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움직인 곳에는 언제나 숫자가 남는다고 믿었다.
2027년 4월 30일 금요일, 그 믿음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임소율에게 떠넘겨졌다는 3억 8천만 원은 실제로 한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 아니었다. 여러 건의 보험금 검토액, 회수 예정액, 이의 신청 대상액을 합친 숫자였다. 그러므로 누군가 그 숫자를 적었다는 사실만으로 횡령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숫자를 사람의 이름에 붙이는 행위에는 분명한 책임자가 있었다.
오선영이 보여준 자료에는 2025년 8월 25일 경고 참고 전환 이후 사흘 동안의 비용 귀속 변경 이력이 있었다. 검토 대기였던 일부 항목이 법인 정산 보류에서 임소율 담당 건으로 이동했다. 한 번에 전부가 움직이지 않았다. 날짜와 항목이 다른 여러 작업으로 나뉘어 있었다.
“누가 옮겼습니까?”
“승인권자 계열에서 처리한 흔적이야. 실제 클릭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장비 기록과 대조 중.”
“윤세한은 그 화면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까?”
“현재 확인한 권한표로는 못 했어.”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윤세한이 확인하지 않은 경고를 넘긴 것은 실제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 실수가 다른 사람에게 금전 책임을 씌우는 마지막 결정은 아니었다.
오후에는 화진모빌리티의 내부통제 담당자가 정식 면담에 응했다. 지난해에는 법무팀 뒤에 숨어 조사를 거절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회사가 이미 비용 귀속의 일부 오류를 인정했으며, 다른 항목은 외부 회계 검토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관행상 담당자 귀속은 문제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관행이 있었다는 사실과 규정상 정당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 “서 조사관님은 왜 자꾸 두 가지로 나눕니까?”
“하나로 묶을 때 책임이 사라지니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사 측에선 당시 월말 마감이 지연되면 거래처 대금 지급이 멈출 위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급여와 물류 운영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도 임시 보류로 처리할 대안이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백이준은 그 대안 화면이 실제로 존재했지만, 담당자 교육이 부족했고 처리 속도가 느렸다는 기록을 찾았다.
“느리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비용을 붙여도 됩니까?” 임소율이 통화에서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 이유만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저는 확인도 못 한 문서를 철회했다고 기록돼 있었죠. 다들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요.”
나는 그녀에게 이미 정정된 R-04 상태와 비용 귀속 검토의 현황을 구분해 설명했다. 그녀가 원래 철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바로잡혔다. 그러나 그게 모든 금전 분쟁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전 업무가 끝날 무렵 나는 임소율과 함께 항목별로 금액을 다시 살폈다. 어떤 건 실제 지급된 보험금이었고, 어떤 건 지급을 보류한 예상치였다. 취소됐는데도 검토액에 남은 건도 있었다. 합계 3억 8천이라는 숫자는 같은 성격의 돈을 합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가 외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이 모든 것이 ‘담당자 귀속 금액’이라는 한 문장으로 축약돼 있었다.
임소율은 자신이 관여한 결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승인한 항목이 있었고, 확인을 늦춘 서류도 있었다. “제가 잘못한 것까지 없던 일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받지도 않은 돈까지 제 이름으로 올려놓는 건 못 견디겠어요.”
나는 항목 옆에 세 칸을 그렸다. ‘실제 금액’, ‘업무상 승인’, ‘개인 부담 판단’. 한 칸에서 사실이 확인돼도 나머지 두 칸이 자동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 표를 보고 처음으로 회계 담당자와 구체적으로 다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오후 두 시, 뜻밖의 자료가 나왔다. 최명환 명의의 결재 목록에서 8월 27일 승인된 여러 항목의 참조 문서가 25일의 ‘첨부 두 매 중 한 매 확인’ 경고와 연결돼 있었다. 회사는 당시 이를 알고 있었는지 해명해야 했다. 결재 목록에 최명환 이름이 있었다고 실제 모든 클릭을 그가 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직책이 그 위험을 검토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지는 않았다.
한유리는 기사를 쓰면서 제목을 다섯 번 바꿨다. 처음에는 ‘최명환, 3억 8천 빼돌렸나’였다. 마지막에는 ‘경고를 낮춘 뒤 개인 부담이 된 비용, 결재 책임은 누구에게’로 바뀌었다.
“이렇게 쓰면 재미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재미없어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문장이죠.”
“기사 읽는 사람이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어요.”
“그럼 첫 문단을 명확하게 쓰세요. 돈이 사라졌다고 확정되지 않았고, 개인에게 잘못 귀속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단정 대신 확인된 문제를 보여주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해 질 무렵, 정민규가 2025년 8월 말의 업무 메시지를 발견했다. 정산관리실 공동 주소에서 ‘미확인 비용도 우선 귀속 대상 설정 후 대조’라고 보낸 메시지였다. 여기에는 최명환의 직책이 참조자로 들어 있었다. 작성자는 공용계정이라 특정할 수 없었지만, 해당 메시지를 정식 업무 지침으로 사용했다는 회신이 두 곳에서 발견됐다.
“고의가 드러난 겁니까?” 내가 물었다.
오선영이 말했다. “미확인 비용을 먼저 귀속시키라는 업무 지시는 확인됐어. 그러나 특정인을 해치려 했는지는 더 따져야 해. 지침의 적법성은 별도 판단이고.”
그녀는 또한 그 메시지 다음 날 전송된 반송 요청 하나를 찾았다고 했다. 발신자는 배정우였다. ‘실물 인계 확인 전에는 담당자 귀속 확정 불가.’ 그 문장 아래 회신이 있었다.
‘마감 후 재검토.’
나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우리가 2026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했던 남자가 2025년에는 잘못된 비용 귀속을 중단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가 이 사건에서 언제나 선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어떤 이익을 지키려 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저녁 일곱 시, 임소율이 말했다. “배정우 씨가 그런 말을 했으면 왜 그때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그가 무엇을 실제로 알고 있었는지, 전달했는지 기록을 더 봐야 합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저를 협박했다고도 말했어요.”
“그 말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막으려 했으면서 다른 일로는 누군가를 협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조금 울었다. 피해자가 사건을 단순하게 이해할 권리는 없었다. 누군가를 온전히 악인으로 기억하는 편이 덜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 더 복잡하다면 그 복잡함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밤 열 시, 오선영은 내게 최명환의 출석 예정 일정을 알렸다. 이번에는 그가 개인 귀속 지침의 책임을 설명해야 했다. 오래된 공용계정의 뒤에 이름을 숨길 수 없는 질문이 생겼다.
나는 창밖을 봤다. 상대가 만든 미래 사건기록을 추적한 지 반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 앞에는 미래가 아니라 오래전의, 승인되지 않아야 했던 비용이 있었다. 누군가가 살인을 예고한 이유는 아마 그 돈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를 알아냈다고 해도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는 별개의 질문이었다.
그때 배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찰이 동생의 미개봉 봉투에 든 문서를 법적 절차에 따라 확인했다고 했다. 그 내용 중 하나는 배정우의 개인 앞으로 온 편지가 아니었다. **회사 담당자에게 전달할 수신 확인 요청서**였다.
나는 물었다. “누구에게 확인하라는 요청이었습니까?”
“그건 경찰이 확인 중이래요. 그런데 문서 맨 위에 적힌 날짜가 이상해요. 동생이 죽기 전날이에요.”
나는 숨을 삼켰다. 문서가 언제 만들어졌고, 언제 배달됐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누군가 배정우의 집을 회사 문서의 중간 경유지로 사용했다면 그의 죽음과 연결되는 첫 물리적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제18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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