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43분의 버튼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기계 번호가 있었다.
2027년 4월 10일 토요일, 백이준은 2025년의 경고 하향 작업에 사용된 단말을 특정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됐다고 알려왔다. 내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작업자 이름이었다. 그는 대답 대신 한 줄을 읽었다.
“운영 단말 T-07. 공용 세션. 09시 43분 08초.”
나는 숫자를 수첩에 적었다. 그동안 우리는 9시 43분이라는 한 분 안에 너무 많은 일을 집어넣었다. 요청이 있었고, 확인이 있었고, 경고가 참고로 바뀌었다. 그 일을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오승재가 사용한 단말과 같은 겁니까?”
“아닙니다. 그가 오전 9시 31분에 옵션을 변경한 기록은 다른 장치에서 나왔습니다.”
“그럼 오승재는 경고를 바꾸지 않았군요.”
백이준은 잠시 침묵했다. “아직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두 장치를 한 사람이 썼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지난 몇 주 동안 몇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는가. 기계를 구분하는 것과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다르다.
오선영은 정식으로 확보한 접속 로그를 대조하고 있었다. T-07은 그날 공용 작업구역에 설치돼 있었고, 출입 가능한 직원은 하나가 아니었다. 임시 권한도 사용자 개인이 아닌 업무 역할에 붙어 있었다. 오승재가 바꾼 옵션 때문에 사유를 쓰지 않은 임시 권한이 발급될 수 있었지만, 그 권한을 실제로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또 다른 질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다.
“9시 43분 작업이 가능해진 이유와, 그 작업을 실제로 실행한 사람이야. 둘 다 확인해야지.”
선영이 말했다. “그리고 승인권자의 결재와 시스템 상태 전환이 일치하는지도.”
나는 2025년 8월 25일 누락된 두 번째 장을 떠올렸다. '검토 담당자 공석 시 처리 중지.' 그 문구가 전산상 참고로 내려간 순간 비용 귀속 대기열이 앞으로 움직였다. 업무 시스템이 법적 책임을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뒤에 나온 상태 표시를 실제 승인이라고 믿었을 수 있다.
정민규는 T-07의 사용 이력을 정리한 표를 보내왔다. 작업 전후로 다른 업무도 처리됐고, 공용 계정의 로그인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 나는 작업 순서를 보고 한 가지를 발견했다. 9시 43분 바로 전, 같은 단말에서 '첨부 2매 중 1매 확인' 경고창이 열렸다.
“이건 이미 알고 있었죠.” 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확인한 건 경고창이 바로 닫힌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열려 있었습니까?”
“표시 기록만으로 사람이 읽었다는 걸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화면이 유지된 구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경고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또는 화면을 켜놓고 전화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경고가 시스템에서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무력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은 더 분명해졌다.
점심에는 김주하가 연락했다. 그는 2025년 그날 프린터에 노란 오류등이 켜졌을 때 수리를 미루고 마감표 한 장만 전달했다. 두 번째 장이 출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자신이 그때 수리를 요청했어야 했다고 다시 인정했다.
“제가 경고를 못 본 건 맞습니다.”
“네.”
“그런데 그 뒤에 버튼을 누른 사람이 경고를 볼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네요.”
“다릅니다. 한 사람의 실수가 다른 사람의 결정을 없애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 말을 사람들이 들어줄까요?”
“들어주게 하려면 자료를 남겨야죠.”
김주하는 자신의 당시 업무 기록에 출력 오류를 정확히 적은 정정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사과문으로는 부족했다. 어느 장이 나오지 않았고, 누구에게 몇 장을 줬는지 남겨야 같은 유형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오후 세 시, 화진모빌리티는 경고 하향으로 이동한 비용 귀속 대기열 중 일부를 임시 중지했다고 통지했다. 그 조치가 곧 모든 금전 거래의 무효나 특정인의 범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 검토되지 않은 자료로 사람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후속 처리는 멈출 수 있었다.
임소율이 그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었다. “그럼 제 이름으로 묶인 돈도 전부 풀리는 거예요?”
“아직 아닙니다. 확인된 항목부터 정정하는 단계입니다.”
“맨날 단계라는 말만 듣네요.”
“그렇죠. 하지만 오늘은 실제로 일부 처리가 멈췄습니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건 처음 듣는 좋은 소식이에요.”
저녁에 익명 메일이 왔다. 이번에는 T-07의 사진과 오승재의 얼굴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같은 사람이 조작했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두 사진이 같은 장소에서 촬영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상대는 우리가 두 단말을 분리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었다.
한유리는 사진을 보고 말했다. “지금 저 사람을 잡으면 끝날 것처럼 보이네요.”
“그래서 위험합니다. 사건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강할 때 이런 사진을 보내는 거니까요.”
나는 사진과 회사 공식 로그의 날짜를 나란히 놓았다. 오승재의 옵션 변경은 오전 9시 31분. T-07 경고 하향은 오전 9시 43분 8초. 두 사건 사이에는 사유 없는 권한 발급, 경고창 표시, 공용 세션 이용이라는 단계가 있었다.
누군가 오래된 시스템의 취약함을 이용했을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누군가의 이름은 아직 빈칸이었다.
늦은 밤, 선영에게서 추가 메시지가 왔다. 'T-07 당시 사용 이력 중 지워진 작업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여. 삭제 단정은 이르다. 오래된 로그 보존 정책과 비교 중.'
나는 화면의 '삭제'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빨라졌다. 누군가 증거를 지웠을까. 아니면 보존 기간이 지나 자동 정리됐을까.
이번에는 스스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 가끔 가장 어려운 일은 다음 단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 사이 우리는 실제로 확보한 자료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수첩 마지막 줄에 숫자 세 개를 썼다. 09:31. 09:37. 09:43:08.
그리고 화살표 대신 세로선을 그었다. 세 시간은 연결돼 있었지만, 아직 같은 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후에 백이준이 당시 현장 운영 절차에 관해 한 가지 더 확인해줬다. 관리자는 장애 상황에서 임시 역할을 발급할 수 있었지만, 그 역할을 실제 사용하는 직원은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 별도 메모를 남기는 것이 원칙이었다. 원칙은 문서에 적혀 있었고, 화면에도 요약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마감이 밀릴 때마다 메모를 나중에 적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 누가 먼저 바꾼 겁니까? 규정인가요, 현장인가요?” 내가 물었다.
“공식 규정은 그대로였고 관행이 달라진 겁니다. 그 관행을 관리자가 알았는지도 조사 중입니다.”
나는 어떤 조직도 한 번에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메모를 나중에 쓰는 일이었다. 다음에는 바쁘니 예외 사유를 비워두었다.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서 확인했겠지 생각하며 경고를 넘겼다. 마지막에는 아무도 받지 않은 서류가 받은 것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 연결이 사실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공범인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관행을 만든 사람과 그 관행을 고의로 이용한 사람을 구별해야 했다. 그래야 진짜 악인은 어설픈 사과문 뒤에 숨지 못한다.
그날 나는 T-07이라는 기계 번호를 두 번 동그라미 쳤다. 드디어 하나의 작업을 찾았다. 이제 사람을 찾는 일만 남았다고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 남은 일은 사람을 찾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왜 그 작업을 했는지, 그 결과를 누가 어떻게 이용했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
제16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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