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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91화
PAYLUA ORIGINAL · 제191화

191화. 이름이 나온 뒤에도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789자

오프라인 책장
이름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부터 다시 읽었다. 2027년 5월 6일 오전 여덟 시 반, 오선영은 내게 바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정식 조사가 시작됐고 보전할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오전 열한 시, 백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 조사관님. 오늘은 회사 자료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제가 확인을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나 늘 마지막에 붙이던 ‘확인되는 대로 보내겠습니다’라는 문장은 없었다. 정오가 지나 선영이 직접 찾아왔다. 그녀는 책상 위에 세 장의 종이를 놓았다. 하나는 2026년 11월 2일 외부 문서검수 업체의 출입기록, 하나는 개인 인증장치의 사용기록, 나머지 하나는 2025년 8월 25일 이후 화진모빌리티의 비용 귀속 검토 목록이었다. 맨 위에 적힌 이름은 백이준이었다. “지난번에 고태원이 아니라고 했지. 백이준 책임자야.” 나는 목 뒤가 서늘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백이준은 우리에게 경고문의 원래 뜻을 설명하고, 결재와 실행의 차이를 강조하고, 함부로 범인을 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들은 대부분 옳았다. “그가 서류를 만든 겁니까?” “아직 그 결론은 아니야. 개인 인증과 출입은 맞아. 그런데 검수 승인 기록을 설명할 때 해당 작업을 모른다고 했어. 어제 업체가 보관한 자기 이름의 검수 보류 요청서를 보여주자 진술이 달라졌지.” 오선영이 마지막 종이를 가리켰다. 2025년 비용 귀속 검토표의 내부 이견란에 백이준의 법무 확인 코드가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주석이 남았다. ‘실물 인계 미확인. 개인 귀속 분류 전에 원자료 필요.’ 처음 작성된 주석이었다. 이후 수정본에는 앞 문장이 빠지고 ‘일반 분류에 따라 처리’만 남아 있었다. “누가 지웠습니까?” “공용 계정으로 수정됐어. 그런데 백이준의 개인 승인 단계가 그 뒤에 붙어 있어. 본인은 단순 검토였다고 주장하고.” 나는 190화까지 써온 수첩의 페이지를 넘겼다. 백이준은 매번 우리가 가진 증거의 약점을 정확히 짚었다. 우리는 그것을 전문성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 전문성이었다. 그러나 그가 문서를 어떻게 작성하면 누군가의 책임이 늘어나고 줄어드는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제 새롭게 보였다. “제가 그에게 여러 번 자료를 보여줬습니다.” “그게 지금 필요한 설명은 아니야. 어떤 자료를 어느 날짜에, 어떤 방법으로 보여줬는지 적어줘.” 선영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보다 중요한 것은 원본 대화와 전송 시각이었다. 나는 백이준에게서 받은 파일과 내가 보낸 회신을 하나씩 목록으로 만들었다. 한 번은 개인 메일로 받은 초안을 사무실 공용 복합기에서 출력했다. 또 한 번은 그에게 외부 검수 번호를 설명해달라며 익명 메일의 일부를 전달했다. 그때마다 내가 제공하지 않은 정보가 무엇인지도 적었다. 백이준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익명 발신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회사 법무책임자로서 볼 수 있었던 자료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02-C 최종 검수에 실제로 관여하면서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한 이유는 물어야 했다. 오후 두 시, 나는 한유리의 전화를 받았다. 취재원 두 사람이 백이준이 체포됐다고 제보했단다. “확인된 겁니까?” “아니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체포 여부는 담당기관에 확인하세요. 제가 아는 이름을 기사에 넣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는 자료는요?” “당신이 직접 확보한 자료의 범위에서 검증하세요.” 유리는 잠시 침묵했다. “이번에는 저도 이름보다 작업을 먼저 쓰겠습니다.” 그날 오후 백이준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냈다. 업무상 대조 파일에 접근한 것은 맞지만 허위 살인 예고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사망을 지시한 적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의 부인을 기록했다. 아무리 수상해도 부인은 부인대로 남아야 했다. 오후 다섯 시 반, 임소율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이준의 이름이 익명 게시물에 올라오자 그녀의 휴대전화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법무 책임자가 범인으로 잡혔으니 서류가 모두 무효가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조용히 합의하고 돈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 사람한테 제 신고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이미 접수된 신고의 원본과 정정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필요하면 독립적인 법률 상담을 받으세요.” “그 사람이 제게 ‘개인 귀속으로 돌리면 빨리 끝난다’고 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시점과 대화 경로를 적어두세요. 지금 기억에 맞춰 정확한 문구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임소율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때 저는 빨리 끝나는 게 정말 좋은 줄 알았어요. 회사에서 계속 전화가 오고, 집 앞까지 누가 오고, 일도 못 하게 됐으니까요.” 나는 그녀가 왜 개인 책임을 인정할 뻔했는지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악역은 무서운 협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편해 보이는 출구를 내밀면 된다. 이후 백이준의 옛 이메일을 다시 열었다. 그는 ‘추가 소명에 따른 종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 문장 자체는 적법한 절차의 설명일 수 있었다. 그러나 ‘종결’이 회사의 부담을 끝내는 것인지, 임소율의 부당한 채무를 확정하는 것인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모호함을 처음부터 짚어야 했다. 그에게서 틀린 말을 잡아내려 하지 말고, 그가 정하지 않은 주어를 물었어야 했다. 나는 오선영에게 이 부분을 전달하며 분명히 적었다. ‘임소율의 기억은 진술이며, 해당 메일 원문과 대조 필요.’ 정확한 문장을 확인하지 못한 채 익명 게시물의 속도에 맞춰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저녁 일곱 시, 오선영은 별도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 백이준의 검수 승인 당시 승인 창에는 세 가지 항목이 있었다. ‘맞춤법·서식’, ‘대조용 표시 확인’, ‘수신 대상 표기.’ 백이준은 세 번째 항목에 체크했다. 그런데 같은 작업의 내부 설명에는 ‘실제 송신 금지’가 적혀 있었다. “그가 보내라고 승인한 겁니까?” “승인 의미를 더 확인해야 해. 하지만 실제 수신 대상 표기를 확인한 건 맞아.” 나는 문구를 여러 번 읽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백이준이 가르쳐준 바로 그 원칙이 떠올랐다. 승인 표시가 곧 송신은 아니다. 그런데 송신 금지라고 적힌 파일의 수신 대상까지 확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밤이 되자 익명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은 ‘당신이 믿은 사람’이었다. 본문에는 백이준의 이름과 붉은 화살표가 있었다. 그 밑에 ‘모든 살인의 설계자’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저장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사실은 백이준에게 유리할 수도 있었다. 그가 실제로 한 일을 과장된 혐의 속에 섞어버리면 반박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수첩을 펼쳐 두 문장을 나란히 적었다. ‘백이준은 02-C 검수에 관여했다.’ ‘백이준이 배정우를 죽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말에 속지 않는 법을 안다고 생각했었다. 틀렸다. 내가 배운 것은 더 불편한 것이었다. 말이 옳은 사람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출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가 한 말까지 모두 거짓으로 만들면 진실을 놓친다는 것이었다. 새벽 한 시, 오선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02-C 검수 승인 이전에 생성된 최초 대조 원고가 복구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문서의 마지막 줄에는 내가 한 번도 읽지 못한 지시가 남아 있었다. ‘서진혁이 신고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경찰 보호 요청을 유도할 것.’ 내가 먼저 전화할 것을 몰랐던 사람들. 그래서 대체 계획을 만들어놓은 사람들. 적어도 그들에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미래 대신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려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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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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