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18분의 신고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돼 있었다.
2027년 5월 1일 토요일, 오선영에게서 짧은 연락이 왔다. 배정우 자택 공동현관의 두 번째 신고와 관련한 보관자료가 추가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처음 그 기록을 들었을 때 또 다른 문서 조작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평범하고 불편한 설명이 나왔다.
신고를 받은 사람은 현관 잠금장치 고장 접수라고 판단했고, 야간 보수 담당에게 전달했다. 원래 신고자는 집 안쪽에서 무거운 소리가 났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수리 요청 화면의 비고 칸에만 남았다. 경찰이 처음 확인한 것은 요약된 접수 목록이었다.
“누락된 음성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상담 통화 일부가 보존돼 있어. 더 검증한 뒤 알려줄게.”
“그럼 누가 일부러 지웠습니까?”
“지워졌다는 증거는 없어. 화면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게 분류된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살인을 돕기 위해 기록을 삭제할 필요가 없었다. 고장 접수로 판단한 직원이 ‘집 안에서 소리가 났다’는 말을 별 의미 없는 부가정보로 처리하기만 해도 긴급성이 지워졌다.
그 직원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오선영은 그가 당시 여러 건의 야간 장애 전화를 한꺼번에 처리했으며, 관리업체에 긴급 신고 기준이 모호했다는 점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잘못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결과를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배은정에게는 그날 오후 공식 설명이 전달됐다. 그녀는 내게 전화해 물었다.
“그 시간에 누가 집에 있었다는 뜻인가요?”
“소리가 났다는 신고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동생이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가능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단정하면 더 큰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계속 모른다고 말하네요. 전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라도 알고 싶어요.”
나는 한참 답을 찾지 못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수많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유족에게는 문 앞에서 닫히는 문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동안 확인을 멈추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오후 세 시, 정민규가 새로운 기록의 원본 보존 과정을 설명했다. 상담 기록의 파일 생성 시각과 관리업체로 전달된 접수 시각을 따로 확보했고, 최초 분류를 누가 수정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의 자신이라면 ‘신고 묵살’이라고 적었겠지만 이번에는 ‘긴급성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비고 칸에만 남음’이라고 기록했다고 했다.
“후자가 덜 심각해 보이죠?”
“아니요. 오히려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가 드러나네요.”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날 제가 임소율 씨 회사에 전화한 것도 이런 식이었을까요? 사람을 지키려고 했는데 어디에 기록을 남겨야 할지 몰라서.”
“당신은 연락의 범위를 잘못 판단했어요. 이번 직원도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죠.”
그날 나는 건물 관리업체가 사용하는 야간 접수 화면을 견본으로 확인했다. 신고 종류를 '현관 고장'으로 선택하면 다음 단계에는 부품 종류와 출동 가능 시간만 나타났다. '사람이 쓰러진 소리' 같은 특이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칸은 아래쪽의 자유 메모뿐이었다. 접수 직원이 그 칸에 쓴 내용은 기술자에게 전달되는 간단한 요약 화면에서는 접힌 상태로 보였다.
“그래서 아무도 못 본 겁니까?” 한유리가 물었다.
“못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열어 확인할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관리업체 직원 중 한 사람은 오래된 화면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반년 전 회의에서 개선을 건의했지만 예산과 개발 일정을 이유로 미뤄졌다고 했다. 제안서는 남아 있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 사람이 회사에 경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고가 났을 때 개인의 불성실만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제안을 경찰에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보안 문제를 고치는 사람에게도 기록이 필요했다. 그리고 똑같은 화면이 다른 건물에서도 쓰이고 있다면 누군가 다음에 도움을 요청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도 인간의 판단을 완전히 대신하지 못한다. 신고자가 위험을 의심하는 말을 했을 때 한 번만 더 확인했더라면 달랐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책임을 판단할 때 다뤄야 한다. 그렇다고 그 한 번의 질문이 실제로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 증명되지 않은 결론을 만들 수는 없었다.
오후 네 시에는 사건 현장의 또 다른 자료가 나왔다. 인천 자택 건물의 공동현관 관리기록에서 11월 3일 오후 7시대 문 열림 오류가 두 차례 관찰됐다. 그러나 기록은 문이 실제로 열렸는지, 잠금장치의 센서가 잘못 반응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럼 침입 증거는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맞아. 그걸 확인하려고 다른 출입 동선과 대조 중이야.”
오선영은 그날 밤의 입주민 진술을 새로 받았다. 한 사람은 누군가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택배기사가 떠나는 소리였다고 했다. 둘의 시각도 일치하지 않았다. 사건 뒤 몇 달이 지난 기억이므로 진술만으로 외부인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한유리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아직 보도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었다. 누군가 사건을 빨리 완성해 기사로 내보내면 실제 목격자가 그 이야기에 기억을 맞출 위험도 있었다.
저녁 무렵 한유리가 먼저 전화했다. “서 조사관님. 배정우 씨가 그날 밤 누군가와 말다툼했다는 제보가 왔어요.”
“제보자에게 들은 장소와 시각을 기록했습니까?”
“네. 그런데 제보자가 인터넷에서 ‘문 열림 오류’ 기사를 봤다고도 했어요.”
“그럼 그 말이 독립적인 기억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알아요. 이번에는 기사로 안 썼어요.”
그녀가 스스로 멈춘 것이 반가웠다. 이야기의 긴장감을 키울수록 진실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었다.
밤 여덟 시, 선영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감정 담당자가 시신 발견 뒤의 시간표에서 미묘한 착오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현장 요약에는 21시 15분이라는 시각이 반복됐지만, 실제 현장 조치와 신고가 이루어진 과정에는 단계별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그 차이부터 정리하겠다고 했다.
“사망 시각이 좁혀졌습니까?”
“사망 시각은 계속 감정 중이야. 다만 사건이 모두 그 시간에 일어났다는 식의 서술을 버릴 수 있게 됐어.”
나는 02-C의 반응 예상표를 떠올렸다. 상대는 처음부터 ‘발견 시각’을 ‘사망 시각’처럼 보이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사망이 예측된 결과라는 증거도 아니었다.
그날 밤 내가 받은 이메일은 단 한 줄이었다.
‘일찍 신고했으면 살았을까요?’
예전의 나라면 분노해서 답장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화면을 저장한 뒤 닫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가정형 질문을 던져 죄책감을 만드는 것은 비겁했다. 실제로 그 신고를 받았던 사람과 신고가 전달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더라도, 그 질문에 지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나는 다음 날 확인할 목록을 작성했다. 상담 기록 원문, 현관 센서의 검사 기록, 현장 조치 시간표.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7시 18분은 신고 접수 시각이다. 도움 요청의 사실 여부와 생존 시각은 독립 확인.’
나는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다음에는 누군가 진짜로 도움을 청했을 때, 그 말이 고장 접수의 비고 칸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제18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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