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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162화
PAYLUA ORIGINAL · 제162화

162화. 뒤집힌 수거표

내일의 살인사건이 오늘 접수됐다 · 3,675자

오프라인 책장
수거표의 뒷면에는 서명이 없었다. 2027년 4월 7일 수요일 오전, 오선영이 보여준 사진에는 앞면보다 많은 칸이 있었다. 반출 확인, 반송 예정, 이중 확인, 예외 사유. 나는 오랫동안 사진을 내려다봤다. 이다원이 임시함으로 옮겼다고 진술한 그 묶음의 처리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칸들이었다. “이걸 익명 메일로 보내온 사진하고 나란히 놓아봐.” 선영이 말했다. 나는 두 이미지를 비교했다. 익명 사진에서는 '대기열 등록'과 '임시함 이동'만 보였다. 원본의 뒷면에는 그다음 단계가 있었다. '실물 확인 전 반출 금지.' 그 줄 아래, 볼펜이 눌려 파인 자국이 보였다. “누가 썼습니까?” “아직 몰라. 필적도 확인하지 않았어. 이 종이에 누구 손이 닿았는지부터 보는 중이야.” “문구가 중요한데요.” “중요하지. 그래서 문구의 작성자를 함부로 정하지 않으려는 거야.” 수거표에는 오후 근무자의 검토란이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른 장부에 기록했거나, 확인하고도 서명하지 않았거나, 실제 확인이 누락됐을 수 있었다. 셋 중 무엇이 사실인지 구별하는 일이 이제 시작됐다. 정민규가 예전 업체 규정집을 가져왔다. 2026년 10월 개정본과 11월 현장용 출력본은 같지 않았다. 본사 규정에는 두 사람의 확인이 필요했지만 현장 출력본에는 한 사람의 확인만으로 다음 단계로 보낼 수 있다는 주석이 있었다. “누가 현장본을 이렇게 고쳤죠?” 내가 물었다. 정민규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그가 한때는 내 질문에 먼저 답하고 나중에 기록을 찾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현장 운영팀이 만든 출력본입니다. 변경 이력에는 부서 계정만 남았고, 실제 작성자는 확인 중입니다.” “그 주석은 합법적인 절차입니까?” “규정과 충돌합니다. 하지만 해당 문구가 그날 실물 확인을 생략하라는 지시였는지까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수첩에 '주석'이라고 적었다. 무능이나 게으름의 문제가 개인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규정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그 느슨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생긴 틈을 고의적인 악인이 이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후에 이다원은 공식 절차를 통해 다시 진술했다. 그녀는 그날 본 것이 봉투 한 장이 아니라 묶음 전체였다고 말했다. 상단에는 노란 분류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아래쪽에는 외부 문서가 섞여 있었다. 어떤 것은 접수번호가 선명했고, 어떤 것은 접힌 모서리 때문에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02-A라고 적혀 있던 걸 기억합니까?” 오선영의 질문에 이다원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숫자를 봤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묶음 상단의 색만 기억합니다.” “그럼 색만 기록할게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손바닥을 폈다. 오래전에 그랬다면 나는 그녀에게 다른 숫자도 기억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머릿속의 정답을 만들어놓은 조사관은 목격자의 기억까지 그쪽으로 밀어붙인다. 오늘 선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유리는 수거표 사진의 상단에 찍힌 자그마한 코드 하나를 발견했다. H-4. 나는 그 코드를 보자마자 예전 C-12 노란 조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두 글자는 분류함 표기에 흔히 쓰였다. 같은 창고의 부품인지도 모르는 숫자 하나로 두 사건을 연결하면 안 됐다. “C-12와 관계가 있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물건의 모양도, 시기도, 용도도 다릅니다.” “그럼 H-4는요?” “업체가 설명할 수 있어야겠죠.” 설명은 저녁에 도착했다. H-4는 야간 공동 수거함의 관리 구역 코드였다. 특정 고객이나 직원의 이름을 의미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기록하고 불필요한 화살표를 지웠다. 숫자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가상의 배후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유혹적이었다. 그날 가장 위험한 일은 저녁 일곱 시에 일어났다. 익명 게시판에 수거표의 일부가 올라왔고, 거기에는 이다원이 '실물 확인' 칸을 비워놨다는 글이 붙었다. 그녀의 회사 경력과 새로 지원한 일자리의 이름까지 덧붙어 있었다. 문서 한 장이 증거가 되기 전에 협박 도구로 바뀌어 있었다. 한유리는 게시물의 정확한 URL과 게시 시각을 보존해 피해자에게 전달했다. 나는 성급하게 글쓴이에게 반박하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허위 게시물이 지워져도 원본과 정정 요청이 남아야 나중에 피해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선영은 업체와 접촉해 수거표의 공개 가능한 설명 범위를 정리했다. 이다원의 실수는 확인 절차 일부를 빠뜨린 것이었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배정우에게 문서를 전달했다거나 살인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이다원은 내게 말했다. “제가 제대로 확인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겠죠?” “문서를 더 정확히 추적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을 협박하는 사람의 행동까지 당신 탓이 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실수한 걸 지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사실을 남기는 게 맞습니다. 그게 당신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나는 익명 발신자가 보내온 수거표와 공식 원본을 한 장의 노트에 나란히 붙였다. 서로 겹치는 부분은 많았다. 그럼에도 발신자가 잘라낸 공간에는 가장 중요한 경고가 있었다. '실물 확인 전 반출 금지.' 상대가 그 문구를 알고 잘랐는지, 원래 잘린 사진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명확했다. 사람들은 사진에 보이지 않는 단계를 이미 완료된 단계로 읽었다. 내가 처음 받은 살인사건 보고서도 그랬다. 피해자 이름과 범인 이름은 있었지만, 수사 과정은 없었다. 결과만 앞세운 문서는 사람에게 순서를 잊게 만든다. 그날 밤 선영이 물었다. “누가 이 표를 잘랐는지 알아내면 사건이 풀릴까?” “일부는요. 하지만 배정우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여전히 따로 알아내야 합니다.” “좋아. 그걸 잊지 마.” 나는 사진의 뒷면을 넘겼다. 누군가가 빈 칸에 이름을 쓰는 대신, 원래 있어야 할 확인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있었다. 이번에는 빈칸을 그대로 남겨놓기로 했다. 원본 뒷면을 확인한 후 정민규는 자신의 과거 정정 기록을 나에게 들려줬다. 예전에 참고인에게 보낸 문서에 붙은 목록도 뒷면을 누락한 채 전송됐다고 했다. 그때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재전송을 미뤘다. 지금은 누락된 장의 제목부터 확인하고, 수신처가 실제로 새 자료를 열었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선배들이 별것 아니라고 하면요?” 내가 물었다. “어떤 내용이 빠졌는지 보고 결정해 달라고 합니다. 제가 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중요했다. 누군가가 악한 마음으로 시스템을 조작하더라도, 동료 한 명이 정확한 확인을 요구하면 계획이 틀어질 수 있었다. 이다원은 그날 밤 자신을 공격한 게시물의 댓글을 읽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기록 원본과 자신의 진술서를 정해진 경로에 제출했다. 다른 사람의 추측을 모두 바로잡으려다 자신의 기억까지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판단에 동의했다. 목격자가 되풀이되는 질문 때문에 처음 기억한 것과 나중에 상상한 것을 혼동하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수거표의 뒤집힌 면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대신 앞으로 누가 실제 확인을 했는지 물을 수 있는 정확한 칸을 찾았다. 그게 오늘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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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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