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우가 오후 아홉 시 십오 분에 죽었다는 말은 틀렸다.
적어도 확인된 사실은 그가 그 시각에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2027년 4월 12일 월요일, 오선영은 인천 현장기록을 다시 정리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최초 신고 보고 시각은 오후 9시 17분. 현장 경찰이 시신을 발견했다고 적은 시각은 9시 15분. 그러나 실제 사망 시각은 감정의 영역이었다.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숨졌는지까지 결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직 없었다.
“그럼 최초 수정 메일이 9시 16분에 도착한 건 어떻게 설명합니까?”
“우리가 확보한 수신 시각과 발신 서버 표시 시각이 전부 같은 기준인지 확인하고 있어. 사설 연락망을 통해 소식이 먼저 돌았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고.”
나는 첫날 기억을 떠올렸다. 메일을 읽던 내 손이 떨렸던 순간. 공식 보고보다 빠른 소식은 예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비교의 기준인 공식 보고 자체가 시신 발견 이후에 작성된 기록이었다.
“미리 죽을 걸 알고 있었던 사람도 가능하겠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걸 입증할 자료가 필요해.”
정민규는 인천 공동현관 고장 신고를 묶은 시간표를 들고 왔다. 16시 06분의 첫 신고. 19시 18분으로 적힌 개인 메모. 두 번째 신고의 실제 통화 시각은 그 메모 시각과 달랐다. 관리업체의 전화 수신 기록과 배송기사의 단말 이력이 일부 대조됐지만, 건물 출입문이 언제 완전히 잠겼고 언제 열렸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문이 고장 나 있었다면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누가 들어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가 서둘러 말했던 단어 하나를 되돌려 놓았다. '아무나.' 문이 열린다고 아무나 들어온 건 아니었다.
오후에는 배송기사의 추가 진술이 확인됐다. 그는 그날 특정 시간에 현관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관리실에 연락했다고 했다. 어떤 남자를 봤느냐는 질문에는 확실하게 답하지 않았다. 비가 오고 있었고, 배달 물품이 많았으며, 일부 기억은 다른 날의 장면과 섞였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범인을 봤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한유리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죠.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을 만들어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현장 목격담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답답했지만, 없는 얼굴 하나를 만들면 누군가의 인생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배은정은 동생의 사망 시각이 인터넷에 특정한 분으로 떠도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그녀는 그 시각이 확정됐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답하자 잠시 침묵했다.
“그럼 사람들이 계속 동생이 아홉 시 십오 분에 죽었다고 쓰는 건 틀린 거네요.”
“네. 확인된 것은 발견 시각입니다.”
“그 말 하나 고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숫자는 간단했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는 숫자 하나보다 훨씬 오래 남았다.
한유리는 기사 제목에서 '사망 시각'이라는 표현을 지우고 '시신 발견 시각'이라고 고쳤다. 구독자 몇 명은 별 차이가 없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녀는 답글에 왜 다른지 짧게 설명했다. 사망 시각은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고, 발견 시각은 누군가 시신을 확인한 시간일 뿐이었다.
나는 그 설명을 읽고 오래전 보험사기 사건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사고 접수 시각과 사고 발생 시각을 구별하지 못해 멀쩡한 운전자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기록 하나를 잘못 읽은 팀장에게 화를 냈지만, 정작 나 역시 같은 실수를 할 뻔했다.
오선영은 새로운 가능성도 언급했다. 배정우의 미전송 음성 파일이 사건 당일 마지막으로 동기화된 시각과, 실제로 그 안의 음성이 녹음된 시각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돌려보내'라는 말도 죽기 직전의 상황을 곧바로 증명하지 못했다.
“그럼 우리 손에 남는 건 무엇입니까?”
“음성의 존재, 현장 상태, 신고 이력, 연락 내역. 각각 확인할 수 있는 만큼 남아.”
“범인을 찾아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
저녁 여덟 시 무렵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익명 발신자는 아직 새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침묵한다고 수사가 멈추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아홉 시가 조금 지나서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배정우는 21:15 이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확인해보세요.'
나는 놀라지 않고 원본을 보존했다. 이 문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었다. 시신이 발견될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니까.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그걸 새로운 범행 정보라고 착각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선영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선영은 짧게 답했다. '맞아. 그 문장만으로 특별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야.'
나는 수첩에 그 말을 적었다. 상대가 알고 있는 건 과거의 시각일 수도, 사람들이 과거의 시각을 어떻게 오해하는지일 수도 있었다.
오후 9시 15분이 돌아왔을 때 나는 창밖을 봤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누군가 죽었고, 우리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하나가 달라졌다. 더 이상 발견된 시각을 사망한 시각이라고 쓰지 않았다. 누군가의 알리바이를 그 잘못된 숫자에 억지로 맞추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구분이 언젠가 범인을 찾는 데 결정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죽은 사람을 다루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정민규는 회의를 마친 뒤 자신의 옛 수첩 한 귀퉁이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2026년 11월 3일 오후 9시 17분 옆에 작게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초 보고 시각을 처음 전달받은 순간 그렇게 적었다고 했다. 나중에 시신 발견 시각과 혼동되는 걸 알았지만, 오래된 수첩을 버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왜 남겨두셨습니까?”
“제가 어떻게 틀렸는지도 알아야 하니까요.”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첩을 지우면 더 깔끔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정한 흔적이 없는 깔끔한 기록은 때로 가장 위험했다.
나는 내 수첩도 펼쳤다. 첫 사건기록을 받던 날, 임소율이 죽을 거라고 적어놓은 줄이 있었다. 그 줄은 이미 틀렸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틀린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내가 왜 그녀에게 전화했고, 왜 경찰에 신고했는지 설명하는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보내는 예고도 비슷했다. 예고는 사실이 아닐 수 있어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 원인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문장이 틀렸는지와 그 문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시켰는지 따로 기록해야 했다.
그날 나는 오래된 보험 사고 기록에서 '발생'과 '접수'가 다르게 적힌 사례를 다시 세어봤다. 정확한 숫자를 셀 필요는 없었다. 반복되는 방식이 보였다. 상담원은 접수 시간을 적는다. 현장 담당자는 발견 시간을 적는다. 당사자는 기억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 세 가지는 모두 다른 기록인데, 누군가 요약하면서 같은 칸에 넣는다.
나는 그 사실을 선영에게 보냈다. 선영은 짧게 답했다. '사망사건 감정 결과와 접수 체계는 다르니까 단순 비교하지는 말자. 다만 표현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은 맞아.'
맞는 말이었다. 사건을 너무 쉽게 비유하는 것도 위험했다. 사고 기록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고 살인 수사의 모든 절차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싶었다. 내 장점이 누군가의 전문성을 대신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다시 틀릴 테니까.
저녁에 나는 '21:15 사망'이라고 쓴 낡은 메모 옆에 작은 글씨로 정정 사유를 적었다. 그 줄을 읽는 다음 사람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했는지 볼 수 있도록.
제16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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