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이 마지막으로 한 거짓말은, 그날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2027년 5월 11일, 오선영은 배정우 자택 현관에서 재확보한 물증과 법의학 보완 의견을 설명했다. 시신의 손상은 단순한 자발적 낙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현관과 거실 사이에서 발견된 흔적들은 적어도 한 차례 몸싸움이 있었을 가능성을 지지했다. 사망 원인은 외상성 머리 손상에 따른 출혈로 정리됐다. 사망 시각은 오후 7시 전후에서 8시 사이의 범위로만 추정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최명환의 이름을 떠올렸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감정 결과는 외상을 말해줄 수 있지만 누가 가했는지 자동으로 답하지 않는다.
수사팀은 사건 당일 최명환이 현관 앞에 도착한 시각을 독립 자료로 좁혔다. 휴대전화 연결 기록, 상점의 결제 영상, 주차장 입출차 시각을 단순히 한 지도에 그려놓는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시계가 몇 분씩 다르게 표시된다는 문제까지 확인했다. 최초 사건기록이 했던 것과 반대였다. 숫자를 먼저 맞추는 대신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었다.
“최명환은 부인을 계속합니까?”
“집에 갔다는 건 인정했어. 몸싸움은 없었다고 했다가, 이번엔 배정우가 먼저 밀쳤다고 말했어.”
“바뀐 진술 자체가 폭행의 증거는 아니겠죠.”
“그래. 그런데 현장 물증과 합치면 별도의 확인 대상이 돼.”
오전 열한 시, 배정우 자택의 복도 센서 기록에 대한 재검토 결과도 나왔다. 처음에는 출입문이 고장이라 누군가 들어와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공동현관 센서의 일부 구간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층의 피난계단 조명에 붙은 점검 장치는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잠시 밝기가 변했다. 그것은 신원을 확인하는 장비가 아니었다. 다만 특정 시각에 사람이 지나갔을 가능성을 좁히는 자료였다.
“왜 그걸 처음부터 보지 못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관리업체는 그걸 출입 기록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시설 점검 기록이었지.”
나는 한참 말을 잃었다. 첫날부터 우리는 사람의 출입을 기록하는 장비를 찾고 있었다. 그 옆에 움직임을 기록하는 다른 장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질문의 범위가 좁았던 셈이었다.
오선영은 시설 업체의 원본 점검 데이터를 보전할 때 지연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직원이 보관주기를 잘못 안내했고, 다른 담당자는 이미 기한이 지났다고 답했다. 정민규가 소프트웨어 업체에 별도로 문의하지 않았다면 백업 기록은 더 늦게 발견됐을 것이다. 이번에는 수사팀의 집요함이 뒤늦게나마 기회를 만들었다. 단, 점검 장치만으로 최명환을 식별하지는 못한다.
이 자료는 최명환의 입장을 다시 묻게 했다. 그가 현관 앞에 머물렀다는 진술과 움직임이 감지된 구간이 맞는지. 사람이 지나간 뒤 조명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물건을 운반할 시간을 포함하는지. 경찰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대조했다.
그날 점심, 한유리는 급히 기사를 올리라는 데스크의 독촉을 받았다. ‘시신 발견 21시 15분’이라는 숫자를 ‘사망 시각 21시 15분’이라고 쓰면 제목이 더 선명해진다고 했다. 그녀는 거절했다. 그 거절 하나가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또 하나의 잘못된 시각을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 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리는 피곤하게 웃었다. “기사 한 편이 늦어진 게 아니라, 나중에 취소해야 할 기사 한 편을 안 만든 거겠죠.”
오후에는 백이준의 변호인 쪽에서 진술이 나왔다. 백이준은 02-C 검수 당시 ‘배정우를 용의자로 적는 부분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검토 의견을 달았고, 보완돼야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 문구가 작업내역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별도의 메일에는 ‘반응 시험 수신 대상만 먼저 등록’이라는 지시가 있었다. 발송을 막을 수도 있던 사람이 왜 수신 대상 등록을 먼저 지시했는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움직였는지 여부였다. 그들은 2025년 같은 회사에서 비용 귀속 문제를 다뤘고, 2026년에도 접촉한 기록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의 범죄를 함께 계획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후 네 시, 임소율은 경찰이 아닌 정식 조정 절차를 통해 회사에 자신의 신고 철회 기록을 고쳐달라고 다시 요구했다. 이번에는 ‘이관 후 종결’이라는 원래 분류가 복구된 자료를 첨부했다. 회사는 수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 대답을 듣고서도 웃지 않았다.
“제가 처음 신고했을 때부터 이랬다면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요.”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서류를 넘길 때 한 줄을 제대로 확인했다면 그 후의 선택들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일부러 그 한 줄을 개인 채무의 근거로 이용했다면, 책임의 무게는 단순한 실수보다 깊다.
해가 지기 전 오선영은 최명환이 새 진술에서 사건 현장 서류 상자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정우가 자신의 회사 기밀을 훔쳐 숨겨두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상자에는 일부 보험금 청구 자료의 사본이 있었고, 최명환의 결재가 빠진 정정 요청 문서도 들어 있었다. 배정우가 숨긴 것이든 보호하려 한 것이든, 문서 자체는 원본과 대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날 밤, 최명환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으로 접촉 행위를 인정했다. 그는 배정우가 상자를 빼앗으려 하자 밀쳤고, 상대가 뒤로 넘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배정우가 움직였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수사팀이 그에게 응급 신고를 왜 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겁이 났다고 답했다. 배정우가 일어날 줄 알았고, 자신이 관여한 정산 문제까지 경찰에 드러날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나는 그 대답에서 자신을 먼저 생각한 사람의 계산을 보았다. 하지만 그 진술만으로 사망 결과에 대한 법적 평가를 대신하지는 않았다.
“그가 구급차를 불렀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겼어.”
나는 그 대답을 오래 생각했다. 그가 스스로 떠났던 그 몇 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데 몇 초가 걸렸을까.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을 근거 없이 생존 가능성으로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밀었다는 행위는 감정과 증거, 진술로 판단할 문제였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행위도 별도로 살펴야 했다. 건물 관리업체가 제때 출동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명환이 자신의 접촉을 숨긴 사실은 그의 책임을 따질 중요한 부분이었다.
오선영은 아직 혐의를 확정해 언론에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 열 시, 처음 내게 살인 예고를 보냈던 주소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스스로 넘어졌다고 하면 당신은 믿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래된 수첩에 한 줄을 썼다.
‘죽음의 원인은 실제 접촉과 손상으로 설명해야 한다. 누군가의 이메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스크린에서 누가 무엇을 예고했는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그 사이 실제 현관 앞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밀었고, 누구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신고를 단순 고장으로 분류했다. 문서 밖의 일이 사람을 죽였다. 거짓 문서는 그 뒤를 따라 사람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뿐이었다.
제19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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