다. 새 직장 인사팀이 과거의 허위 방문 예약과 열람 신청이 본인 의사가 아니었다는 확인을 반영했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출근카드를 받았다.
“첫 달보다 두 번째 달이 더 무서웠어요. 또 문서 하나 때문에 나가라고 할까 봐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무섭죠. 그래도 제가 낸 신청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됐어요.”
김주하는 계약 갱신 심사가 다시 시작됐다. 권다정은 채용 불이익과 관련한 사실확인 자료를 받아 별도의 구제 절차를 진행했다. 이다원에게 도착한 가짜 서명 문서는 사용 중단 통지가 이뤄졌다. 누구에게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회복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정민규는 내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첫날 회사에 전화를 걸지만 않았어도 일이 달라졌을까요?”
“연락 자체는 보호를 위해 필요했을 수 있어요. 문제는 누구에게 어느 정보를 어디까지 말했느냐입니다.”
“그때는 급하면 빨리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빨리 전달해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 전달하지 않아야 할 정보가 있는 이유도 알아야 합니다.”
민규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정정 과정에서 한 번 더 개인정보 가림을 놓쳤다는 사실도 자기 업무평가 자료에 남겼다고 했다. 그 실수 때문에 관련자가 사칭 메시지를 받았으나 공식 확인 절차로 피해 확대를 막았다. 그는 그 일도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나는 그에게 쉽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두려움과 업무 지연은 실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대신 물었다.
“이제 누가 같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숨기지 말고 먼저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정정본을 보냈다는 이유로 끝났다고 쓰지 않겠습니다. 실제 수신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날 밤 서류함에 들어 있던 노란 C-12 분류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 번호는 원래 하나의 문서 보관함을 가리키는 표시였다. 그것이 거짓 살인 보고서에선 유일한 단서처럼 보였다. 번호 자체는 죄가 없었다. 그 번호로 무엇을 믿게 했는지가 문제였다.
나는 오래된 표지에 남아 있는 작은 글씨를 읽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다음 담당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것.’
그 문장은 범인의 계획서보다 훨씬 평범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것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제19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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